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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목초지서 발견된 구멍, 그 앞에서 자멸하는 서부극의 남자들

입력
2022.05.21 10:0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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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아우터 레인지'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작가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됩니다.


'아우터 레인지'는 거대한 평원 한가운데에 갑자기 등장한 미스터리한 구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제공

'아우터 레인지'는 거대한 평원 한가운데에 갑자기 등장한 미스터리한 구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제공

와이오밍주에서 목장을 경영하는 애벗 가문의 로열과 세실리아 부부. 두 아들 페리와 레트, 페리의 딸인 손녀 에이미와 함께 살고 있다. 6개월 전 페리의 아내 리베트가 아무 단서 없이 실종되었고, 여전히 수사 중이다. 이웃 목장을 경영하는 틸러슨 가문은 애벗 가문과 경쟁하고, 질투하는 관계다. 아내와 이혼한 웨인 틸러슨은 세 아들 루크, 트레버, 빌리와 지낸다. 웨인은 애벗 목장의 서쪽 목초지가 자신의 땅이라며 소송을 건 상태다.

레트는 술집에서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고등학교 동창 마리아를 만난다. 마리아와 함께 온 트레버와 시비가 붙어 싸움을 벌였다가, 마리아가 말리면서 다시 술집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화가 치민 트레버는 옆에서 보고 있던 페리에게, 사라진 아내를 거론하며 욕을 한다. 이성을 잃은 페리가 트레버의 목을 치자 어이없이 죽어버린다. 페리와 레트는 시체를 감추기 위해 황급히 목장으로 돌아온다. 트레버가 돌아오지 않자 루크와 빌리는 애벗 목장으로 쳐들어온다. 흥분한 루크와 빌리를 페리가 상대하는 동안, 로열과 레트는 트레버의 시체를 숨기기 위해 서쪽 목초지로 향한다.


'아우터 레인지'는 두 가문의 탐욕과 투쟁을 그린 서부극에서 초자연 스릴러 드라마로 나아간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제공

'아우터 레인지'는 두 가문의 탐욕과 투쟁을 그린 서부극에서 초자연 스릴러 드라마로 나아간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제공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오리지널 시리즈인 '아우터 레인지'는 거대한 평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서부극이다. 애벗 가문과 틸러슨 가문. 딸은 하나도 없이 아들만 가득하고, 너른 땅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 사투를 벌인다. 병 때문에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는 웨인은 악착같이 애벗 목장의 땅을 원한다. 두 목장의 아들들은 서로 반목하고 다투지만, 저마다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가기를 원한다. 제임스 딘과 록 허드슨이 출연한 '자이언트'나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데어 윌 비 블러드' 같은 영화가 떠오른다. 광활한 서부의 땅을 둘러싼 거친 남자들의 헛된 투쟁과 좌절.

'아우터 레인지' 시즌1 8개의 에피소드 제목은 공간, 땅, 시간, 상실, 흙, 가족, 미지, 서부다. 두 가문의 탐욕과 투쟁을 그린 서부극에 어울리는 제목이다. 하지만 하나의 요소가 추가되면서 '아우터 레인지'는 보통의 서부극과 다른 방향으로 질주한다. 로열은 서쪽 목초지에서 거대한 구멍을 발견한다. 반투명의 막 같은 게 드리워진 구멍은 바닥을 가늠할 수 없다. 자연적으로 생긴 구멍인지도 알 수 없다. 웨인이 서쪽 목초지를 원한 이유다. 그냥 땅이 아니라, 알 수 없는 구멍이 있는 땅을 웨인은 원한다. 미지의 '구멍'이 더해진 '아우터 레인지'는 초자연적인 스릴러로 나아간다.


와이오밍주에서 목장을 경영하는 애벗 가문의 로열에게 고난이 닥친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제공

와이오밍주에서 목장을 경영하는 애벗 가문의 로열에게 고난이 닥친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제공

'아우터 레인지'는 신비한 상징들로 가득하다. 말을 타고 황야를 달리던 로열의 눈에 웅장한 버펄로가 들어온다. 실제일까, 환상인가. 버펄로는 로열만이 아니라 수시로 다양한 이들의 눈에 들어온다. 언제나 있던 산봉우리가 갑자기 사라졌다 돌아왔다며 주민들이 웅성거리고, 경찰서에 신고한다. 하이킹을 하는 한 여인이 로열을 찾아온다. 이곳은 신비한 땅이라면서 캠핑을 하고 싶다고 요청하는 여인은, 자칭 시인이라는 어텀이다. 구멍이 애벗 가문의 땅을 기묘한 곳으로 만든 것일까? 아니면 이 세상은 애초에 신비한 곳이었으나, 인간만 어리석게 자신들의 협소한 믿음을 고수하는 것일까?

페리가 경찰에 체포되었을 때, 경찰차 창가에 스치는 커다란 입간판에 의미심장한 문구가 쓰여있다. '미국은 알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은 알 수 있는 것들뿐이라고 한다. 미국이 틀렸다.' 총을 든 빌리가 로열에게 묻는다. "신을 믿나요?" 너희들은 신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로열의 답에, 빌리는 꼭 알아야지만 믿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로열은 강하게 말한다. "나는 알아야 해." 안다는 것에 대한 빌리와 로열의 입장은 다르다. 신은 애초에 알 수 없는 것이라니까, 몰라도 자신이 믿으면 된다고 빌리는 생각한다. 그것은 입간판에서 비판하는 '미국'의 생각과 비슷하다. 알 수 없으니까, 앎을 포기하는 것. 그래서 맹신하는 것. 로열은 아무리 난해하고, 뒤죽박죽이라도 끝내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자신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로열은 자신의 땅과 가족을 지키려고 애쓴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제공

로열은 자신의 땅과 가족을 지키려고 애쓴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제공

땅을 빼앗길 위기 상황이고, 며느리가 실종됐고, 아들은 사람을 죽였다. 헤쳐나가기 너무나 힘든 고난들뿐이다. 로열은 신에게 기도, 아니 하소연을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고, 당신과 우리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제발 우리에게 알려달라고 호소한다. 로열에게는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로열은 구멍에 빠졌다가 돌아왔다. 구멍에 들어갔을 때, 로열은 미래를 봤다. 미래에 있었다. 2년 후의 미래에서 아내에게, 자신은 이미 죽었다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로열은 예정된 미래를 믿지 않는다. 운명은 이길 수 없다는 어텀의 말에, 로열은 단호하게 답한다. "내가 바꿀 거야." 바꾸지 않는다면, 로열의 미래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래서 로열은 알 수 없는 것들을, 악착같이 알아야만 한다.

어쩌면 구멍은 자연 그 자체일 수 있다.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우주의 어떤 법칙 같은 것. 어느 정도 이해하고 분석했다고 생각하는 자연도, 우리는 여전히 잘 모른다. 태풍이 언제 발생하는지, 지진이 언제 일어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우주에서 소행성이 날아와 충돌한다면 인간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미리 막을 수 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과 모르는 세상은 분리되어 있다. 알 수 있는 것만 알면 된다고 믿으며, 알고 있는 것만으로 이 세상을 이해하고 바라본다. 그렇다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망할 수밖에 없다. 자연은 결코 인간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땅도, 하늘도 자신의 법칙대로, 운명대로 나아갈 뿐이다. 인간은 알 수 없는 것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우터 레인지'는 광활한 서부의 땅을 둘러싼 거친 남자들의 헛된 투쟁과 좌절을 보여준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제공

'아우터 레인지'는 광활한 서부의 땅을 둘러싼 거친 남자들의 헛된 투쟁과 좌절을 보여준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제공

'아우터 레인지' 시즌1에서 '구멍'은 비교적 평화롭게 자신들의 농장 혹은 왕국을 통치하던 로열과 웨인의 고난을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 이해할 수 없는 구멍 앞에서 그들은 폭주하거나 자멸한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구멍'이 아니라, 내가 모든 것을 떠안고 해결할 거야 혹은 내 의도대로 상황을 끌고 가겠다면서 가족 간에 불화를 일으키고, 상처를 주는 남자들의 과한 자신감이다. 대체로 서부극의 남자들은, 내가 제일 중요한 것을 하고 있다는 오만함으로 가득하다. '아우터 레인지'의 남자들도 마찬가지인데, 보다 보면 그들이 너무나 쓸모없는 존재에 불과함을 깨닫게 된다. 서부극이라는 장르가 망하고, 서부의 세계를 여자들을 끌어들여 재구성하지 않는 한 초라한 판타지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우터 레인지'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타노스였던 조쉬 브롤린과 '나는 앤디 워홀을 쏘았다'와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의 릴리 테일러가 연기하는 애벗 부부를 비롯하여 모든 이들의 연기가 빛난다. 개성적인 캐릭터들의 화려한 앙상블과 모호한 상징으로 가득한 환상적인 이미지들도 강렬하다. 시즌2가 정말 궁금한, 에너지 넘치는 작품이다.

김봉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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