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제임스 얼 레이
1968년 6월 8일,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캐나다 여권을 지닌 40대 남자가 체포됐다. 캐나다 경찰 지명수배자의 여권이었다. 가방 속에는 위조여권이 더 있었다. 바로 그가 두 달 전 마틴 루서 킹 목사를 암살한 제임스 얼 레이(James Earl Ray, 1928~1998)였다.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로 강제 송환된 그는 이듬해 3월 양형거래를 통해 범행 일체를 시인하고 99년형을 선고받았다. 그가 원한 건 전기의자 사형을 면하는 거였다. 법정 공방도, 범행에 대한 모든 조사도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FBI를 비롯한 백인 권력자들을 가장 괴롭혀온 거인이 한낱 인종주의자 백인 루저 손에 쓰러졌다고? 진실 혹은 의혹이 그렇게 덮일 리 없었다. 범인 체포 전부터 FBI 배후 의혹이 제기됐다. 범인은 절도 및 무장강도 전과자로 1967년 4월 탈옥한 자였다. 석연찮은 점이 많았다. 지문이 선명히 남아 있는 저격 소총을 인근 빌딩 앞에 버린 점, 검문이 시작되기 전 도시를 빠져나가 시카고와 LA, 멕시코, 캐나다를 거쳐 영국으로 종횡무진 도피 행각을 이어온 점. 도피 자금 출처도 불분명했고, 수배자 여권을 지녔던 것도 의심을 살 만했다. 한마디로 ‘배후’가 일정 시점 후 그가 체포되길 원했다는 거였다.
제임스 레이도 판결 직후 자백을 번복했다. 변호사가 테네시주 사형제 폐지 사실을 알려주지 않고 양형거래를 종용했다는 것. 그는 1967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만난 ‘라울(Raul)’이란 자가 사주했고, 자신은 방아쇠도 당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당국은 그의 주장을 묵살했지만, 킹 목사 유족과 동료들은 범인의 진술을 믿었다. 이후 세 차례 의회와 검찰 등의 재조사가 진행됐지만, FBI나 마피아 배후 의혹은 끝내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1999년 유족이 제기한 100달러 민사소송에서 배심원단은 ‘멤피스 시당국과 주-연방 정부의 책임’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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