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그룹이 2일 출범하는 지주회사 포스코홀딩스 주소지를 서울에서 경북 포항시로 옮기겠다고 하면서 '지주회사 소재지'를 둘러싼 포스코와 포항시민 간 갈등이 당장은 봉합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현재 서울사무소의 직원을 어느 정도까지 포항에 둬야 할지 결정이 쉽지 않고, 주주들의 동의 여부도 불투명해 포스코로서는 유예기간 1년 동안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정치권 압박에 백기 든 포스코
1일 재계에 따르면, 포스코는 지주회사 출범을 5일 앞둔 지난달 25일 포항시와 내년 3월까지 포스코홀딩스 소재지를 포항으로 이전하는 데 합의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센터에 있는 미래기술연구원 본원도 포항으로 옮기기로 했다. 올해 1월 초 설립된 미래기술연구원은 포스코그룹의 신성장산업 연구개발(R&D) 컨트롤 타워다.
포스코는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걸 막기 위해 전격 합의했다"고 설명했지만 재계에서는 의아스럽다는 반응이 많다. 전날까지 지주회사 설립 당위성과 서울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강조하다 하루아침에 포항 이전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포스코의 입장 선회 배경에는 정치권 압박이 크게 작용했다. 한 정계 관계자는 "대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포스코에 지주사를 포항에 둬야 한다고 강하게 요청했다"며 "합의 이후 정치권이 왜 앞다퉈 자기네 공이라며 경쟁을 벌이겠나"라고 반문했다.
포스코와 포항시의 합의문이 발표되기 직전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포스코 지주사의 포항 유치를 위해 최정우 포스코 회장과 자주 소통했는데, 오늘 전화로 최 회장과 지주사를 포항에 두기로 합의했다"며 최 회장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같은 날 오후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포항북구)이 전중선 포스코 사장을 만난 직후 비슷한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고, 이후 포스코에서 합의를 이뤘다는 설명자료가 나왔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치권 압박으로 민간회사 본사 소재지가 바뀌는 나쁜 선례가 만들어졌다"고 한숨을 쉬었다.
"포항에 갈 걸 왜 힘들게 쪼갰나" 비판 줄 이어
하지만 포스코홀딩스 소재지를 서울로 정한 건 지난달 임시주주총회에서 주주투표로 결정한 사안이라 뒤집는 게 절차상 간단한 일은 아니다. 지주회사는 전국에 흩어진 자회사들의 사업을 조율하고 신사업과 투자처 발굴이 주 임무다. 지주회사 산하 미래기술연구원을 서울에 두기로 한 것도 우수한 연구인력을 끌어모으기 위해서였다.
주주들도 이에 동의해 지주회사 출범을 위한 물적분할 안건에 찬성표를 몰아줬다. 일련의 과정을 감안하면 포스코홀딩스를 포항으로 옮기는 것은 포스코의 지주회사 전환 논리에 배치된다. 200여 명 규모인 지주회사 직원 중 몇 명을 포항으로 보내야 할지, 미래기술연구원 본원 규모와 인재 확보 방안은 어떻게 해야 할지 등 현실적 문제도 있다.
당장 포항으로 주소지만 옮기는 '무늬만 이전'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지적이 쏟아지는 것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지역사회는 지주회사 핵심 기능을 포항으로 이전하는 건 물론 지역 발전을 위해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포스코 단지를 조성한 것처럼 포항에도 대규모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포스코는 "이사회 및 주주 설득과 의견수렴을 통해 포항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큰 틀에서 합의한 상태라 관건은 주주들의 동의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포스코 최대주주는 국민연금공단(9.75%)이고 2대 주주는 씨티은행(7.3%)이다. 나머지 80% 정도는 외국인 투자자나 기관투자자, 개인들이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연금공단이야 반대할 가능성이 적지만 외국인 투자자를 설득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이미 포스코 주주게시판에는 '결국 포항으로 갈 걸 왜 힘들게 물적분할했느냐' 등의 비판글이 줄을 잇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포스코는 지역사회는 물론 주주들까지 공감할 수 있는 세부안을 짜야 하는데 고민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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