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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키시는 그 팝콘, 직원들 수명 갉아 내드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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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키시는 그 팝콘, 직원들 수명 갉아 내드린 겁니다"

입력
2022.05.08 13:00
수정
2022.05.09 13:41
0 0

거리두기 해제, 영화관 취식 가능해지자
영화관 직원들 "인력 부족하다" 아우성
"12시간 동안 밥은커녕 화장실도 못 가
본사는 팝콘 등 기본 물품도 보충 안 해줘"

지난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에서 시민들이 영화 상영 시간표 앞을 지나고 있다. 뉴시스

지난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에서 시민들이 영화 상영 시간표 앞을 지나고 있다. 뉴시스

영화관 직원이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휴식시간 없이 하루 12시간 일하고 있다"며 인력난을 호소하는 글을 게재했다. 지난달 18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됐고, 마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2' 개봉과 어린이날이 맞물려 특수가 예상됐지만 경영진이 이에 대비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6일 블라인드에는 한 CGV 직원(t********)이 '지금 시키는 그 팝콘, 직원들 수명 갉아 내드린 겁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코로나19 이전엔 영화관당 직원이 6, 7명 있었고 아르바이트생들도 20~50명씩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직원 3명이 3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그는 휴무를 보장받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화재, 안전문제, 그 어떤 사건사고가 터져도 해결 못 해드린다"고 호소했다.

지난달 25일부터 영화관 취식이 가능해졌고 모두가 잘될 거라 예상했던 '닥터 스트레인지2'가 개봉했는데 본사는 옥수수, 오일, 팝콘컵, 콜라컵 등 기본 물품들을 보충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발주를 안 한 게 아니라 3주 전부터 본사가 물량을 통제하고 지정된 수량만 넣어 줬다"고 했다.

그는 이처럼 열악한 상황이 맞물려 "매점엔 대기 고객만 300명을 넘어가고 아르바이트생 2명이서 모든 주문을 다 해결하고 있고, 현금결제 대기줄, 티켓 재결재, 환불 대기줄을 쳐내느라 정직원도 12시간씩 밥은커녕 물도, 화장실도 못 가고 일하고 있다"고 썼다.

그는 블라인드 이용자들에게 "내가 간 지점은 팝콘이 잘 나와서 저희가 배부른 푸념하는 것 같나. 그거 팝콘 아니다. 뒤에서 어떻게든 재고 요리조리 옮겨서 고생하는 영업팀 사람들과 12시간씩 배고픔 참고 클레임(항의) 참고 참고 참으며 일하는 현장 직원들, 아르바이트생, 미화직원들 수명 갉아서 드린 거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직원들도 "우리도 마찬가지"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 시설 내 매점의 모습. 뉴시스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 시설 내 매점의 모습. 뉴시스

6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어린이날(5일) 전국 극장을 찾은 관객 수는 지난해(32만6,744명)보다 무려 100만 명 증가(130만6,980명)한 것으로 집계됐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전 4월 주말 평균 관객 수는 약 14만2,447명이었다. 관객 수는 거리두기 해제 직전 주말인 지난달 16, 17일 각각 21만6,276명, 17만9,428명으로 증가해 지난 1일까지 주말 평균 약 20만,4487명이 극장을 찾았다.

CGV의 다른 직원(d*******)도 "휴무 없고 월화수목금토일 일한다. 현장에만 붙박이라 사무 업무는 넘쳐 흐른다. 책상에 언제 앉겠나"라며 "2, 3명이서 9시간 내리 쉴 새 없이 주문받다 보면 '다 돌아가세요. 오지마세요' 소리지르고 싶은 감정이 주체가 안 된다"고 한탄했다. 또 다른 직원은 "연차는 사치이고 휴일에도 집에서 일한다. 맞다. 우리가 이렇게 길들여졌다"고 자조했다.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 등 타 영화관 직원들도 "우리도 마찬가지"라며 이 글에 공감했다. 메가박스의 한 직원(호***)은 "규제는 빠르게 풀리는데 영화관은 정상화될 준비가 안 돼있다. 현장은 인력이 없어서 티켓 확인을 안 하는 등 포기할 부분은 다 포기했는데 본사는 이벤트를 기획하는 등 매출 욕심만 부린다. 이 과정에서 퇴사하지 않은 정직원들만 등터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역시 안전 문제를 우려했다. "본문 글의 내용은 팩트"라며 "영화관에서 사고가 나면 대응이 미온적이거나 대응 불가일 확률이 높다. 갑자기 영화가 안 나오는 사고가 발생하면 대응 가능할 인력이 없으니 상영 재개 못 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롯데시네마의 한 직원(S*****)은 "당장 오징어, 나쵸, 핫도그 재료 전량 소진이고 다음 날 오전 중으로 옥수수, 오일, 음료·팝콘컵 다 나가면 뭐라고 응대해야 할 지 착잡하기만 하다"고 했다. 그는 타 직종 이용자들에게 "저희도 최대한 응대하고 있으니 너무 대기 시간이 길거나 상영관 바닥에 아주 약간의 팝콘 부스러기가 보여도 너그러이 양해 부탁드린다"고 양해를 구했다.



"한 명이 팝콘 조리, 티겟 검수, 청소까지 다 하더라" 관객도 공감

다중이용시설 내 음식물 섭취 제한이 해제된 지난달 25일 오후 대구 중구 한 대형 영화관을 찾은 한 관객이 팝콘과 음료를 들고 있다. 뉴시스

다중이용시설 내 음식물 섭취 제한이 해제된 지난달 25일 오후 대구 중구 한 대형 영화관을 찾은 한 관객이 팝콘과 음료를 들고 있다. 뉴시스

타 직종의 블라인드 이용자들은 코로나19 전후로 영화관에 갔던 경험을 떠올리며 영화관 직원들의 고충에 공감하고 있다. 한 이용자(L********)는 "메가박스에서 '닥터스트레인지2' 개봉날 보고 왔는데 표 검사하는 직원도 없어서 사람들이 양심껏 입구 앞에서 기다리다가 결국 상영시간 다 돼서 그냥 들어갔다"고 댓글을 달았다.

그는 "한적할 때도 직원 한 명이서 팝콘 조리, 티켓 검수, 청소까지 다 하더라"며 "콜라 준비하다가 헐레벌떡 티켓 확인하러 뛰어오는 거 보는데 진짜 인력 보충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코로나19 탓으로 티켓값도 올렸으면서 인력은 왜 그대로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이용자도(w*******) "어린이날 '닥터스트레인지2' 보고 왔는데 직원들 진짜 바쁘더라. 윗 세대들은 서비스 제공하는 사람들의 고통은 하나도 안 보이나 보다"고 우려했다.

해당 글은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공유돼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본 인기 게시 글에 올랐다. 축구·스포츠 커뮤니티 이용자들도 대부분 "어제 영화관 화재 사이렌 울려서 나갔었는데 안내가 제대로 안 되더라. 필수 인력도 없는 느낌이었다"(백****), "이제 다시 사람 뽑아야 한다. 정상화되기까지 고생하겠다"(케*)며 공감했다.

블라인드와 온라인 커뮤니티의 일부 이용자들은 그러나 "왜 경영진 문제를 손님이 이해해야 하나", "상황이 열악한 건 알겠는데 직원들 태도에서 불친절이 언급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거나 사측 입장에서 "어떤 산업이든 인력난이나 급변하는 상황이면 고충이 있는 것 아닌가. 왜 무조건적인 응원과 공감을 바라나"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윤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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