황예진씨 유족·지인, 첫 공판서 고성 항의·눈물
피고인 측 "합의 노력" 발언엔 "받을 생각 없다"
유족 측 "다음 재판에 추가 데이트폭력 증거 제출"
여자친구를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30대 남성의 첫 공판이 4일 열렸다. 피해자 유족 및 지인 10여 명이 자리한 방청석에서는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피고인 측은 뒤늦게 사죄 의사를 밝혔으나, 유족 측은 살인죄가 적용돼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 안동범)는 이날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모(31)씨의 첫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검찰 측 공소요지 진술과 양측의 증거 조사가 이뤄졌다. 이씨 측 변호인은 "그동안 피해자 유족 인적사항을 몰라 접근이 어려웠는데, 100번이라도 사과할 것"이라며 "변호인을 통해 사죄 및 합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황토색 수의를 입고 흰색 마스크를 착용한 채 법정에 선 이씨는 담담한 표정으로 재판에 임했다. 이씨가 인적사항을 묻는 판사의 질문에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자 방청석에서 "크게 말하라"는 고함이 나와 재판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피해자 측 방청객들은 공판 내내 흐느꼈고 일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도 했다.
재판을 마치고 이씨가 퇴장할 때 방청석에서 "살인자다" "사형도 억울하지 않다" 등 고성이 나오면서 소란이 일었다. 유족들이 법정 밖으로 나와 "사람을 죽여놓고 사과하겠다면 다냐"라고 소리치고 법정 안에 있던 이씨 변호인과 가족에게도 비난성 발언을 하자 법정경위가 제지에 나서기도 했다. 이씨를 태운 호송차가 법정을 빠져나갈 때도 유족 항의가 이어졌다.
유족 "살릴 수 있었는데… 살인죄 적용해야"
이씨는 지난 7월 25일 서울 마포구 오피스텔에서 여자친구 황예진(25)씨와 말다툼을 하던 중 머리 등을 수차례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두 사람이 연인 관계라는 사실을 주변에 알렸다고, 이씨가 황씨를 비난한 것이 말다툼의 발단이었다. 범행 직후 이씨는 112 및 119에 전화해 황씨가 술을 많이 마셔 기절했다는 취지의 허위 신고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가 고개가 꺾인 채 쓰러진 황씨를 건물 엘리베이터에 핏자국을 남기며 끌고 다니는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도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의식을 잃은 황씨는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다가 8월 17일 뇌출혈로 사망했다. 이후 황씨의 모친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남자친구에게 폭행당해 사망한 딸의 엄마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면서 공분이 일었다. 이씨에 대한 구속수사와 신상공개, 데이트폭력 가중처벌법 신설 등을 촉구하는 이 글은 53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경찰은 이씨를 입건하고 상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가 기각당했지만, 황씨가 숨진 뒤 재차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해 발부받았다.
유족 측은 재판 후 기자회견을 열어 이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씨 모친은 "이씨는 중환자실, 장례식장에 한 번도 온 적이 없다"면서 "형량을 줄이기 위한 사과와 합의를 받을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이어 "CCTV를 보면 딸을 살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짐승 시체를 끌고 다니듯 하고 거짓신고를 하는 등 살릴 생각이 전혀 없음을 보여줬다"면서 "살인죄 인정을 위한 추가 자료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이달 18일 열릴 예정인 다음 공판에선 사건 관련 CCTV 재생 및 황씨 모친 증인심문이 이뤄질 전망이다. 유족 대리인 최기식 변호사는 "황씨가 이씨와 나눈 카카오톡 자료 등 또 다른 데이트폭력 정황을 담은 증거도 제출할 것"이라며 "실체적 진실과 양형 판단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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