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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영끌하래?"

입력
2022.02.1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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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최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밀집 지역 모습. 뉴스1

최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밀집 지역 모습. 뉴스1

"집이 자가(自家)세요?"

작년 이맘때 이 말을 못해도 열 번은 들은 것 같다. 직업 특성상 처음 보는 출입처 사람들과 밥을 먹을 때가 많은데, 그 처음 보는 사람들 입에서 저런 질문이 망설임 없이 나와 아연했던 기억이 있다.

대답을 해도 끝이 아니었다. 일행 중 집이 있다는 사람한텐 어느 동네인지, 언제 샀는지 같은 후속 질문들이 이어졌다. 조금만 더 입을 열었다가는 대출은 얼마나 있냐고 물어볼 기세였다. 집을 안(못) 산 사람들은 저마다 안 사고 못 산 이유를, 겸연쩍은 얼굴로 털어놨다. 부동산 시장이 그야말로 폭주하던 때, 밥상머리 대화는 이토록 노골적이었다.

하긴 30대 중반, 동창들만 만나도 집 얘기가 빠지지 않았다. 집이 있든 없든, 기혼이든 비혼이든 월급이 많든 적든 너나 할 것 없이 '집 타령'들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우리 팀장, 너네 부장 욕하며 깔깔대기 바빴던 80년대 중반에 태어난 중생들 입에서 집값이 어떻고, 금리가 얼마고, 입지가 어쩌고 같은 팍팍한 언어들이 쏟아졌다.

실제로 이들은 시장에 참전(參戰)했다. 한국부동산원이 조사해보니 지난해 전국에서 아파트를 구입한 3명 중 1명(31%)은 2030 세대였다. 특히 서울은 지난해 2030 매입 비중이 약 42%에 달했다. 가파른 집값 상승에 놀란 가슴 부여잡고 '패닉 바잉'에 나선 것이다. 때와 장소 구분 없이 집 얘기를 안 할 수 없었던 건, 그만큼 집을 많이들 샀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비싸게.

집값 상승세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너무 올랐다는 피로감과 대출 틀어막기 등이 거침없던 오름세를 누른 요인으로 꼽힌다. 1등급 신용에 우대금리를 싹싹 긁어도 4% 미만의 대출금리를 찾기 힘들다. 그야말로 자고 일어나면 금리가 올라 있다. 거래 실종 뉴스까지 쏟아진다. 적지 않은 대출로 집을 산 사람들, 특히 그리 많지도 않은 벌이에 그리 좋지도 않은 집을 계약한 2030은 점점 표정관리가 안 되고 있다. 이들의 선택은 잘못됐던 걸까.

관료를 지낸 한 교수가 최근 지나가는 말로 이런 말을 했다. “젊은애들, 빚 무서운 줄 모르더니.” 틀린 말이 아니다. 영영 집 못 살까 봐 ‘영끌’했던 이들은 피해자가 아니다. 당장 빚내서 집 사라고, 총알이 좀 부족하면 갭투자라도 하라고 등 떠민 사람 아무도 없다. 게다가 집값은 그동안 오른것에 비하면 하락의 'ㅎ'도 시작하지 않았다. 이러다 또 오르지 말란 법 없고, 설령 대세 하락이 시작된다 해도 대출 있는 사람 모두가 똑같이 힘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냥 두고만 봐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의 빚이 최악의 부실이 되지 않도록 리스크는 관리가 돼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영끌족 중엔 주택담보대출(주담대)과 신용대출을 동시에 받은 이중 채무자가 적지 않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신규 주담대를 받은 사람 중 신용대출을 함께 받은 대출자 비중은 약 42%로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상환 기간을 연장하거나, 실수요자 대출을 중심으로 정부가 신용 보증 방식을 다변화하는 등 혹시 모를 부실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출 상환에 실패한 채무자를 대상으로 한 신용회복 프로그램을 정교화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미쳐 날뛰던 집값이 한참은 더 떨어져야 정상이란 당위성과는 별개로 말이다.

조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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