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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안보 사명 사수" 尹측 "매달릴 일 없다"... 퇴로 없는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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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안보 사명 사수" 尹측 "매달릴 일 없다"... 퇴로 없는 충돌

입력
2022.03.23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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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집무실 용산행 두고 갈등 격화
문 대통령 "조금의 안보 빈틈도 안돼"
윤 당선인 측 "청와대 절대 안 들어가"
신구 권력 갈등에 '당선인 비전' 실종

지난 2019년 7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신임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간담회장으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2019년 7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신임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간담회장으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 용산행’을 두고 22일 또 다시 요란하게 충돌했다. 양측이 워낙 강경해 당장 퇴로가 보이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22일 “군 통수권자로의 책무를 다하는 게 마지막 사명”이라고 했다. 집무실용으로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를 비워 달라는 요청을 거듭 물리친 것이다. 윤 당선인 측 역시 “절대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을 테니, 문 대통령에게 매달릴 일 없다”며 굽히지 않았다.

'집무실 블랙홀'로 모든 게 빨려들어갔다. '정권 이양'이라는 말 자체가 실종됐다. 오미크론 대유행 저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대응 등 시급한 민생·외교 이슈는 뒷전이 됐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만나 담판을 짓거나 타협을 하는 게 유일한 해법이지만, 22일 저녁까지 그럴 조짐은 없었다. 정권 교체기 공공기관 인사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따지는 문제도 양측 사이에 잔뜩 꼬여 있기 때문이다.

‘안보, 작은 공백도 있을 수 없어’ 文의 원칙론

문 대통령은 22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정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가원수이자 행정수반, 군통수권자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것을 마지막 사명으로 여기겠다”고 했다. 대통령 임기(5월 9일)까지는 국방부 이전 등을 결정할 권한이 현 정권에 있으며, 안보 공백이 초래될 결정은 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국정에 작은 공백도 있을 수 없다. 국가 안보와 국민 경제, 국민 안전은 한 순간도 빈틈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윤 당선인의 집무실 이전 과속이 국민과 국가를 위태롭게 한다고 꼬집은 것이다.

문 대통령은 임기 내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진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국방력 강화에도 힘을 쏟았다. "북한에 매달리느라 안보를 포기했다"는 비판을 듣지 않기 위해서다. 원칙주의자인 문 대통령은 집무실 이전 과정에서 ‘안보 홀대’가 발생하는 상황을 용납할 수 없다고 작심한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인이 국방부 이전과 관련 정부 예산 편성을 요구할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도 감안했을 것이다.

‘현정부에 굴복 안 해’ 尹의 배수진

윤 당선인 역시 강경하다. 국방부 이전이 가로막힌다면 청와대에 들어갔다가 용산으로 옮기는 것이 대안이지만, 그는 선택지에서 제외했다. "종로구 통의동 당선인 집무실에서 대통령 업무를 계속 보다가 용산 집무실이 준비되면 들어가겠다"는 배수진을 쳤다. 관저가 문제로 떠오르자, 현재 자택인 서울 서초구 아크로비스타에서 통의동으로 출퇴근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참모들은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등에서 근무하게 할 준비를 하고 있다. "청와대엔 절대 발을 들이지 않겠다"는 게 확고한 방침인 셈이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난관을 이유로 꼭 해야 할 개혁을 우회하거나 미래 국민의 부담으로 남겨두지 않을 것”이라며 ‘용산 시대’ 이행 의지를 드러냈다.

윤 당선인 측의 반응은 한껏 거칠어졌다 “그분들이 안보 운운하는 자체가 굉장히 역겹다”(김용현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 팀장) “무슨 염치와 원한으로 새정부의 발목을 잡는가”(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의 원색적 비난이 쏟아졌다.

윤 당선인은 '문재인 정부 심판자'로서 정권을 잡았다. 측근들은 현 정부에 굴복할 수 없다는 각오가 결연하다.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판단도 깔렸다. 한 측근 인사는 "5월 10일 대통령 취임 이후엔 예산권, 군통수권을 어차피 우리가 갖게 된다"며 "매달리지 않겠다"고 했다. 더구나 권력의 압박을 뚫고 나가는 윤 당선인의 직진형 리더십도 강경 대응의 동력이 되고 있다.

신구 권력 충돌에 민생ㆍ비전 실종

'청와대냐 용산'이냐가 정국을 뒤덮으면서 윤 당선인이 기대한 산뜻한 정권 출발은 난관을 만났다. 민생ㆍ경제ㆍ외교·정책 이슈에 대한 윤 당선인의 비전은 민심의 관심에서 한참 멀어졌다. 문 대통령 역시 "결과적으로 순탄한 정권 이양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책임을 안았다.

다만 양측이 극적 타협 가능성에 못질을 한 건 아니다. 청와대는 대화를 통한 해결 여지를 남겨 뒀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새 정부의 집무실 이전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며 “안보 공백이 우려되는 지점에 대해 협의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소수 의견이지만, 윤 당선인 측에서도 협상론이 조심스럽게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짐을 싸서 나가는 입장이지만 우리는 시작하는 정부인데 갈등 관계가 부각되는 상황이 부담스럽다”며 “집무실 용산 이전 문제에 인수위가 함몰됐다는 여론도 면밀히 살피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양측이 대화와 타협으로 갈등을 조정할 가능성은 낮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과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회동을 위해 협상을 벌이고 있으나, 상황이 진전됐다는 소식은 없다. 양측은 집무실 용산행 외에도 공공기관 인사권,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이슈를 놓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회동을 어떻게 하겠냐”고 했다.

정지용 기자
김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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