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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카페에 등장한 민주당원들

입력
2022.01.28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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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희 카페’로 망명한 '反이재명' 문파
美 대선판도 바꾼 ‘초당파 유권자’ 연상
혼탁 대선에도 정치 발전의 작은 성취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네이버에 개설된 김혜경 카페(아래)와 김건희 카페의 초기 화면. 각 카페 화면캡쳐

네이버에 개설된 김혜경 카페(아래)와 김건희 카페의 초기 화면. 각 카페 화면캡쳐

네이버에는 여야 대통령 후보 부인들의 팬카페가 동시 개설되어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부인 김혜경씨의 ‘김혜경 팬카페-경사났네’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부인 김건희씨의 ‘김건희님 공식 팬카페(건사랑)’이다. 자발적으로 모인 지지자들이 자기 후보와 부인의 장점과 공약은 최대한 미화하고, 상대방의 불리한 소식은 신속하고 널리 알리려 경쟁 중이다.

그런데 카페 구성이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우선 비슷한 점. 모두 상대방 약점을 제보 받는 게시판이 있다. 김혜경씨 카페에는 각각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김건희씨의 비리ㆍ의혹을 접수하는 게시판이 있다. 김건희씨 카페에도 이재명 후보, 김혜경씨, 대장동 의혹, 여배우 스캔들 등의 관련 의혹을 다루는 게시판이 있다.

다만 김건희씨 카페에는 김혜경씨 쪽에 없는 게 있다. ‘깨시연(민주당) 출신 망명방’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중국 상하이에서 망명정부를 세운 것처럼, 민주당 지지자들이지만 이 후보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위한 곳이란다. 28일 현재 ‘망명방’에는 150여개 글과 그에 붙은 댓글이 게시되어 있다. 김건희 카페로 망명한 심정을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이 후보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주장하던 고 이병철씨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도 있다. ‘망명객들의 본심을 믿을 수 없다’는 국민의힘 토박이들의 반발도 가끔 눈에 띈다.

일부 민주당원들의 변심은 여론조사에서도 감지된다. 이병철씨 사망(11일) 전 이뤄진 리얼미터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윤 후보를 찍겠다는 비율은 4.0%였으나, 최근(24, 25일) 조사에서는 7.0%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국민의힘 중 이 후보를 선택한 비율(2.9%→3.1%)은 큰 변화가 없다.

카페 망명을 보며 2020년 미국 대선의 운명을 가른 ‘바이든 리퍼블리컨’, 즉 바이든 후보를 찍은 공화당원들이 떠올랐다. 고 존 매케인 상원의원(공화ㆍ애리조나)의 부인 신디 매케인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의 품격을 강조하며 “바이든은 미국인들을 하나로 모을 것”이라고 지지선언을 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등 바이든 편에 선 공화당 거물만 750명이 넘었다.

바이든 리퍼블리컨의 등장은 ‘제도적 자제’라는 민주적 규범을 지키려는 자성적 시도로 해석됐다. ‘제도적으로 허용됐어도 권력은 신중하게 행사돼야 한다’는 미국 민주주의 전통이 트럼프에 의해 무너지는 걸 막으려는 초당파적 선택이었다. 사실 미국에서는 초당파적 투표 행태의 전통이 깊다. 1980년대 레이건 시대를 연 것도 ‘레이건 민주당원’ 때문에 가능했고, 2008년 버락 오바마가 당선된 것도 공화당원이면서도 지지한 ‘오바마콘’ 때문이다. 바이든의 당선을 놓고, 정치칼럼니스트 존 애블론은 “미국 정치를 ‘분열의 프리즘’으로 보는 데 익숙하다 보니 놀라울 수 있지만, 미국 역사에는 위대한 초당적 움직임이 여러 번 있었다”고 평가했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은 흔했지만, 한국 정치에서 풀뿌리 지지자들이 초당파적 행태를 보인 건 매우 드물다. 물론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민주당에서는 배신자라는 비판이, 망명지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 후 안위를 보장 받으려는 문파들의 양다리 걸치기’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하지만 어느 모로 봐도 ‘보스와 조직이 결정하면 무조건 따른다’는 일사불란보다는 좋다. 설득력있는 이유를 대며 ‘이재명을 찍겠다’는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나온다면, 그것도 좋다.

이번 대선은 혼탁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러나 누가 당선되더라도, 풀뿌리 유권자의 초당파적 움직임이 본격화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정치 발전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겠다.

조철환 에디터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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