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대체텍스트

알림

[허스토리] '여성가족부 폐지' 단 7글자

입력
2022.01.22 19:00
0 0

편집자주

‘허스토리’는 젠더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오전 8시 발송되는 뉴스레터를 포털 사이트에서는 열흘 후에 보실 수 있습니다. 발행 즉시 허스토리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세요. 메일로 받아보시면 풍성한 콘텐츠, 정돈된 화면, 편리한 링크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 구독하기 https://www.hankookilbo.com/NewsLetter/herstory

Her Words : 여성의 언어

조신한 여자는 거의 역사를 바꾸지 못한다.
(Well behaved women rarely make history.)

엘레노어 루즈벨트, 미국의 32대 대통령 영부인

Her View : 여성의 관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7일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를 올렸다. 윤 후보 페이스북 캡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7일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를 올렸다. 윤 후보 페이스북 캡쳐


<41> 대선은 연습 게임이 아니다
(2022년 1월 13일자)

안녕하세요, 독자님. 허스토리입니다. 3월 9일 대선을 50여 일 앞두고 정치권에 넘쳐흐르는 혐오와 조롱의 언어에 유권자들이 모멸감을 느끼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어요. 사회 유력 인사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채운 '멸치'와 '콩' 사진이 더 나은 사회를 이끄는 토론의 목소리를 압도하고 있고요. 제1야당의 대선 후보는 밑도 끝도 없이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단 일곱 자를 페이스북에 띄워 호응을 얻습니다. 유권자에 대한 예의도 아니며, 책임 있는 정치인의 모습도 아닙니다. 정치권이 왜 '밈(meme) 판'이 되어 버린 걸까요? 허스토리가 맥락을 더해 종합적으로 설명해 드릴게요.

① 1월 5일 : 이준석 대표의 '연습 문제' 출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그다지 경쾌하지 않은 모습으로 신년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전략 부재, 주도권 싸움 등 총체적 난국을 보이는 선거대책위원회에 대한 대대적인 쇄신 요구가 보수 진영에서 이어졌거든요. 계속해서 떨어지는 지지율에, 당내에서도 불안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당권을 쥐고 있는 이 대표와는 계속 삐거덕거렸습니다. '대대적 쇄신'을 선언하는 윤 후보를 향해 이 대표는 세 가지 연습 문제를 풀면 진정성을 인정하겠다고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 서울 강북지역 지하철역에서 6일 출근길 인사를 할 것

- 배달 라이더 등 플랫폼 노동자 체험을 할 것

- 젠더 특위와 게임 특위를 설치할 것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준석 당 대표가 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포옹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준석 당 대표가 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포옹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②1월 6일 밤 : 윤석열·이준석 극적 화해

이 대표의 행동에 국민의힘 의원들은 공분했습니다. 의원들은 의원총회를 열어 이 대표에 대한 사퇴 결의안을 논의했습니다. 그러나 윤 후보가 나타나 손을 내밀며 화해가 이뤄졌고, 두 사람의 '원팀 선언'으로 갈등은 '일단' 봉합되었습니다. 2주 전에도 두 사람이 얼싸안으며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을 감안하면, 두 번째 파국도 가까스로 막아낸 셈입니다. 이날 아침, 윤 후보는 여의도역 인근에서 '지하철 인사'에 나섰는데, 이 대표가 제안한 '연습 문제' 하나를 푼 셈이었습니다.

③1월 7일 : '여성가족부 폐지' 페이스북 게재

연습 문제에 더해 번외 문제까지 풀려고 했던 걸까요. 뜬금없이 다음날 윤 후보는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구호를 페이스북에 올립니다. 어떠한 철학에서 무엇을 할 건지 조금의 설명도 없이 말이죠. 경선 후보 시절까지만 해도 윤 후보의 공약은 여가부를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는 것이었습니다. 짧은 글이었지만 성평등 기조에 우호적이지 않은 2030 남성 집단이 환호하면서 파급은 커졌습니다.

④1월 8일 : '여가부 폐지' 말했지만 공약은 아직…

8일 윤 후보는 기자들을 만나 여가부 폐지 공약에 대해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면서도 "좀 더 생각해보겠다"고 말합니다. 정책이야 선거 과정에서 얼마든 수정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인식이 제대로 된 철학이나 고민의 토대 위에 서있느냐는 것인데요. 설마 구체적 고민 없이, 일단 지르고 본 걸까요?

⑤1월 10일: 윤 후보의 '여가부 폐지'는 단독 결정

캠프의 정책을 총괄하는 원희룡 정책본부장의 라디오 발언에서 앞선 질문의 힌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10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원 본부장은 "내부에서 논란이 많이 있었는데 후보가 최종 결정을 한 것"이라 말하면서, '선 조치, 후 보고' 방식으로 후보 발표 이후 통화를 했다고 밝힙니다. 윤 후보가 정책본부도 패싱하고 '여가부 폐지'를 단독 결정한 겁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나 20일 서울 여의도 새시대준비위원회 사무실에서 새시대준비위 수석부위원장으로 합류한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 환영식을 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나 20일 서울 여의도 새시대준비위원회 사무실에서 새시대준비위 수석부위원장으로 합류한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 환영식을 하고 있다. 뉴시스

⑥ 이 모든 것의 첫 장면에는 …

지난 연말 '페미니스트 정치인' 신지예 전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가 윤 후보 직속 기구에 영입된 뒤 2주 만에 사퇴했던 일, 기억하시나요? 지금 윤 후보의 불안은 어쩌면 이 지점에서 시작됐을지 모릅니다. 연말부터 2030 남성 지지자가 대거 이탈하자, 조급해진 윤 후보가 '큰 그림' 없이 돌출 행동을 한다는 지적이 잇따릅니다. 윤 후보는 최근 SNS에 멸치와 콩을 사는 사진을 올리고, 반중 정서가 강한 젊은 층에 '멸공 챌린지'를 은유하는 밈으로 어필하려 했습니다.

'여가부 폐지', 얼마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여가부 폐지 주장에 대한 구체적인 논박은 지난해 7월 15일 허스토리 '여가부가 정말 폐지되면 좋겠다' 편에서 조목조목 다루었어요.) 하지만 대통령이 되려는 이의 행동이 매번 들쑥날쑥 달라지고, 주장에는 근거가 없으며, 내뱉은 구호를 적확히 설명하지도 못하는 이 광경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철학 없이 그때 그때 꺼내 쓸 수 있는 카드로 '젠더 의제'를 취급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됩니다.

성평등은 많은 여성에게 안전이자 생존의 문제입니다.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한 '갈라치기' 소재로 취급하기엔, 성폭력과 성차별 철폐를 위한 젠더 의제는 이들에게 너무나 절박한 이슈입니다. 게다가 유권자의 절반은 여성입니다. 현재로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두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윤 후보가, 언제까지 성평등 의제를 '연습 문제' 수준으로 다룰지 허스토리가 꼼꼼하게 지켜볼게요.


Her Story : 여성의 이야기

버락 오바마의 페미니스트 선언

백악관 주최 제1회 여성단합서밋(United State of Women Sumit)에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칭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유튜브 영상 ( https://youtu.be/oxHAG60z9ZM )

▶ 유튜브 영상 보려면? https://youtu.be/oxHAG60z9ZM

"8년 전에 비해 제가 조금 늙어 보일 수는 있지만, 바로 페미니스트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I may be a little grayer than I was eight years ago, but this is what a feminist looks like)"

2016년 백악관이 주최한 이 행사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성들에게 이중의 기준을 부과하는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호소하면서 말이죠. 제가 더 놀란 점은 이 영상에 '좋아요'만 1,000여 개가 달렸고, '싫어요'는 거의 보기 어려웠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지금 정치 상황 같았다면 '좌표 찍기'로 댓글이 만선이었을 텐데 말이죠.

안타깝게도 오바마 백악관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공식 영상에는 한글 자막이 달려 있지 않아요. 대신 그의 생각을 더 읽을 수 있는 다른 글을 하나 더 소개해 드릴게요. 오바마는 같은 해 자신의 생일인 8월 4일, 여성지 '글래머'에 기고한 글에서 다시 한번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밝히고, 미국 사회에 뿌리 깊이 만연해 있는 성차별 등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했습니다. ( 기사를 보려면 URL을 주소창에 붙여 넣으세요 →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608051637038624 )우리는 언제쯤 확신을 가지고 성평등을 논하는 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까요.

허스토리는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자리를 뽑는 선거의 풍경이 지금과는 조금 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유권자를 만나고 반대 의견을 충분히 설득하는 대화가, SNS 밈을 통한 자극적 소통을 대체하길 바랍니다. 익명 커뮤니티의 극단적 언어가 '여론'으로 둔갑하지 않길 바랍니다. 조금이나마 더 나은 논의를 함께 길어내는 길에, 우리 함께 해요.

본 뉴스레터는 2022년 1월 13일 출고된 지난 메일입니다. 기사 출고 시점과 일부 변동 사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뉴스레터 '허스토리'를 즉시 받아보기를 원하시면 한국일보에서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이혜미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