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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성차별에 이직만 11번... 90년대생 여성 노동자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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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성차별에 이직만 11번... 90년대생 여성 노동자의 눈물

입력
2021.11.17 09:00
수정
2021.11.17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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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을 시작한 여성 A씨. 지난 10년간 이직한 횟수는 11번이다. 그중 5번은 상사의 괴롭힘과 성희롱 때문이었다. 회사에 신고했지만 '가해자 분리' 따윈 없었고 '꽃뱀'이란 소리만 들었다. 옮겨 간 다른 회사에선 "주말에 된장하고 고추장 담그는 것 좀 도와라"는 말을 들었다. 거부하자 욕설이 쏟아졌다.

A씨는 "밖에서 알바를 2개 뛰어도 거기보단 많이 번다"며 "최저임금 주면서 개인적인 일에 동원하는 것도 모자라 모욕을 주는 곳에서 일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옮겨 간 곳마다 그런 꼴을 보는 곳이 다반사였다. 계약 만료, 퇴사 권유 등으로 직장을 옮겼다. 서른을 넘기자 면접장에서 "나이가 너무 많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30대 초반인 A씨는 지금 '무직'이다.

이런 A씨 사례는 아주 극단적이고 희귀한 이야기일 뿐일까.

16일 한국여성노동자회 주최로 열린 '90년대생 여성노동자 실태조사 토론회'에서 나온 대답은 '아니오'였다. 이날 토론회에는 최혜영 일하는여성아카데미 연구원 등이 진행한 연구결과가 공개됐다. 이들은 코로나19 시대 취업을 해야 하는 90년대생 여성들의 분투기를 추적했다. 30대 여성 노동자 4,000명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그 가운데 19명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주변부 일자리로 밀려나는 30대 여성들

그 결과 A씨처럼 코로나19 시대 30대 여성 노동자들은 점차 저임금 주변부 일자리로 밀려나는 사례가 흔했다.

취업난을 걱정해 하향취업을 고려했고, 실제 하향취업했다는 응답은 43.9%에 달했다. 일자리 이동 패턴을 보니 비정규직으로 시작해 계속 비정규직인 비중이 25.7%였고, 비정규직→실업이 9.9%였다. 정규직이었다가 실업한 비중도 3.4%를 기록했다.

구직 기간이 길어지자 조급한 마음에 목표를 낮췄고, 이렇게 얻은 일자리는 대부분 구시대적 조직문화에 젖어 있었다. 성차별적이었고 성희롱도 여전했다. 더는 버틸 수 없어 등 떠밀리듯 이직을 반복하면서 더 열악한 일자리로 옮겨 갔다. 그렇게 한계단을 내려설수록 마음속 상처와 경제적 빈곤은 더해졌다.

'90년대생 여성노동자 실태조사 토론회' 안내 이미지. 한국여성노동자회 제공

'90년대생 여성노동자 실태조사 토론회' 안내 이미지. 한국여성노동자회 제공


취업 문턱부터 차별을 겪은 여성들

그래도 부당한 업무지시, 회식자리 술 강요,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라도 있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 이전, 채용에서부터 남성을 선호하는 차별이 뚜렷했다.

기계분야 전공자인 B씨는 "취업박람회에서도, 강의실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여성 현직자'를 만나 본 적도 없고, 여성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여성들은 전공과 무관한 곳에 취직한다. 폴리텍대 졸업자 C씨는 "교수님들도 여자는 취업 잘되는 회계나 경리를 하라시더니, 면접장에 가서도 '여자는 안 뽑는다'는 말만 들었다"고 말했다.

유일하게 전공을 살려 취직한 도시계획 전공자 D씨는 "남자 직원은 더 오래 다닐 사람이라고 생각해 더 나은 조건이 주어지는 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D씨는 성희롱을 당해 직장을 옮겼다.

쌓이지 않는 경력… 단순 지원금으로 해결되지 않아

90년대생 여성 노동자 4,000여 명을 재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일자리 이동 흐름. 한국여성노동자회 제공

90년대생 여성 노동자 4,000여 명을 재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일자리 이동 흐름. 한국여성노동자회 제공

취업 문턱에서, 회사 안에서 걸러지고 그 때문에 이직을 반복하다 보면 제대로 된 '경력'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나마 일자리를 구했다 해도 더 안정적이라거나 더 나은 미래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악순환이 반복된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 가장 보편적인 청년 지원책이 '청년내일채움공제'인데, 이건 중소기업에 오래 근무하는 게 조건이라 다른 기회를 찾고 싶은 사람을 돈으로 묶어 두는 것"이라며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비 안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기회를 주는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이 더 좋다"고 제안했다. 청년내일공제는 중소기업에서 2년 일하면 본인, 정부, 기업이 공동적립해 1,200만 원의 목돈을 만들어 주는 사업이다.

맹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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