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IMF? 이런 물가 처음!]
<상> 2030 초짜 가계부 한 달
외식 만찬 줄이고 '집밥' 늘렸지만
치솟는 장바구니 물가에 생활비 '구멍'
편집자주
2030세대가 6%대 고물가 시대에 맞닥뜨렸다. 유년의 희미한 기억인 'IMF 외환위기', 그 시절이 다시 올 수 있다는 말까지 들린다. 난생처음 가계부를 썼다. 아래는 7월 한 달간의 기록.
결혼해 맞벌이가 되면 돈이 착착 모일 줄 알았다. 현실은 웬걸, 결혼식이 끝났다는 해방감에 ‘배달 만찬’이 잦아지고 신혼집 살림살이를 ‘플렉스’하다 보니 남은 건 살과 먼지뿐인 통장 잔고. 6월의 마지막 날 남편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보, 이러다 우리 2년 뒤 전세 연장 보증금도 못 모으겠어.”
먼저 ‘생활비 체크카드’부터 만들었다. 5개월간 적당히 나눠서 냈던 공동 지출을 하나로 모아 계획적으로 써보자는 뜻에서다. 7월 예산은 부부가 50만 원씩 모아 100만 원으로 정했고, 세 가지를 약속했다. ①배달 음식을 포함한 외식은 주 1회로 제한한다. ②매주 월·화·수는 교통비 외 1원도 쓰지 않는 ‘무(無)지출 데이’. ③한 달간 가계부를 꼼꼼하게 작성하고 말일에 결산한다.
배추 한 통에 8,900원?... 집밥도 외식 못지않네
아직 ‘해 먹는 밥’이 어색한 신혼부부에게 외식은 간편하고 만족도 높은 선택지다. 문제는 비싸고, 계속 더 비싸지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7월 외식 물가지수는 111.39로 지난해 같은 달 대비 8.4%나 올랐다. 1992년 10월(8.8%) 이후 29년 9개월 만에 상승폭이 가장 컸다. 시켜 먹을 땐 배달비도 부담이다. 치킨값 2만 원도 충격적인데 배달료 4,000원까지 내야만 집에서 편하게 받을 수 있다.
외식을 제한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장바구니 품목. 주전부리와 간편식 위주로 단출했던 쇼핑 카트에 신선식품이 대거 추가됐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다. 식자재 가격도 만만치 않게 비싸진 것이다. ‘난이도 하’ 카레 재료만 봐도 양파 1개(1,480원), 당근 1개(2,480원), 감자 2개(1,992원), 돼지고기 등심 200그램(5,800원), 카레가루(3,280원)까지 1만5,000원을 거뜬히 넘겼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를 찾아보니 생산 감소 영향으로 소매 기준 양파는 1년 전보다 36.1%, 감자는 54%나 올랐다.
집밥 비용이 외식 비용을 위협하는 수준이 되자 ‘행사’, ‘특가’ 소식에 귀가 쫑긋 섰다. 평균적으로 돼지고기는 농협하나로마트에서, 배추는 이마트에서 가장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소비자공익네트워크 조사를 보고 직접 발품도 팔아봤다. 실제 서울 모 지역 하나로마트 지점의 삼겹살 가격은 100그램당 3,500원으로 근처 이마트(3,680원)보다 180원가량 저렴했다. 반대로 국산 배추의 경우 이마트는 1통에 5,480원, 하나로마트는 8,900원으로 가격 차이가 컸다.
예상 못한 소나기에 ‘지출 0’ 깨지는 날도
평일 3일씩 하루 지출 0원을 실천하는 ‘무지출 챌린지’는 의외로 할 만했다. 깐깐하게 보면 매일 쓰는 후불형 교통카드, 통신비 등도 지출로 지적할 수 있지만, 고정비용은 제외하고 식비와 생활비 지출만 자제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물론 무지출 기간 중엔 생활비 카드뿐 아니라 개인 용돈도 쓰지 않기로 했다.
매일 사 마시던 프랜차이즈 카페 커피는 남편과 아내 모두 집에서 ‘테이크 아웃’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오후가 되면 몇 방울 남은 텀블러를 보며 근처 카페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가계부에 지출 0원을 적어 넣겠다는 일념으로 참았다. 그 결과 월 18만9,000원(아메리카노 42잔) 수준이었던 커피값 지출을 9만6,800원까지 줄일 수 있었다. 점심은 업무 약속에 한해 회사 법인카드를 썼고, 약속이 없는 날엔 집에서 간단한 샐러드나 고구마 등을 챙겨 출근했다.
무지출 챌린지 중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난 날도 있었다. 퇴근길 소나기가 쏟아져 발이 묶이게 된 것. 기다려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눈물을 머금고 편의점에서 1만 원짜리 3단 우산을 하나 샀다. 7월 무지출 챌린지의 유일한 오점이었다.
결산: 결국 ‘생활비 카드’는 구멍 났지만…
결론적으로 예산 100만 원인 생활비 카드엔 ‘구멍’이 났다. 부모님 생신, 친구 결혼식 참석 등 경비 지출이 늘기도 했지만 여전히 식비 지출이 약 70만 원으로 전체 생활비 중 압도적 비중을 차지했다. 아끼고 아꼈지만 물가 상승에 맞춰 가계부에 적히는 숫자도 높아져 갔다. 다음은 우리 부부가 내린 한 달 평가다.
남편=꼭 필요한 일주일 치 식재료에 제철 과일 한두 가지만 골라도 장보기 비용이 10만 원을 훌쩍 넘어가니 부담이 커요. 명절도 코앞이라 당분간 물가가 계속 오르겠는데요. 대형 마트에서 묶음으로 샀다가 버리는 식품도 만만치 않으니 저장이 곤란한 재료는 전통시장이나 동네 마트에서 조금씩 사는 습관도 필요해 보이네요.
아내=그래도 한 달간 함께 가계부를 써보니 불필요한 지출은 눈치껏 자제하고, 계획적인 소비를 하게 돼 좋았어요. 부부 모두 요리 실력도 늘었고요. 다음 달엔 안 쓰는 물건을 당근마켓 등에서 처분해 월급 외 수입을 좀 늘려볼까요?
<다시 IMF? 이런 물가 처음!> 글 싣는 순서
<상> 가계부 쓰기도 무섭다
<중> 당신의 월급은 안녕하십니까
<하> 그래도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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