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부터 신경, 장기까지 모조리 기능을 소실한 80대 에브릴도, 앞으로 기억을 서서히 잃어갈 60대 데브라도 원하는 것은 하나였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삶의 말미를 장식하는 것. 남의 손에 의지해 내일을 갈구하는 대신 제 나름의 숭고함을 지키며 오늘까지의 여정을 무사히 갈무리하는 것이었다.
‘죽음의 격’은 존엄사법을 둘러싼 논쟁을 추적하면서 ‘존엄한 죽음’이 무엇인지, 나아가 ‘존엄하지 않은 삶’은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지 등을 다양한 관점에서 살핀다. 기자로 활동해온 저자가 6년간 법의 경계에서 부유하는 각국의 의사와 환자, 옹호론자와 반대론자를 끈질기게 취재한 결과다.
존엄사법에는 모호한 요소가 많다. 1994년 최초로 법을 통과시킨 미국 오리건주는 살 날이 6개월 이하이며 정신 질환이 없는 경우로 제한했다. ‘15일 간격으로 2회 요청’까지 해야 비로소 충족되는 이 법안은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이들, 신체 질환과 비견될 정신 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존엄사는 허용하지 않았다. 캐나다, 벨기에 등은 세부 준칙을 매만지면서 보완에 힘썼지만, ‘누가 내 죽을 권리를 결정짓느냐’는 근본적 의문까지 제기되면서 존엄사법은 더 큰 논란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저자에 따르면 존업사법은 "완전히 새로운 죽음의 성립을 전제하는 법"이다. 존엄사를 어떻게 규정하는지가 우리 삶의 의미와 우리가 속한 사회계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초가 될 수 있다. 누군가의 고백으로 가득 찬 이 책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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