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내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 이상이 사용할 교과서 검정 결과를 전날 발표한 가운데, 역사 교과서에서 “일본 정부의 통일된 견해”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정된 사례가 14건으로 2014년 검정 기준 개정 후 가장 많았다고 아사히신문이 30일 보도했다. 일본 학계 일각에선 정부의 역사교과서 집필에 대한 규제를 놓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아사히에 따르면, 지리·역사·공민 교과서에 정부 견해를 기술하라는 기준이 추가된 것은 아베 신조 내각 당시인 2014년 1월이다. 교과서 출판사가 기술한 내용이 타당한지 여부를 확인만 했던 이전과 달리, 이때부터는 검정이 구체적인 내용을 지적하는 방식으로 크게 전환했다. 이후 수정된 건수는 2014년 4건, 2015년 1건, 2016년 3건, 2020년 1건이었는데, 이번엔 14건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신문은 “지난해 4월 각의 결정이 내려진 시점과 출판사들의 검정 신청 시기가 겹치면서 출판사 측이 수정하기 어려웠던 점”도 이유로 설명했다.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 4월 전시 중 한반도에서 온 사람들이 일본에서 노역한 것을 ‘강제연행’ 또는 ‘연행’이라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답변서를 각의 결정했다. 고노 담화에 사용된 ‘종군 위안부’란 표현도 “단순히 ‘위안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각의 결정했다. 이번 검정 과정에서 문부과학성은 ‘종군 위안부’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 ‘연행’ 같은 표현이 사용된 교과서에 “정부의 통일된 견해에 근거한 기술이 돼 있지 않다”며 수정을 요구했고, 거의 모든 교과서가 수정했다.
학교 현장과 교과서를 집필하는 학계에서는 일본 정부의 역사 교과서 개입 압력이 더 심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편집자는 아사히신문에 “(검정에) 합격하기 위해선, 어쨌든 말한 대로 고쳐야 한다”며 정권 의향에 따른 기술이 늘어날 것을 우려했다. 도쿄신문은 “전보다 ‘이걸 반드시 쓰라’는 자세가 강해진 것 같다”는 도쿄도내 사립고 교사의 지적을 전했다. 그는 “부정적인 부분을 희석시켜 가르치는 것은 역사에 대한 겸허함이 부족한 것"이라며 "국정교과서가 아닌 만큼 정치적 의도는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시다 유타카 릿쿄대 명예교수(일본 근현대사)도 “(이번 검정에서) 가해에 대한 기술이 약해진 것은 문제인 데다가, 역사적 평가를 포함한 용어를 각의 결정해 정부 견해로 고쳐 쓰게 하면 집필자는 저항할 수 없다"며 "검정제도가 유명무실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앞으로 교과서 회사 측도 아예 검정 신청 전부터 정부 뜻에 따라 쓰는 등 자율 규제가 진행되고, 역사의 어두운 면에는 눈을 돌리지 않고 듣기 좋은 이야기만 실리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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