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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체인저’ 된 먹는 치료제… 선진국 입도선매에 ‘불평등’ 재현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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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체인저’ 된 먹는 치료제… 선진국 입도선매에 ‘불평등’ 재현 우려

입력
2021.12.2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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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럽 등 보건당국 승인 전 사전 구매
연초 백신 부익부 빈익빈 시즌2 될 가능성

미국 제약사 머크가 개발한 코로나19 경구용 치료제 '몰누피라비르'.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제약사 머크가 개발한 코로나19 경구용 치료제 '몰누피라비르'. 로이터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새 변이 오미크론이 지구촌에 빠르게 확산하면서 ‘먹는 치료제’를 확보하기 위한 각국의 쟁탈전이 불붙기 시작했다. 보건당국의 사용 승인이 나오기 전부터 글로벌 제약사들과 직접 계약을 맺고 입도선매하는 사례도 속속 나오고 있다. 올 초 백신 확보를 위해 주요국 경쟁이 격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났던 국가 간 ‘백신 부익부 빈익빈’ 양상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는 분위기다.

2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현재 대표적인 경구용 치료제는 미국 제약사 머크가 개발한 ‘몰누피라비르’와 화이자가 개발한 ‘팍스로비드’다. 먹는 치료제는 알약 형태로 복용이 쉬운 데다 처방전만 있으면 구입 후 가정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어 감염병 판도를 바꿀 ‘게임체인저’로 평가받아 왔다. 두 치료제는 바이러스가 체내에서 복제되는 것을 방해해 감염자가 중증에 빠지는 상황을 막아 준다. 코로나19 증상이 나타나면 5일간 하루 두 차례 팍스로비드는 3알씩, 몰누피라비르는 4알씩 먹어야 한다. 최근 오미크론 변이가 전 세계에 빠르게 번지면서 감염병 상황이 한층 더 위태로워지자 각국은 발 빠른 치료제 확보전에 나섰다.

미국은 일찌감치 52억9,000만 달러를 들여 화이자와 팍스로비드 1,000만 명 치료분(1회분은 총 30알)을 1회당 540달러(약 63만 원)에 구매하기로 계약했다. 머크와도 몰누피라비르를 1회당 700달러(약 83만 원)씩 310만 회분 들여오기로 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날 팍스로비드를 가정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허가했다. 몰누피라비르 역시 조만간 FDA의 긴급 사용 승인이 내려질 것이란 관측이 높다. 바꿔 말하면 두 치료제 모두 보건당국의 승인이 이뤄지기도 전에 이미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는 얘기다.

계약을 서두르는 나라는 미국뿐만이 아니다. 유럽의약품청(EMA)의 약물사용자문위원회(CHMP)는 최근 두 회사의 약이 감염자를 치료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결론 내리긴 했지만, 아직 판매 승인을 내리진 않았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두 치료제를 각각 5만 회분씩 들여오기로 했고, 벨기에 역시 머크와 몰누피라비르 1만 회 구매 계약을 맺었다. 코로나19 백신 확보에 뒤처졌던 아시아 국가들도 치료제는 빠르게 구매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한국은 머크ㆍ화이자와 각각 20만, 7만 회분을, 일본은 머크와 160만 회분을 들여오기로 했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등도 이들 제약사와 선주문 계약을 체결했거나 협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1월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연구진들이 화이자의 경구용 치료제 팍스로비드를 제조하고 있다. 프라이부르크=로이터 연합뉴스

11월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연구진들이 화이자의 경구용 치료제 팍스로비드를 제조하고 있다. 프라이부르크=로이터 연합뉴스

다만 치료제 간 운명은 다소 엇갈리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이날 몰누피라비르 주문을 전면 취소했다. 지난 10월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판도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며 5만 회분을 주문했지만, 두 달 만에 이를 되돌린 셈이다. 최근 연구 결과 입원 가능성을 낮추는 효과가 30%로, 기존 임상 결과(50%)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대신 팍스로비드를 구매하기로 했다. 반면 최근 들어 코로나19 확진자가 매일 10만 명씩 나오는 영국은 몰누피라비르 175만 회분을 추가 구매했다. 기존에 구매했던 팍스로비드 250만 회분까지 더할 경우 내년에는 425만 회분의 치료제를 확보하게 된다.

각국이 사용 허가 전부터 이처럼 발 빠르게 나선 것은 초기 생산 물량이 적어 미리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팍스로비드의 경우 현재 상황에선 알약 제조에 9개월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이자는 사용 증가에 대비해 내년도 생산 물량을 기존 8,000만 회분에서 1억2,000만 회분으로 상향 조정하고, 생산 기간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연초 선진국들이 앞다퉈 코로나19 백신 구매에 나섰던, 이른바 ‘백신 사재기’가 또다시 고개를 들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부국들이 치료제를 싹쓸이하고 자원의 공정한 배분을 방해하면서 팬데믹(세계적 대확산)을 자극하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부유한 나라들이 초기 백신 물량 대부분을 사들인 뒤 빈국의 백신 접근성이 떨어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알약(경구용 치료제) 역시 한참 후에나 가난한 나라에 도착해 치료를 지연시킬 것”이라고 꼬집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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