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엘리베이터 놔두고 에스컬레이터 탔나?" 서울 지하철역에서 4월 7일 에스컬레이터를 타다가 한 전동휠체어 이용자가 사망했다는 기사 댓글을 보니 위험한 선택을 한 고인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가득했다. 휠체어 타는 딸이 있는 나도 '굳이 왜 에스컬레이터를?'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주변에서 20년 이상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다. "엘리베이터가 없을 때는 뒤에서 잡아 달라고 하고 에스컬레이터 탄 적도 있었어요." 아. 어디나 엘리베이터가 존재해 작동할 거라는 전제가 없는 시절을 나는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리프트에서 장애인들이 떨어져 사망한 후 장애인 활동가들이 지하철 철로에 내려가는 등 지난 20년간 시위의 산물이다.)
그러다가 장애전문매체 '더인디고'의 기사를 보게 됐다. 김훈배 공공교통정책위원이 직접 문제의 지하철역에 가서 찍은 엘리베이터 사진이 나와 있었다. 사진을 보는 순간 왜 안 타려고 했는지 짐작이 갔다. 우선 일반 엘리베이터와 달리 좁은 통로가 제법 깊게 있다. 기사를 쓴 분은 직접 엘리베이터 간격을 재봤다. 엘리베이터 입구 폭이 90㎝였다고 한다. 실제 그 역에서 휠체어를 이용해 본 지인들은 "내 휠체어는 비교적 작은 편인데도 저 폭은 좁더라"고 말한다. 2008년에 엘리베이터 설치 규정을 보면 승강기 앞에 150㎝의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 규정이 나오기 전에 설계가 된 거다.
휠체어는 휠체어를 돌리기 위해 충분한 공간이 필요하다. 장애인 주차구역이 다른 주차구역보다 넓고 비워 두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저런 좁은 엘리베이터를 향해 육중한 휠체어로 진입하는 건 마치 동굴에서 몸조차 돌릴 수 없는 좁은 곳에 몸을 끼우는 느낌이 들었을 거다.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휠체어 이용자들에겐 괴로움의 공간이기도 하다. 엘리베이터 수는 항상 이용자에 비해 적고 타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내가 아는 대학생 휠체어 이용자는 새치기하는 어르신들과 싸우기 싫어서 항상 엘리베이터 앞에서 5~10분 기다린단다. 내 딸도 엘리베이터 앞에서 몇 번 새치기당하다가 타면 휠체어 때문에 좁다며 욕하는 어르신들이 있단다. 어떤 휠체어 이용자는 어르신들끼리 "휠체어에 먼저 양보해야 한다"를 가지고 싸우는 바람에 마음이 불편하단다. 이렇게 항상 엘리베이터가 만원에 북새통을 이룬다면 엘리베이터 고장 확률도 높아진다. 결정적으로 엘리베이터가 고장나면 휠체어 이용자는 다른 역으로 빙 돌아가거나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휠체어 이용자의 다른 교통수단 선택지는 극히 드물다. 저상버스는 드문드문 오고 장애인콜택시는 서울의 경우 평균 대기시간만 30분이다.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율 94%'라는 수치의 함정이다.
고인에게 물어볼 순 없으나 그가 엘리베이터를 아예 못 타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이 엘리베이터를 설계하고 운영한 곳이 고인의 죽음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다만 공공디자인에 대해 생각해 보자. 디자인은 미적인 것보다 편리하고 안전한 것이 더 큰 가치다. 시설물 수가 부족해서 사고가 유발된다면 그것도 설계와 디자인의 실패다. '법적 책임 없음. 끝'이라며 쉽게 판단할 일일까? 지하철 리프트에서 리프트 호출 버튼을 누르려다 휠체어 이용자들이 떨어져 사망한 후 버튼의 위치가 뒤편으로 조정됐다. 위험을 감수하게 만드는 디자인은 좋은 디자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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