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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고 두만강 건넜는데, 이제와 입지 말라고?”...中 조선족 사회의 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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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고 두만강 건넜는데, 이제와 입지 말라고?”...中 조선족 사회의 반문

입력
2022.02.25 04:30
수정
2022.02.26 09:2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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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베이징 현지 인터뷰]
조선족 3세 이령 전 베이징사범대 교수 인터뷰
"내 어미의 어미 때부터 입었던 한복
한국 것이니 입지 말라 요구는 황당하다"
"조선족에 한족 옷 입히면 박수 보낼 텐가"

조선족 3세인 이령(가운데) 애심네트워크회장 대학생 시절인 1984년 10월 중국 베이징 텐안먼 광장에서 열린 건국기념일 행사에 조선족 대표로 참가해 한복 차림으로 다른 소수 민족 대표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이령 애심네트워크회장 제공

조선족 3세인 이령(가운데) 애심네트워크회장 대학생 시절인 1984년 10월 중국 베이징 텐안먼 광장에서 열린 건국기념일 행사에 조선족 대표로 참가해 한복 차림으로 다른 소수 민족 대표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이령 애심네트워크회장 제공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한복이 등장하면서 국내 여론이 들끓었다. 우리 고유의 전통의복을 중국인의 것인 양 '문화 공정' 야욕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정작 난감한 입장에 빠진 쪽은 중국 내 조선족 동포들이다. 일제강점기 만주로 건너가 중국에 정착한 재중동포들.... "내 어미가 입었고, 그 어미의 어미가 입었던 '조선의 저고리와 치마'를 고국의 한국인들이 입지 말라는 것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는 게 이들의 항변이다.

재중동포 여성 단체인 '애심네트워크'의 이령 회장(전 북경사범대 무용학과 교수)은 중앙민족대학 재학 시절인 1984년 중국 건국기념일 행사에 한복을 직접 지어 입고 소수민족 대표로 참가한 바 있다. 이 회장은 베이징올림픽 폐막식이 열린 지난 20일 차오양구 모처에서 진행한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내 민족을 상징하는 옷을 입고 텐안먼 광장을 행진할 때의 감동이 지금까지 생생하다"며 "한복은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때도, 38년 전 내가 조선족 대표로 참가한 건국기념일에도 여지없이 등장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이제 와서 '한복은 한국의 것이니 입지 말라' 하면, 우리는 무엇을 입으란 말이냐"고 토로했다.

1980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1회 전국소수민족 무용콩쿠르에 참가한 연변가무단 소속 배우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이령 애심네트워크회장 제공

1980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1회 전국소수민족 무용콩쿠르에 참가한 연변가무단 소속 배우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이령 애심네트워크회장 제공

-한복 논란에 대해 조선족 사회는 어떻게 받아들이나.

"나는 조선족 3세다. 1960년 연변 용정시에서 태어났다. 중앙민족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했고, 2000년부터 북경사범대 무용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은퇴한 뒤 우리 민족 문화를 중국에 알리며 봉사 활동도 펴는 애심네트워크 회장으로 일하는 중이다. 대학생이던 1984년 중국 건국 35주년 기념식에 어떤 조선옷을 입고 나갈까 고민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난해 중국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중국 내 조선족은 170만 명으로 55개 소수 민족 가운데 15번째로 많다. 한국 거주 조선족은 약 72만 명이다. 이는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 236만 명에서 3명 중 1명이 조선족이란 얘기다.

-건국기념일 행사에 매번 한복이 등장하나.

"건국절뿐인가. 중국은 각종 대형 행사에 한족을 제외한 55개 소수민족 대표들을 초청한다. 2008 하계올림픽 때도 한복을 입은 수십 명의 무용수들이 개막식 식전 행사에 참가했다."

-이번 개막식 때 한복 여성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나.

"반가웠다. '아, 우리 민족 대표가 나왔구나' 하며 56개 민족 대열 가운데 어디쯤 서는지도 유심히 살펴봤다. 눈에 띄는 자리에 서는 게 자랑스러운 일이니까. 이번 한복은 유달리 밝고 곱더라."

이령 애심네트워크회장이 20일 중국 베이징 모처에서 가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불거진 한복 논란에 대한 생각을 말하고 있다. 베이징=조영빈 기자

이령 애심네트워크회장이 20일 중국 베이징 모처에서 가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불거진 한복 논란에 대한 생각을 말하고 있다. 베이징=조영빈 기자


-많은 한국민들은 중국의 '문화 공정' 야욕으로 해석한다.

"한마디로 황당하다. 중국에 살지만, 조선 민족이라는 정체성은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았다. 한국의 전통의상이니, 입지 말라 하면, 대대손손 한복을 입어온 우리는 누구란 말인가. 한복을 입었다고 지적할 게 아니라, (중국 정부가) 만에 하나 조선 옷을 입지 못하게 하는 게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하지 않겠나."

-이번 논란에 대한 조선족 사회의 반응을 들려달라.

"나만 서운한 게 아니다. 각종 조선족 커뮤니티에 한복 논란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글들이 넘쳐나고 있다. 국적은 달라도 한 뿌리라고 믿었던 한국민들이 야속하다는 것이다.”

-논란이 불거진 원인이 뭐라고 보나.

"역사의 망각이다. 조선족은 일제강점기 한반도를 떠나 지금의 동북 3성 지역에 정착한 이들이다. 이 중 상당수는 만주에서 독립 운동을 하고자 했던 사람들, 또는 그 동료들의 후예다. 나는 지금도 학생들에게 '우리는 조선 치마, 조선 저고리 차림에 장구 둘러메고 두만강을 건너왔다고 가르친다. 100년도 지나지 않은 이런 역사가 한국에서 너무나 빨리 잊혀지고 있다."

4일 오후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한복을 입은 조선족 대표가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4일 오후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한복을 입은 조선족 대표가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조선옷'이란 표현을 자주 쓰는 이유가 있나. 조선옷과 한복은 다른가.

"한복이란 말이 언제 생겨났다고 생각하나. 아무리 빨리 잡아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다. 그 전까진 '조선 저고리', '조선 치마', '조선옷', '우리 옷'이라고 불렀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의 영향력이 급격히 커졌고, 자연스럽게 조선옷보다 한복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논란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은 적절했나.

"한국 정부는 중국에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직접 항의하진 않았다. 공식 항의했을 경우 외교적 망신이 될 것이란 점을 정부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재명·윤석열 같은 대선 후보들은 되레 반중 감정을 부추기는 듯했다. 조선족도 품지 못하면서 한반도 평화니 남북통일 운운할 수 있나."

-한국을 위성국가 취급하는 중국인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한중 간 역사 논쟁이 있어온 점은 물론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전통 의상을 어째서 중국이 가져다 쓰냐'고 항의하는 나라가 한국 말고 또 있나? 개막식에 55개 소수민족 대표가 참가했고 모두 전통 의상을 입고 나왔다. 그중에는 러시아 민족도 있었다. 중국이 러시아에 대한 문화공정을 시도한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다. 혹시 중국이 조선족 대표에게 억지로 한족 의상을 입혔다면 박수를 보내겠다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베이징= 조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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