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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후보 머리 뜯고 성희롱...성차별과 싸우는 케냐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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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후보 머리 뜯고 성희롱...성차별과 싸우는 케냐 선거

입력
2022.08.09 04:30
수정
2022.08.09 20:4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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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케냐 대선·총선·지선… 여성 후보는 11% 남짓
베테랑 여성 정치인, 유력 대선후보 러닝메이트로
여성 후보 겨냥 성폭력·폭행도… 참정권 확대 절실

케냐 대통령 선거에서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마사 카루아(왼쪽) 부통령 후보와 라일라 오딩가 대통령 후보가 지난 1일 케냐 키암부 카운티에서 열린 유세장에서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키암부=로이터 연합뉴스

케냐 대통령 선거에서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마사 카루아(왼쪽) 부통령 후보와 라일라 오딩가 대통령 후보가 지난 1일 케냐 키암부 카운티에서 열린 유세장에서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키암부=로이터 연합뉴스

아프리카 케냐에서 사상 첫 여성 부통령 탄생이 임박했다. 9일(현지시간) 실시되는 대선에 출마한 대통령 후보 4명 중 3명이 여성을 부통령으로 지명했고, 그중 한 팀이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다. 같은 날 동시에 치러지는 상원·하원의원 선거와 카운티 지사 선거, 카운티 의회 선거 등에도 여성들이 대거 출마했다.

그러나 여성 후보들이 맞닥뜨린 현실은 잔혹하다. 여성 후보를 겨냥한 온라인 성폭력이 만연하고, 선거운동 중에 물리적 폭행을 당하는 일도 적지 않다. 이토록 열악한 케냐 여성 인권은 여성 참정권 확대가 절실히 필요한 이유를 역설한다.

여성 정치인 약진에도 비중은 미미

7일 미국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다섯 번째 대권에 도전하는 케냐 야권 정치인 라일라 오딩가 대선후보가 사실상 승기를 굳혔다. 현지 언론은 러닝메이트인 마사 카루아 부통령 후보에 대한 호감을 결정적 승인으로 분석했다. 65세인 카루아 후보는 1992년 정치에 입문해 하원의원, 수자원 장관, 법무 장관 등을 지낸 관록 있는 여성 정치인으로, 원칙주의자로 유명하다.

이변 없이 당선된다면 카루아 후보는 케냐 최초 여성 부통령이자 역대 최고위직에 오른 여성이라는 기록을 쓰게 된다. 여성이 카운티 지사와 상원의원에 처음으로 당선된 때가 바로 직전인 2017년 선거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사회적 진전이다. 여성 유권자들은 카루아 후보를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에 비유하며 열렬히 응원하고 있다.

카루아 후보는 “케냐 여성에게 중요한 순간”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미국 CNN방송 인터뷰에선 ‘케냐가 여성 대통령을 배출할 준비가 돼 있냐’는 물음에 “왜 남성 대통령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는지는 묻지 않나. 그 질문 자체가 차별적”이라고 꼬집었다.

마사 카루아 케냐 부통령 후보가 5일 케나 몸바사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몸바사=AP 연합뉴스

마사 카루아 케냐 부통령 후보가 5일 케나 몸바사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몸바사=AP 연합뉴스

케냐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각급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는 1만6,000여 명으로, 여성 비율은 11% 남짓이다. 2017년 선거(7%)보다는 여성 출마가 증가했지만 아직은 극소수다. 47개 카운티 중 여성이 입후보한 지역도 3곳뿐이다. 케냐 사회가 정치적 성평등을 이루기까지 갈 길이 여전히 멀다는 얘기다. CNN은 “여성들은 후보 경선 과정에서 차별당하고, 선거 자금난을 겪는다”며 “현역 여성의원이 남성의원에게 폭행을 당하는 등 일상적 성차별도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환경은 여성들이 더 낮은 직위에 출마하거나 아예 정치 진출을 포기하게 만든다”고 진단했다.

민주 정치 발전에도 여성 참정권 보장은 미흡

입후보를 해도 여성을 향한 폭력은 그치지 않는다. 케냐에서 여성이 정치를 한다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케냐 동부 라무 카운티 지사에 출마한 움라 오마르 후보는 “성소수자(LGBT) 모집책” “마약상”이라는 허위 비방과 인신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 나이로비 카운티 의원에 도전한 메리 무구레 후보는 사퇴를 압박하는 협박 전화를 받은 데 이어 선거 유세 도중 오토바이를 탄 괴한에게서 둔기로 공격을 당했다. 한 여성 정치인은 당내 경선에서 머리채가 뜯기고 옷이 찢어질 정도로 맞은 뒤 정치 진출 뜻을 접었다. 소셜미디어에선 여성 후보의 가슴과 다리 등 신체 일부를 확대한 성희롱 사진과 여성혐오 게시물이 무수히 나돌고 있다.

케냐 나이로비 카운티 의회 의원으로 출마한 메리 무구레 후보가 7월 26일 로이터통신과 인터뷰하는 모습. 무구레 후보는 선거 유세 도중 오토바이를 탄 괴한에게서 공격을 받았다. 나이로비=로이터 연합뉴스

케냐 나이로비 카운티 의회 의원으로 출마한 메리 무구레 후보가 7월 26일 로이터통신과 인터뷰하는 모습. 무구레 후보는 선거 유세 도중 오토바이를 탄 괴한에게서 공격을 받았다. 나이로비=로이터 연합뉴스

케냐는 동아프리카 국가들 중에선 정치ㆍ경제적 안정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여성 정치인 비율은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낮다. 국제의회연맹에 따르면 케냐 하원 의석 350개 중 여성은 75석으로 21.4%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75명 가운데 47명은 여성 의무 할당 의석이다. 반면 우간다는 556석 중 188석으로 33.8%, 탄자니아는 388석 중 143석으로 36.9%, 에티오피아는 470석 중 195석으로 41.5%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여성의 정치 진출을 보장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케냐는 2010년 헌법을 개정해 임명직이나 선출직으로 구성된 모든 기구는 여성을 3분의 1 이상 포함하도록 규정했지만, 성별 할당제를 시행하기 위한 후속 입법은 중단됐다. 국제인권단체 아티클19의 로버트 완잘라 국장은 “여성 정치인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많은 여성들이 정치에서 물러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며 “여성의 목소리가 사라지면 케냐도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 도약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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