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배우와 '깐부' 맺은 골든글로브
정작 지상파 방송 3사 연기대상선 '경로 홀대'
최근 5년간 60대 이상 조연상 수상 전무
①가족 미니시리즈 사라지고
②전형적인 노년 캐릭터만 반복
③ 젊은 스타들이 있는 대형 배우 기획사 챙기기
미국 골든글로브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오영수(78)에게 조연상을 주며 한국 노배우와 '깐부'를 맺었지만, 정작 국내 현실은 달랐다. 최근 5년간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 3사 연기대상에서 조연상 트로피를 받은 60대 이상 배우는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주로 조연을 맡는 관록 있는 60대 이상 배우들이 시상식에서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세대를 적극적으로 아울러야 할 지상파가 새로운 노인 서사 개발을 비롯해 노배우 조명에 너무 소극적인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골든글로브·에미상은 '은빛 전당'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지상파 연기대상 수상 및 후보자를 들여다본 결과, 조연상을 받은 최고령 배우는 지난해 김의성(56·'모범택시')이었다. 지난해 조연상 수상 배우들의 평균 나이는 39세. 이런 한국과 달리 골든글로브와 에미상은 '은빛 전당'이었다. 골든글로브는 TV 부문에서 올해 오영수를 비롯해 2020년 스텔란 스카스가드(70·'체르노빌'), 2019년 패트리샤 클락슨(60·'샤프 프로젝트') 등 60대 이상 배우들이 잇따라 조연상을 수상했다. 지난 5년 동안 앨런 아킨(87·'코민스키 메소드'), 헨리 윙클러(76·'배리'), 메릴 스트리프(71·'빅 리틀 라이즈') 등 70대 이상 남녀배우들이 골든글로브 조연상 후보에 줄줄이 올라 조명받았다. 아시아계 배우에 유난히 인색해 인종차별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시상식은 오랜 관록의 배우에겐 빗장을 걸지 않았다.
미국 드라마 시상식 최고 권위의 에미상도 2017년 존 리스고(72·'더 크라운'), 앤 도드(61·'핸드메이즈 테일')에 조연상의 영광을 돌렸다. 2021년 시상식 남녀 조연상 후보엔 매들린 브루어(29·'핸드메이즈 테일') 등 20대부터 앤 도드('핸드메이즈 테일'), 존 리스고, 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63·'만달로리안') 등 60~70대의 다양한 세대의 배우들이 함께 이름을 올렸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오영수는 '오징어 게임'에서 자본주의 위험을 깨우치게 하는 메신저였다"며 "오영수가 넷플릭스 드라마로 해외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것은 그간 우리가 어떻게 중년 배우를 전형적으로 소비했는가를 되짚어 보게 하는 단적인 사례"라고 꼬집었다.
'80대 홀로서기' 인기... "국내는 10여 년 전보다 퇴보"
경로 우대의 나라 한국은 왜 드라마 시상식에선 '경로 홀대'가 이뤄질까. ①가족이 주요 인물로 나오는 미니시리즈가 점점 사라지고 ②누구의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같은 틀에 갇힌 노년 캐릭터만 반복해 생산하며 ③ 방송사가 젊은 스타들이 있는 대형 배우 기획사 챙기기에 급급한 게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지상파에서 노배우들의 서사는 10년 전보다 퇴보했다는 비판이 적잖다. 공희정 대중문화평론가는 "'거침없이 하이킥'(2006)에서 이순재와 나문희를 그냥 노인으로 쓰지 않고 캐릭터에 '노년의 욕망'을 녹여 새로움을 줬다"며 "시간의 힘이 없으면 만들 수 없는 캐릭터가 분명 있고, 지난해 케이블 채널에서 노인의 잃어버린 꿈을 주제로 한 드라마('나빌레라')가 제작돼 잔잔한 울림을 준 반면 지상파에선 그 같은 시도를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다. 넷플릭스는 드라마 '그레이스 앤 프랭키'에서 어느덧 팔순을 넘은 제인 폰다와 릴리 톰린을 앞세워 할머니들의 우정을 재기발랄하게 보여준다. 이 드라마는 뜨거운 인기로 2020년 시즌6까지 제작됐다.
"35세 이상 배우 부르지마"
해외에서의 이런 콘텐츠 제작 시도와 국내 노령화 추세에 맞춰 유명 노배우인 A씨는 "노년들의 시트콤 제작"을 제작진에 여러 차례 제의했지만, 한 번도 긍정적인 답변을 듣지 못했다. A씨는 "오영수씨와 신구씨 그리고 백일섭, 최종률씨가 지금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고, 때론 지방에서 하루 2회 공연까지 하는 건 노배우가 관객을 동원하는 상업적 가치도 있다는 것"이라며 "정작 지상파에서 KBS 주말극을 제외하면 노배우가 설 자리가 없는 게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취재 결과, 올 설 연휴엔 지상파에서 전파를 타는 가족 특집극은 단 한 편도 없다. 또 다른 유명 노배우인 B씨는 "시상식에서 공로상 말고 연기상 후보에 오르고 싶다"며 "차기작 드라마 섭외를 위해 방송사들이 젊은 스타들이 있는 기획사 소속 배우를 챙기기에 '차라리 35세 이상 배우는 초대하지 말라'고 얘기한 적도 있다"고 했다.
66세 국립극단 역대 최고령 시즌 단원 탄생 이유
국회의원('가면')과 검사('복면검사') 등 TV 드라마에서 고위 공무원을 주로 연기한 박용수(66)는 올해 국립극단 시즌 단원으로 활동한다. 45세라는 단원 나이 제한이 올해부터 폐지돼 역대 국립극단 최고령 시즌 단원이 됐다. 박용수는 연기를 계속 하기 위해 무대가 간절히 필요했다. '고위 공무원 전문 배우'란 틀을 깨고 싶은 바람도 컸다. 성상민 대중문화평론가는 "40~50대가 되면 여성 배우는 시어머니 혹은 억척스러운 어머니가 아닌 다른 배역을 맡기 어려워진다"며 "공영방송이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다 보니 'TV 노배우 실종'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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