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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남, 재입북... '오징어 게임' 속 강새벽은 우리 주변 곳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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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남, 재입북... '오징어 게임' 속 강새벽은 우리 주변 곳곳에 있다

입력
2022.01.09 09:00
수정
2022.01.09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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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탈주민 가운데 연 700여 명 한국 이탈
코로나19 이후 국내 거주 탈북민 생활고 심해져
정착에 큰 걸림돌, 빈곤보다 사회적 고립감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강새벽(정호연)은 탈북민으로 빈곤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설정이다. 이 작품에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약자'들이 등장하는데, 탈북민도 그중 하나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강새벽(정호연)은 탈북민으로 빈곤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설정이다. 이 작품에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약자'들이 등장하는데, 탈북민도 그중 하나다. 넷플릭스 제공

"'오징어 게임' 속 강새벽의 사연은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 가깝습니다. 현실의 강새벽은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북한이탈주민(탈북민) 출신으로 21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0월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 등장한 강새벽은 탈북민으로서 소매치기로 연명하던 인물로 그려지는데,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탈북민 다수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에 정착하지만 그들의 삶이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다. 일부는 한국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의지할 곳을 찾지 못하고 남한을 떠나거나 드물게는 재입북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새해 첫날인 1일 탈북민 A씨가 1년여 만에 군사분계선을 넘어 재입북한 사건도 비슷한 맥락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


1일 군사분계선을 넘어 월북한 탈북민 김모씨의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찍힌 모습. 2020년 11월 귀순한 김씨는 청소용역업체 직원 등으로 일해 왔다. 뉴스1

1일 군사분계선을 넘어 월북한 탈북민 김모씨의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찍힌 모습. 2020년 11월 귀순한 김씨는 청소용역업체 직원 등으로 일해 왔다. 뉴스1

한국 정부는 북한주민을 난민을 넘어 사실상 한국인으로 간주한다. 입국하면 시민권을 부여하며, 이에 따라 생계 급여와 의료 보호를 보장한다. 이에 더해 아무런 기반도 없는 탈북민들이 많기 때문에 초기 정착금과 취업 교육 장려금, 주거 지원, 탈북민을 채용하는 사업주에 대한 고용지원 제도도 가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모두가 한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하지는 못한다. 통일부 자료에 의하면 2012년부터 재입북 사실이 확인된 탈북민은 30명이다. 하지만 실제 재입북 인원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3국으로 출국해 돌아오지 않는 탈북민도 2016년 이래 해마다 700명 이상이다.

탈북민이 '탈남'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경제적 어려움이다. 지성호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공개한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기초생활수급자인 탈북민은 전체 탈북민의 24.5%, 이보다는 사정이 나으나 잠재적으로 빈곤 계층이 될 수 있는 차상위계층 탈북민은 31.2%다. 둘을 합치면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북한이탈주민 정착 지원을 위한 공공기관인 남북하나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탈북민의 직업은 단순 노무 종사자가 28.6%로 가장 많다. 일반 국민(14.3%)의 두 배 수준이다. 그 밖에 서비스 종사자(16%)·판매 종사자(9.9%) 순이다.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탈북자의 실업률은 2019년 6.3%에서 9.4%로 상승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의 여파가 뚜렷한데, 특히 일용직 종사자들이 일자리를 잃었거나 안정도가 떨어지는 일자리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타자화와 사회적 고립


2009년 경기 안성시의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가 개원 10주년을 맞아 언론에 공개됐을 당시 모습. 귀순 탈북민은 한국에 거주하기 전 이곳에서 기초 교육을 받는다. 배우한 기자

2009년 경기 안성시의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가 개원 10주년을 맞아 언론에 공개됐을 당시 모습. 귀순 탈북민은 한국에 거주하기 전 이곳에서 기초 교육을 받는다. 배우한 기자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이전에도 탈북민들은 남한 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호소해 왔다. 연고가 없고 의지할 곳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다. 그나마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탈북민들 사이 연결고리가 형성돼 서로 의지하기도 하지만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

2019년 탈북민 한모씨와 여섯 살 난 아들이 가난 속에 사망하고도 2개월이나 지나서야 발견된 사건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복지 사각지대' 문제이기도 하지만, 마땅히 그 복지 시스템의 수혜자가 돼야 할 탈북민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처해 있음을 보여준다. 한씨는 한국 정착 10년이 지난 상태에서 정착 지원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외부와도 단절된 삶을 살았다.


탈북민비상대책위 관계자들이 2019년 11월 탈북민 모자 사망을 추모하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탈북민비상대책위 관계자들이 2019년 11월 탈북민 모자 사망을 추모하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많은 탈북민들은 한국 사회가 자신들을 타자로 대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기본적으로 탈북민에게는 관리를 위해 경찰 신변보호관이 할당되지만 탈북민 가운데는 이를 '감시'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 민간의 시선도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다. 2017년 다큐멘터리 영화 '올드 마린 보이'를 보면 주인공 박명호씨는 일가족이 함께 남한으로 넘어왔고 안정적으로 살고 있지만 그조차 "처음에는 측은과 동정, 좀 나아가서 자기 사업 하고 치고 올라가니 제어를 하려는 거였다"라고 말한다.

2020년 남북하나재단 조사에 응한 탈북민 가운데 "차별이나 무시를 당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 비중은 18%였다. 차별을 받거나 무시당하는 주원인으로는 '문화적 소통 방식이 다르다는 점에서'라는 응답이 74.9%로 가장 많았고, '북한이탈주민 존재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이라는 응답도 44.3%였다. 탈북민들에게는 빈곤 자체보다는 소외감이나 사회적 고립감이 더 큰 장애물일 수 있다는 것이다.



'불법 망명' 택한 탈남민, 추방 위기에 놓이기도


공개적으로 북한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탈북민 김련희씨의 사연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그림자꽃'의 한 장면. 김씨는 2011년 한국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믿고 한국행에 나섰다가 돌아가지 못하게 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여전히 북한행을 요구하고 있다. 엣나인필름 제공

공개적으로 북한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탈북민 김련희씨의 사연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그림자꽃'의 한 장면. 김씨는 2011년 한국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믿고 한국행에 나섰다가 돌아가지 못하게 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여전히 북한행을 요구하고 있다. 엣나인필름 제공

탈남하는 탈북민 중 일부는 재입북을 택한다. 2020년 한국일보와 인터뷰한, 한 탈북민은 "탈북했다가 재입북할 경우 예전에는 처벌을 했지만 지금은 안 하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재입북의 경우 북한의 공작기관이 개입해 회유하는 경우도 있는데 주로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과의 연락을 통해 '고향으로의 귀환'을 유도하는 식이다. 재입북한 이들은 내부 선전에 동원된다. 한국의 방송에까지 출연했던 임지현(북한명 전혜성)씨는 2017년 재입북해 북한의 선전매체에서 "남조선은 내가 상상하던 곳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거나 다른 이유로 스스로 북한에 돌아가길 공개적으로 원하는 사례도 있다. '한국에 사는 평양 시민' 김련희씨는 애초에 북한을 떠날 의사가 없었는데도 탈북 브로커에 엮여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북한으로 돌아가길 원한 사례다. 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의 부인도 북한으로 돌아가길 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통일부는 이런 요청을 수용할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재입북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은 탈남하는 탈북민이 원하는 대표적인 행선지다. 하지만 이들도 상황이 그다지 녹록지 않다. 보통 한국에 머물다가 제3국으로 이주하는 경우, 합법적인 이민을 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에 혹은 '망명 브로커'의 알선 등으로 '위장망명'이라는 방식을 택한다.

하지만 이들은 심사 과정에서 한국 국적 소지자임이 발견돼 추방 위기에 놓이기도 한다. 북한에서 한국으로 귀순하면 바로 한국 시민권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캐나다 CBC는 이렇게 붕 뜬 상황이 된 이주민들이 문제가 될 것을 알지 못했거나 한국 국적이 있다는 것을 알리지 말라는 교육을 받고 망명 신청 방식을 택했다가 위기에 놓인다고 전했다.

인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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