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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비정한 사회

입력
2021.11.17 18:00
수정
2021.11.17 19:45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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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 초등생 절도신고... ‘놀 권리’ 외면
‘민식이법’ 희화화 등 보행권도 무관심
아동권리 외면하는 사회 지속가능 불가능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시민단체인 국토종주자전거길안전지킴이단연대 회원들이 지난 5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어린이 교통안전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단체인 국토종주자전거길안전지킴이단연대 회원들이 지난 5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어린이 교통안전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에게 어디 살냐고(사느냐고) 물어보고 나는 OO 산다고 했더니 ‘OO 사는데 남의 놀이터에 오면 도둑인 거 몰라?’라고 했습니다.”

지난달 영종도의 한 신축 아파트 놀이터에 놀러갔다가 입주자 대표에게 도둑 취급을 받고 주거침입죄로 경찰에 신고됐던 초등학생이 당시 상황을 기록한 메모다. 해당 초등학생의 부모로 추정되는 이는 이 사연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리면서 ‘과연 놀이터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아이들일까요, 입주민 회장일까요’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입주자 대표는 반성은커녕 이후 ‘(놀이터) 외부 어린이 사용 시 경찰에 신고한다’는 아파트 관리규약 제정까지 추진했다고 한다. 다행히 입주민들이 아파트 명예를 훼손시킨 해당 대표의 해임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가격 차이가 나는 아파트 단지 주민들 사이에 종종 발생하는 속물화된 '차별짓기' 현상이 또 발생했구나라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이 사건으로 아동의 놀 권리에 무관심한 어른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사실은 뼈아프다.

우리 아이들은 이중으로 고통을 받는다. 성인들의 법정 근로시간(주 40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아동학대 수준의 장시간 학습시간은 물론이고, 뛰어 놀아야 할 물리적 공간도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놀이정책’을 국가전략으로 채택하고 경제적 여건이나 장애 등 어떠한 이유로도 놀이기회를 박탈당하지 않도록 지역마다 놀이터 조성위원회, 건축위원회를 만들어 접근이 쉬운 놀이터를 조성하고 있는 영국 사례는 딴 나라 얘기다.

아이들의 놀 권리까지 따질 필요도 없다. 아이들의 안전한 보행권 문제만 봐도 우리 사회는 무심함을 넘어 비정하다. 이제 겨우 시행 1년 반이 지난 이른바 민식이법(개정 특정범죄가중법)에 대한 조롱이 끊이지 않는 게 좋은 예다. 이 법이 고의범보다 과실범에게 높은 형벌을 부과하는 등 형법 원칙에 어긋난다는 법리적 비판은 논쟁이 가능하다. 문제는 ‘아동보호’라는 입법 목적에 대한 되새김은 온데간데없고 운전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법이라는 고함소리만 들린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법 때문에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것이라던 사람들의 주장은 근거를 잃고 있다. 코로나 사태라는 점을 감안해도 법 시행 첫해인 지난해 스쿨존 교통사고는 전년보다 15.7% 감소했고 주행차량의 과속비율도 26.9%에서 21.9%로 줄었다. 이 법 때문에 실형이 선고된 사례는 관련 사건 25건 중 단 1건(2020년 3월~2021년 3월ㆍ대검찰청 ‘형사법의 신동향’)이었다. 도시계획 단계에서 아이들의 동선을 고려해 초ㆍ중학교 앞으로는 4차로 이상 도로가 위치하지 않도록 해 달라고 교통전문가들이 제안해도 번번이 교통흐름을 중시하는 논리에 밀려 대형차량이 쌩쌩 달리는 큰길가에 학교가 들어서는 건 다른 이유로 설명되지 않는다.

몇 년째 반복되고 있는 ‘노키즈존’ 논란도 그렇다. 호기심이 많고 주의력은 크게 부족한 아동의 특성을 상수로 놓고 판단해야 한다는 노키즈존 비판론은 ‘업주 입장을 생각해 보라’는 반론에 번번이 가로막힌다. ‘어린이’라는 특정집단에 대한 부정적 측면을 부각시켜 이들을 원천 배제하는 혐오를 전파하는 것이 분명한데도 노키즈존을 표방한 식당들은 성업 중이다.

민식이법을 희화화하는 모바일게임이 출시돼 이용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개발자는 죄책감 없이 돈을 벌어가는 마당에 이 정도는 대수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투표권도 없고 사회적 발언권이 미약하다고 아동들의 권리가 무시된다면 지속가능한 사회가 될 수가 없다. 넬슨 만델라는 “한 사회의 공동체 정신을 보여주는 것 가운데 그 사회가 어린이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는 것보다 더 정확한 것은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왕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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