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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억 줄테니 팔라"는 제안에도 "2호점은 없다" 거절한 29세 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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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억 줄테니 팔라"는 제안에도 "2호점은 없다" 거절한 29세 사업가

입력
2021.11.24 04:30
수정
2021.11.25 09:07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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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명소 '더티 트렁크' 김왕일 대표
투박한 공장형 카페 대박 인산인해
손님들 지루하지 않도록 늘 새롭게
"똑같은 프랜차이즈 100개 하느니
새로운 브랜드 100개 만드는 게 낫죠"
"내달에도 세상에 없는 매장 선보일 것"

경기 파주에 위치한 대규모 공장형 카페 더티트렁크 전경. CIC F&B 제공.

경기 파주에 위치한 대규모 공장형 카페 더티트렁크 전경. CIC F&B 제공.

"공식을 따랐다면 지금쯤 전국에 더티 트렁크 매장만 200개가 넘겠죠. 하지만 새로운 브랜드 100개를 만드는 게 더 낫다고 봐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도 매달 6억 원대 매출을 유지하는 카페가 있다. 2018년 12월 경기 파주의 출판단지 인근에 문을 연 '더티 트렁크'는 3년도 안 돼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파주 명물'로 자리 잡았다.

15일 카페를 찾았을 때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공장 건물을 연상시키는 투박한 외관과 1,322㎡(약 400평)에 달하는 내부 공간이었다. 평일 낮인데도 주차장은 꽉 찼고, 2층 중앙 난간은 사진촬영을 기다리는 손님들로 붐볐다. 개성 만점의 공간을 창조해낸 인물은 20대 사업가였다. 젊은 나이에 국내에서만 14개 요식업 브랜드를 성공시킨 CIC F&B 김왕일(29) 대표를 더티 트렁크 매장에서 만났다.

37번의 투자 거절... 동력은 '자기혐오'

김왕일(29) CIC F&B 대표가 유학을 마친 뒤 귀국한 2017년 이태원에서 팝업스토어를 열었을 당시 모습. 김 대표 제공

김왕일(29) CIC F&B 대표가 유학을 마친 뒤 귀국한 2017년 이태원에서 팝업스토어를 열었을 당시 모습. 김 대표 제공

김왕일 대표에게 더티 트렁크는 '두 번째 자식'이다. 스위스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한 그의 첫 번째 자식은 한국에서 열었던 브런치 카페 '오프닛'이었다. 학연과 지연을 활용해 거액의 투자를 받아 사업을 시작하려는 또래들과 달리, 김 대표는 2017년 무작정 귀국해 사업 계획서만 들고 전국의 유명 식당들을 찾아다녔다.

경험도 자본도 부족했던 김 대표에게 투자자들은 시큰둥했다. 기회는 38번째 만남에서 찾아왔다. "청담동 유명 스테이크 집에서 손을 벌벌 떨며 20가지 요리를 연달아 선보였어요. '캘리포니아 농장'을 구현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드러냈죠. 그 자리에서 3명이 투자하겠다고 결정했어요."

첫 가게를 오픈한 지 한 달 만에 투자금을 모두 회수하자, 김 대표는 확신을 얻었다. 무작정 뛰어든 요식업계에서 받았던 상처도 씻겨 내려갔다. "한 번은 사정사정해서 이태원에서 팝업 스토어를 연 적이 있어요. 7팀 중 저만 빼고 모두 '빵빵한' 스폰서가 있었죠. 내 자리엔 온수도 안 틀어줬고 매출도 꼴찌였어요. 그때 쌓인 자기혐오가 오히려 동력이 됐어요. 나만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었거든요."

"경험 비즈니스... 손님들 지루하게 하기 싫다"

CIC F&B의 김왕일(29) 대표가 15일 경기 파주에 위치한 '더티 트렁크' 2층 난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원 기자

CIC F&B의 김왕일(29) 대표가 15일 경기 파주에 위치한 '더티 트렁크' 2층 난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원 기자

첫 번째 성공 후 김 대표는 오프닛 2호점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대형 카페'를 차리기로 마음먹었다. 18세기 '스팀펑크(산업혁명 당시 증기기관 기술 등을 바탕으로 발전한 세계관)' 감성을 구현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너무 빨리 사업을 확장하고 리스크가 있다"며 말렸지만, 김 대표는 밀어붙였다. 그는 "고객들은 더 극단적이고 새로운 경험을 찾아 온다"는 확신이 있었다.

김 대표의 '더티 트렁크' 구상은 적중했다. '공장형 카페'를 구현해낸 인테리어를 인정받아 아시아(한국, 대만, 홍콩) 3대 디자인 어워드를 모두 석권했다. MZ세대 '핫플레이스'로 입소문이 나자 대기업에서도 그를 찾아왔다. 2019년 8월 삼성에선 '갤럭시노트10'을 출시하면서 더티 트렁크 매장 2층에서 컬래버레이션 행사를 열었고, 이날 매장에는 1만8,000여 명의 손님이 몰렸다.

매장을 추가로 낼 법했지만, 김 대표는 "더티 트렁크 2호점은 내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그는 "220억 원을 제시하며 팔라고 한 사람도 있었지만 거절했다"며 "세계 1위가 될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에, 2호점·3호점을 내고 손님들을 지루하게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장의 수치보다 브랜드 가치가 통하는 세대"

김 대표가 높게 평가하는 인물은 요식업계의 큰손들이 아닌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다. 눈앞에 수치로 내놓은 결과물은 없지만, 본인의 브랜드 가치로 많은 사람들을 설득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는 "기성 세대에선 '실체가 없다'고 손가락질 받을지라도 고유한 정신과 개념이 담긴 브랜드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실제로 그의 도전은 멈출 줄 모른다. 김 대표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파주시 동패동에 3,471㎡(약 1,050평) 규모로 '세상 어디에도 없는' 매장을 열 계획이다. 그는 "미니 갤러리, 스테이크 하우스와 수제 맥주바, 런웨이(패션쇼에서 모델들이 걷는 무대), 어른들 놀이터 등 공간을 네 구획으로 나눠서 새로운 개념의 공간을 선보일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는 "부모님은 '일 벌이지 말라'고 걱정하지만, 늘 재밌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게 사업 원칙"이라고 말했다.

파주=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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