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개인적 경험은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2010년 차량을 교체하면서 네모난 카드 모양의 스마트 키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사용하던 키와는 달리 작은 구멍 하나 나 있지 않으니 고리를 걸어 어딘가 매달 수도 없는지라, 내게는 참 골치 아픈 물건이 되었다. 집을 나설 땐 휴대폰과 함께 꼭 챙겨야 하는 소지품인데도, 가방을 바꿔 들거나 하게 되면 부주의하게 자주 빼놓고 다니는 물품이 되었다. 종종 아파트 지하 주차장까지 내려갔다가 차로 가까이 다가가도 문이 열리지 않으면, 그제야 키를 두고 온 걸 알아차리고 다시 집으로 되짚어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 번번이 발생했다.
그러다 결국은 사용하던 키를 어디 두었는지 찾지 못하고 잃어버리게 되었다. 젊은 시절에는 제법 야무지고 꼼꼼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나였지만, 아이 둘 키우며 시부모님 모시고 살면서 시간에 쫓겨 집에서 직장으로, 또 직장에서 집으로 왔다 갔다 바삐 오가면서 점점 덤벙이가 된 나는 중고차 매매할 때 스마트 키가 하나 모자란다는 이유로 값이 깎여 속상했던 기억이 있다. 그게 불과 5년 전 일인데, 새 차로 바꾼 지 1년 만에 또 키 하나를 잃어버렸다. 어디 두었는지 아무리 찾아도 안 나와 또다시 여벌 키를 사용해야 했다. 그리고 최근에 그마저도 잃어버렸다. 집안을 다 뒤져도 찾지 못해 결국 제조사에 스마트 키 두 개를 주문해야 했다. 이쯤 되니 스스로 한심해졌다. 차 문을 못 열어서 긴급출동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는 상황은 매우 당황스러운 경험이었다.
그뿐인가. 어쩌다 한두 번 가는 대형 쇼핑몰에서는 차를 못 찾아 지하 2층 3층을 오르내리며 왔다 갔다 진땀 빼는 일도 종종 있다. 분명히 기둥의 번호를 똑똑히 기억했다 싶은데도, 몇 시간 후 그 자리로 찾아가 보면 차가 없는 것이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이제는 내가 나를 믿지 못해 스마트폰으로 주차된 차와 기둥의 번호를 꼭 함께 찍어둬야 한다. 사십대 후반부터 시작된 이런 현상은 오십대가 되고 나니 더 심해졌다. 꼭 챙겨야 하는 물건을 어딘가에 두고 오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고,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혀끝에서 맴돌 뿐 정확한 명칭이 기억나지 않아 주변 정보만 잔뜩 말하게 되는 설단 현상도 잦아졌다. 기억 체계 속에 복잡하게 얽힌 정보들이 필요할 때 재빨리 인출되지 않는 일종의 뇌 속의 정보 정체 현상인 셈인데, 전보다 자주 경험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스마트 TV, 그리고 스마트 키… 똑똑하고 맵시 좋은 기기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스마트 기기를 사용할수록 정작 사용 주체인 나의 기능은 점점 퇴화하는 것만 같은 건 기분 탓일까. 날이 갈수록 덜 똑똑해지고 맵시도 망가져 가는 나를 보완하기 위해 점점 더 외부 장치에 의존하게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스마트 기기를 마치 PC 외장 하드처럼 보조 장치로 활용해야만 내 일상이 탈 없이 유지된다는 건 꽤 불편한 사실이기도 하다. 중추 신경계도 노화가 일어나니 어쩔 수 없는 기억력 감퇴는 수용해야 하겠지만, 편리함을 이유로 스마트 기기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는 습관이 나의 기억력 쇠퇴를 더 부추기는 건 아닐까. 주문했던 새 스마트 키 두 개를 받고 보니, 스마트폰 없이는 하루 일정 소화하기도 힘들어진 작금의 내 생활을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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