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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류식 소주의 화려한 부활…참이슬·처음처럼과 '이것'이 다르다

입력
2022.05.31 05:00
수정
2022.06.02 19:3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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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류식 소주 만드는 원리
증류·숙성 방식에 맛 달라

하이트진로의 경기 이천공장 내 증류식 소주 '일품진로' 고연산 제품 목통 숙성실. 하이트진로 제공

하이트진로의 경기 이천공장 내 증류식 소주 '일품진로' 고연산 제품 목통 숙성실. 하이트진로 제공

소주를 넘길 때 속이 찌르르 울리는 맛에 인상을 찌푸리면 술 잘 마시는 주당(酒黨)에게선 으레 "아직 술맛을 모르네"란 말이 나온다. "하루를 치열하게 보내고 마시는 소주 한 잔이 달아야 진짜 어른이 된 것"이라는 나름의 '소주론'도 곁들여진다. 독한 맛을 뿜어내는 소주는 이처럼 누군가의 애환을 달래주는 '서민의 술'로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왔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소주의 위상이 사뭇 달라졌다.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맛과 향을 즐기기 위해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가 고가의 증류식 소주를 찾으면서다. 연속식 증류로 고순도 알코올만 뽑아내 맛과 향이 없는 희석식 소주와 달리, 증류식 소주는 고급 알코올에 에스테르 등 향미 성분과 쌀, 보리 등 원료의 풍미를 살려 좀 더 품위있는 맛을 낸다. 원료의 종류와 증류 기법, 숙성 방식에 따라 맛과 향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고 다양한 칵테일로 음용이 가능해 골라 마시는 재미까지 쏠쏠하다.

증류식 소주가 '귀한 술'인 이유

지난 16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소주가 진열돼 있다. 참이슬·처음처럼 등 초록색 병에 담긴 무색무취의 소주는 주정에 물을 타 만든 희석식 소주다. 일품진로·화요 등 증류식 소주는 단식 증류 과정을 거쳐 더 풍미가 있고 맛이 깊다. 뉴스1

지난 16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소주가 진열돼 있다. 참이슬·처음처럼 등 초록색 병에 담긴 무색무취의 소주는 주정에 물을 타 만든 희석식 소주다. 일품진로·화요 등 증류식 소주는 단식 증류 과정을 거쳐 더 풍미가 있고 맛이 깊다. 뉴스1

30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증류식 소주와 희석식 소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증류 방법이다. 증류식 소주는 알코올 농도가 40~60%인 소주원액을 만들어 이를 단식 증류하지만, 희석식 소주는 연속식 증류로 95%가 알코올인 주정을 만들어 물로 희석한다. 증류를 반복해 불순물과 효모에 의해 생성되는 향 성분이 제거, 무색무취의 깔끔한 맛을 내지만 개성은 사라지게 된다.

또 증류식 소주는 단식 증류로 알코올과 함께 발효액에 있는 향을 얻을 수 있어 전분이 함유된 쌀, 보리, 고구마 등을 사용하지만 희석식 소주는 어떤 원료를 써도 맛이 비슷해 쌀 외에도 비교적 저렴한 타피오카, 당밀 등을 쓰기도 한다. 증류식 소주는 발효와 숙성에 최소 3개월이 걸리는데 희석식 소주는 제품화까지 단 하루면 제조가 가능한 것도 다른 점이다. 증류식 소주는 정성이 배로 들고 증류 과정에서 양도 줄어드니 제조법이 비교적 단순한 희석식 소주에 비하면 귀한 술인 셈이다.

증류식 소주가 우월하다는 인식 때문에 희석식 소주보다 숙취가 적다는 얘기도 퍼졌지만, 사실 숙취의 메커니즘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숙취의 원인은 술에 포함된 메탄올과 알코올의 대사산물인 아세트알데히드로 알려졌는데, 이외에도 인체의 다양한 반응을 고려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송진환 하이트진로 주류개발2팀 증류주파트 수석연구원은 "희석식 소주가 증류식 소주보다 메탄올과 아세트알데히드 함량이 적다는 차이는 있다"면서도 "같은 주종이라 해서 두 성분 함량이 유사하다 할 수 없고, 각 회사의 제조공법에 따라 함량 차이가 있어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맛을 가르는 결정적 요소는 '증류 방식'

화요의 경기 여주공장에서 증류식 소주 '화요'가 생산되고 있다. 화요 제공

화요의 경기 여주공장에서 증류식 소주 '화요'가 생산되고 있다. 화요 제공

쌀을 이용해 증류식 소주를 만들 때는 먼저 원료를 깨끗이 씻은 후 쪄서 고두밥을 짓는다. 쌀을 물에 불려 가열하면 전분 구조가 바뀌어 미생물이 전분을 당분으로 분해하기 더 쉬워진다.

이어 밀이나 찐 콩을 굵게 갈아 미생물을 번식시켜 만든 누룩을 붓는다. 발효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효모가 필요한데 효모는 전분을 당분으로 분해시켜야 이용할 수 있다. 그 역할을 누룩이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곡물을 발효시켜 밑술을 만들고 담금 과정을 거치고 나면 증류할 준비를 마치게 된다.

성분을 채취하는 증류는 술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증류식 소주에 쓰이는 단식 증류법은 압력 조절 방법에 따라 상압증류와 감압증류로 나뉜다. 전통적 방식인 상압증류의 경우 에탄올을 증류시키기 위해 소주 원액에 80~100도 정도의 열을 가한다. 이때 열에 의한 반응물들이 생성되고 끓는점이 높은 성분들이 증류액에 다량 함유된다. 덕분에 향미가 풍부해지지만, 증류기 내부 벽이 그을려 탄내가 나는 등 여러 미량 성분으로 인해 이취가 생기고 맛이 거칠게 된다.

반면 감압증류는 낮은 온도에서 증류해 미량 성분이 적게 나온다. 증류기 내부 압력을 얼마나 줄이느냐에 따라 소주 원액의 끓는점을 더 낮출 수 있다. 내부 압력을 대기압보다 상당히 낮춘다면 40도 내외에서도 발효액을 끓일 수 있다. 문세희 화요 대표이사는 "높은 산에서 밥을 하면 기압이 낮아 끓는점이 낮아지면서 설익는 것처럼 압력을 내리면 더 낮은 온도에서 증류를 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며 "상압증류에 비해 이취가 적고 깔끔한 맛이 나 요즘은 대부분의 업체가 감압증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옹기 쓰는 '화요' 목통 쓰는 '일품진로 고연산'… 숙성 방식도 각양각색

화요의 경기 여주공장에서 증류식 소주 '화요'가 옹기 안에서 숙성되고 있다. 화요 제공

화요의 경기 여주공장에서 증류식 소주 '화요'가 옹기 안에서 숙성되고 있다. 화요 제공

증류 직후엔 술의 풍미가 거칠어서 숙성 과정을 통해 향미와 주질을 조정한다. 국내 주류업체들은 저마다 의도하는 주질이나 향미에 따라 숙성 방식과 기간을 조절해 각 제품의 특성을 살린다. 이를테면 광주요그룹 화요는 증류식 소주 '화요'를 자체 생산한 옹기에서 3개월 이상, 하이트진로는 '일품진로 21년산' 등 고연산 제품을 참나무 목통에서 해당 연수만큼 숙성한다.

찰흙과 백토 등으로 만든 옹기는 5~20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크기의 미세한 숨구멍이 있어 통기성이 높다. 이 기공을 통해 산소와 알코올, 미량 성분들이 미세 산화작용을 하면서 자극적인 향을 내는 유황 화합물, 알데히드류 등이 없어지고 에스테르류가 생성된다. 문세희 대표이사는 "유리는 공기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오래 담아둔다고 숙성되지 않는다"며 "마찬가지로 와인이나 위스키도 열지 않은 채 오래 보관해두면 숙성한 게 아니라 저장만 한 것"이라고 말했다.

목통의 경우 나무에 깃든 성분도 추출되면서 특유의 향취와 색상이 더해진다. 하이트진로의 경우 참나무통을 처음 만들 때 내벽을 그을리거나 태우는데, 이때 다양한 성분들이 생성돼 증류주에 녹아들게 된다. 송진환 수석연구원은 "목통은 숙성 초기 다소 주질이 거칠게 느껴지지만 숙성 기간에 따라 안정화되고 부드러워진다"며 "색상은 노란색이 되고 바닐라향, 나무향 등 다양한 향이 추가되면서 더 풍미가 살아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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