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겨울이 다가오는 걸 느낄 때면 코트나 패딩 주머니에 1,000원짜리를 몇 장씩 넣어두게 된다. 쉬이 만나기 어려운 붕어빵이나 호떡 파는 곳을 만났을 때 옆 사람이 먹는 걸 쳐다보는 애처로운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이따금 아름다움에 관한 영감도 겨우내 된서리를 맞은 그것처럼 얼어버려서 싹을 틔우듯 뭔가 만들어내야 할 때 고갈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마치 겨울에 만나는 붕어빵이나 호떡처럼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브랜드 한 곳과 책 한 권이 있다.
색감이 주는 아름다움의 향연과 변주에 굶주려 있다면 미로이(mlouye)라는 터키와 뉴욕 기반의 핸드백 브랜드의 인스타그램을 꼭 봐야만 한다. (https://www.instagram.com/mlouye) 늘 이 브랜드를 소개할 때면 터키를 낯설어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터키는 본디 질 좋은 가죽제품을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한 나라이다. 생산 기반이 튼튼하고 거기다 터키가 동서양의 아름다움 그즈음 어딘가에 있기에 디자인을 풀어내고 색을 쓰는 방식이 매우 신선하다. 미로이의 창업자인 멥 루어(Meb Rure)는 현대디자인의 원형이라고 불리는 바우하우스 운동에 큰 영감을 얻어 2015년 미로이를 론칭했다. 그녀는 20세기 대표건축가인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 추상 회화의 창시자인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핀란드 지폐에 얼굴이 새겨진 알바 알토(Alvar Aalto)의 가구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래서인지 이 브랜드의 핸드백은 단순하지만, 실용적인 면도 있고 또 현대적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공을 들인 작품과 제품의 중간 같은 색과 디자인이 나오게 된 것 같다. 인스타그램의 화보도 그 결을 따라 그저 그런 인스타그래머블 한 이미지가 아닌 그림같이 유려한 색감과 작품같이 멋진 구도로 연출된다. 늘 얼굴을 볼 수 없는 미로이의 화보 속 여인은 더 이 브랜드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곤 한다.
이런 섬세한 연출을 보고 있자면 과거 종이 잡지 전성시대의 패션 사진작가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들의 사진 스타일은 이제 너무 많은 'Ctrl c'와 'Ctrl v'를 당해서 이제는 그 스타일의 원작자가 누구인지도 지금 세대들은 모를 지경이 된 스타일들이다. 이들을 한 곳에 모아 놓은 책, '패션 사진 문화와 욕망을 읽는다'는 미로이의 이미지들을 눈이 충혈될 정도로 본 날이면 슬쩍 들춰보게 된다. 아쉽게도 책은 절판되었지만, 책 정보에 공개된 목차에서 그들의 이름을 검색만 해보아도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그들의 작품을 손쉽게 만나볼 수 있다. 미로이의 인스타그램이 마음에 든다면, 꼭 기 부르뎅(Guy Bourdin)의 사진 작품을 구글에서 검색해서 보길 바란다. 그의 어떤 사진은 물감으로 색을 따로 입힌 것일까 싶은 색감으로 시선을 끌어당긴다. 또 다른 사진은 예술인 듯 외설인 듯 현실과 살짝 엇나간 비현실의 어딘가를 보여주는 연출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과거에 사로잡혀 사는 것이 좋지만은 않다. 하지만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그 과거 중에서 영감이 되어줄 나만의 황금기(Golden Age)를 한 줄기로 삶과 일의 윤활유로 삼는 것은 불평하는 입 대신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마음을 길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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