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규제기관·육성기관 P2E 대응 엇박자
국내 게임사들 P2E '코리아 패싱' 고착화
게임업계, P2E 육성 대책 조속한 논의 요구
"P2E 구조 투명화 등 일정 규제 필수" 반론도
사행성 지적을 받은 '돈 버는 게임(P2E)'을 둘러싼 소비자 혼란이 커지고 있다. P2E 게임은 이용자가 게임을 통해 획득한 자산을 현금화할 수 있는데, 현행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게임법)'은 P2E 게임의 자산 형성 및 현금화 과정을 사행성으로 규정하고 유통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2004년 전국을 강타한 사행성 게임 '바다이야기' 사건 이후 만들어진 게임법 제32조, '게임물을 통해 획득한 결과물을 환전할 수 없다'는 조항이 적용된 대표적 사례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P2E 게임 산업 육성을 강조하면서 소비자와 업계의 기대감은 높아졌다. 소비자들은 P2E 게임을 통해 여가와 수익을 모두 누릴 수 있다는 기대감을 보였고, 게임업계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준비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 출범 이후 관련 정책 논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불만이 커지고 있다. 부처 간 P2E 게임 대응은 엇박자를 거듭하고 있고, 주요 게임사들은 국내 규제를 피해 해외시장에 P2E 게임을 선보이는 등 '코리아 패싱' 현상도 이어지고 있다. 이에 게임업계는 "P2E 육성 대책을 신속히 논의하자"는 입장이지만 "P2E 게임의 사행성 억제를 위한 제도 개선이 먼저"라는 반론도 거센 만큼 사회적 갈등은 커지고 있다.
게임위·한콘진 P2E 대응 '엇박자'
3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P2E 산업에 대한 정부 대응은 엇박자를 반복하고 있다. 앞서 ①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최근 구글 스토어와 애플 앱마켓에서 유통되던 P2E 게임과 NFT 모바일 게임 총 32개를 적발해 퇴출시켰다고 밝혔다. 이들 게임은 모두 이용자가 게임을 통해 특정 코인 또는 NFT를 얻은 뒤 외부 거래소를 통해 현금화하는 구조다. 이 가운데 홍콩에 기반을 둔 'Arc8'은 카드게임, 퍼즐게임 등을 제공하며 구글 플레이 기준 100만 명 이상이 다운 받았다.
반면 똑같은 ②문체부 산하 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한콘진)은 P2E 게임을 신성장 게임으로 분류하고 있다. 한콘진이 주관하는 '신성장 게임 콘텐츠 지원 사업'에는 링게임즈의 '스텔라 판타지' 등 P2E 게임과 소프트닉스의 '킹덤 유니버스' 등 NFT 기반 게임이 포함됐다. 한콘진은 신성장 게임당 최대 5억 원의 사업비까지 지원한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P2E 육성 기조만 밝히고 구체적 논의는 하지 않아 규제와 육성이 엉성하게 얽힌 상태"라면서 "정부가 확실한 정책 방향성을 보여줘야 소비자와 업계의 혼란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게임업계 '코리아 패싱' 고착화
한편 국내 P2E 게임 산업이 규제에 가로막힌 사이 주요 게임사들은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자금과 기술력을 쏟아부어 개발한 P2E 게임이 한국 대신 유럽이나 미주 등 관련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시장에 먼저 선보이면서 '코리아 패싱'도 고착화하는 모양새다.
게임 제작사 위메이드는 P2E 게임 분야 강자인데, 여러 명이 온라인 공간에서 게임을 진행하는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미르4'를 보유하고 있다. 이 게임은 게임 내에서 채굴한 '흑철'을 위메이드가 발행한 가상화폐 위믹스로 교환하는 방식으로 현금화할 수 있다. 다만 위메이드는 미르4의 P2E 기능을 국내 버전엔 제외하고 해외 수출용인 글로벌 버전에만 담았다. 후속작인 미르M 역시 같은 방식으로 글로벌 버전에만 P2E 기능을 넣을 계획이다. 미르4 글로벌 버전은 지난해 8월 출시 당시 아시아 서버 8개, 유럽 서버 2개, 북미 서버 1개 총 11개 서버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용자 증가로 지난해 12월 기준, 총 229개 서버를 운영 하는 등 흥행에 성공했다.
주요 게임사들의 P2E·NFT 게임 수출도 계속되고 있다. ①넷마블은 올해 20개 이상의 신작을 출시 예정이며 이 중 여섯 종류를 P2E로 선보일 계획이다. 이달 선보이는 세븐나이츠 레볼루션의 글로벌 버전이 출시될 경우 P2E가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②넥슨은 인기 게임 메이플스토리에 NFT를 적용한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를 출시할 계획이다. 메이플스토리 세계관에서 경제 활동을 가능케 한다는 구상이다. ③엔씨소프트는 주력 게임 '리니지W'에 NFT 기능을 접목해 올해 4분기 북미와 유럽시장에 출시할 예정이다. 다만 해당 작품들 모두 현재 같은 상황에선 국내용엔 P2E·NFT 기능을 뺄 수밖에 없다.
"P2E 투명화, 사행성 억제가 먼저"
게임업계는 정부가 P2E 게임 육성을 위한다면 더 적극적으로 정책 논의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 게임사 관계자는 "P2E 게임을 바다이야기 같은 사행성 게임과 동일시하는 것은 글로벌 게임시장 흐름에 맞지 않다"면서 "최근 석 달 동안 세계 시장에 나온 P2E 게임이 300건가량 되는데 게임 시장 경쟁력 확보를 위해 P2E를 키우기 위한 정책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게임업계 관계자는 "미르4 흥행에서 보듯이 P2E 게임의 성장성은 상당하다"면서 "리니지나 메이플스토리 등 성공한 작품도 P2E가 접목되면 확장성이 더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 역시 최근 열린 '대한민국NFT·블록체인 게임 콘퍼런스'에서 "게임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면 게임 내 경제가 밖으로 나오는 실질적 경제적 가치가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다만 P2E 게임을 육성하기 위해선 사행성의 정의를 명확히 하고, 어떻게 억제할지 구체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반론도 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단순히 돈이 오간다는 이유로 사행성 게임으로 규정하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현행법은 게임의 사행성을 명확히 규정하지 못하는 만큼 먼저 관련 논의를 통해 게임 내 사행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우선한 뒤 육성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상화폐, NFT 등 새로운 산업과 게임산업이 빠르게 결합하고 있지만, 현행법이 산업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일률적 규제만 가한다는 지적이다.
위정현 한국게임산업협회장은 "P2E 게임의 본질은 게임사의 수익을 이용자와 나누는 것"이라며 P2E 게임의 사행성 억제를 위한 게임사들의 적극적 노력을 촉구했다. 그는 "정부의 P2E 정책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게임사들이 P2E 게임의 사행성을 억제하기 위한 자체적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게임사들이 게임에 사용되는 확률형 아이템 설계 방식과 자산형성 및 현금화 구조 등을 투명화해 사행성 문제를 제거해야 정책 논의가 수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청소년들의 P2E 게임 접근을 일부 제한하는 등의 조치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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