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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었다, 또 죽을 것이다

입력
2022.01.22 00: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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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서구 화정동 현대산업개발 아파트 신축공사 붕괴사고 현장에서 타워크레인 해체작업을 하고 있다.뉴스1

광주 서구 화정동 현대산업개발 아파트 신축공사 붕괴사고 현장에서 타워크레인 해체작업을 하고 있다.뉴스1

겨울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길가에는 벌써 몇 차례 흰 국화가 피었다. 이르게 찾아온 봄의 흔적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언 바닥 위의 국화 더미는 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들을 위해 놓인 것이었다.

1월 1일, 11일, 14일, 19일, 20일. 이번 달 뉴스에서 산재 사망 사고 소식을 들은 날짜들이다. 20일에는 두 건의 끼임 사망 사고가 있었고, 14일에는 두 명의 노동자가 중독 사고로 사망했다. 11일에 발생한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의 실종자 다섯 명은 아직 무너진 건물의 잔해 속에 있다. 그리고, 여섯 건의 사고 중 네 건의 사망자는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보도되지 않은 사고를 포함한다면 더 늘어날 것이다.

대개 안전 수칙을 준수했다면, 기업에서 이에 필요한 비용과 장비와 시간을 제공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었고 잃지 않았을 목숨이었다. 사고 후 미디어는 늘 그랬듯 희생자의 안타까운 사연과 사고의 참혹함을 앞다투어 보도했고, 원청 회사의 대표들은 침통한 얼굴로 익숙하게 고개를 숙였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철저히 대책을 세우겠다고 했다. 몇은 대표 자리를 내려놓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 일련의 과정을 보며 환경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이 사고들은 원인을 몰라서 발생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런 면에서 내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반드시 필요한 법안이었고, 또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볼이 잔뜩 부은 기업들이 벌써부터 처벌을 피해 갈 방법을 고심하고, 유력 대선 주자가 '기업 투자를 방해하지 않는 선으로 법안을 재검토하겠다'는 공약을 내놓는 마당에 '처벌'을 골자로 한 이 법안이 억제력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대선을 앞두고 한국의 미래에 관한 온갖 전망들이 쏟아지는 지금, 내게 대한민국의 2022년을 예측해 보라고 한다면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뿐이다. 올해도 많은 노동자가 현장에서 목숨을 잃거나 다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대다수는 영세 기업 또는 하청 업체의 노동자일 것이다. 물론 이 말이 틀리기를 바라지만 산업재해에 대한 기업의 인식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이것은 예측이 아니라 예정된 필연에 가깝다.

만일 누군가 우리에게 올해 수백 명이 사망할 하나의 사고가 예정되어 있다고 말해 준다면 어떨까. 사회 전체가 그 사고를 막기 위해 총력을 다할 터다. 누구도 그에 관한 이야기를 예사로 들어 넘기지 않을 것이다. 2021년 한 해 동안 828명의 노동자가 산재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 828명의 희생자와 유가족에게는 각자의 사고와 수백 명이 얽힌 대형 참사가 전혀 다르지 않다.

몇 가지 글감을 고민하다 이 주제를 고른 것은 그래서다. 열흘째 건물에 갇힌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 피해자들의 생사가 대선 후보들의 질 낮은 사생활보다 주목받지 못하고,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중대재해법의 타당성을 두고 온갖 말이 나오는 상황에서 내 몫의 작은 지면으로나마 수백 명의 노동자가 조용히 죽어 간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었다. 혹자에게는 이 이야기가 다소 진부한 주제로 보일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그 감정조차 사회의 병소다. 지금도, 사람이, 일터에서 죽고 있다. 이것은 결코 진부해져서는 안 되는 사실이다.


유정아 작가·'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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