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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 "'안나' 8회였는데" 한 달 뒤 터진 고름... OTT 권력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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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 "'안나' 8회였는데" 한 달 뒤 터진 고름... OTT 권력의 그늘

입력
2022.08.04 19:3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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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된 흥행 드라마에 감독이 "이름 빼달라" 성명
쿠팡플레이 "8월 감독판 공개" 불구
양측 대립각 팽팽...최종 편집권 갈등
할리우드 영상 산업 문법 유입에 따른
창작자와 투자사 정면 충돌

애초 8부작으로 제작됐으나 6부작으로 줄어 공개된 드라마 '안나'의 한 장면. 쿠팡클레이 제공

애초 8부작으로 제작됐으나 6부작으로 줄어 공개된 드라마 '안나'의 한 장면. 쿠팡클레이 제공

"원래 8회였는데..." 가수 겸 배우 수지가 지난 6월 드라마 '안나' 인터뷰에서 이 말을 꺼내자 현장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애초 8회로 제작된 드라마가 왜 6회로 갑자기 줄어 공개됐을까. 비밀의 열쇠를 쥔 이주영 감독의 행방은 묘연했다. '안나'를 서비스하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쿠팡플레이 측에 이 감독 인터뷰 요청을 두 차례 문의하니 모두 "개인 사정으로 진행이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OTT에 신작을 낸 감독이 돌연 자취를 감추기는 이례적인 일. 업계에선 쿠팡플레이와 이 감독의 불화설이 돌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한 달여 뒤인 지난 2일 결국 '일'이 터졌다. 이 감독이 쿠팡플레이를 상대로 "작품이 훼손됐다"고 입장을 내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쿠팡플레이 측이 8부작을 6부작으로 일방적으로 재편집해 자신이 직접 대본을 쓰고 연출한 콘텐츠의 본질을 훼손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지난 6월 24일 처음 공개된 '안나'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영화 '탑건'에 이어 지난달 세 번째로 온라인에서 화제성이 높은 콘텐츠(키노라이츠 기준)로 주목받았다. 흥행한 드라마를 놓고 "공개된 드라마에 내 이름을 빼달라"고 요구하며 창작자가 플랫폼(OTT)을 상대로 날을 세우기는 전례가 드문 일이다.

논란이 커지자 쿠팡플레이는 3일 입장을 내 "제작사의 동의를 얻고 최종적인 작품 편집은 계약에 명시된 권리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도 "총 8부작의 '안나' 감독판은 8월 중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쿠팡플레이가 "8부작 감독판을 공개하라"는 이 감독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처럼 보이지만 양측은 편집 수정 요청 여부 등을 두고 정반대의 의견을 내 양측 간 공방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안나' 논란을 미국식 영상 산업 문법이 국내에 갑자기 유입되면서 발생한 마찰로 보고 있다. 할리우드에선 작품 최종 편집권을 대부분 스튜디오가 지닌다. 감독은 촬영 현장을 총괄하고, 시장에 팔리는 '콘텐츠 상품' 즉 최종 결과물에 대한 권리는 투자사가 가져간다는 논리다. 미국 유명 스튜디오와 작업한 드라마·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대타 감독을 먼저 섭외해두고 제작을 시작하고 그 대타 감독이 현장을 찾기도 하는 걸 보고 놀랐다"며 미국에서의 영상 제작 분위기를 들려줬다. 영상 산업이 자본의 논리에 좌지우지되면서 창작의 주도권이 투자사 쪽으로 넘어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미국식 영상 산업의 행태를 두고 창작자 권리 침해라는 논란은 계속돼 왔다.

미국의 상황에 비춰보면 국내 영상산업에선 그간 창작자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넓은 편이다. 특히 드라마에선 감독이 최종 편집 권한을 갖는 게 상식으로 통했다. 쿠팡 측의 편집 행태에 대해 감독뿐만 아니라 다른 스태프들도 강력 반발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실제 '안나' 작업에 참여한 이의태 정희성 촬영감독과 김정훈 편집감독 등 6명도 4일 성명을 내 "스태프의 혼신을 다한 노력이 쿠팡플레이에 의해 잘려나갔다"며 드라마에 이름을 빼달라고 요구했다.

이번 논란이 법적 소송전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국내 영상산업에 대한 투자 규모가 커지면서 투자사와 창작자 간 마찰은 앞으로 더 첨예해질 가능성은 다분하다. 투자사 측이 미국식 관행을 도입해 최종 편집 권한을 가지려고 할 경우 창작 위축 우려도 커질 수 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쿠팡플레이가 드라마 제작사와 재편집 관련 협의를 했다고는 하지만 감독과 최종 협의도 하지 않고 진행했다는 건 투자사 마음대로 콘텐츠를 난도질할 수 있다는 걸로 읽혀 창작 환경을 크게 위축시킬 수 있다"며 "무조건 미국식을 따를 게 아니라 창작자 권리 침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에서 최종 편집권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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