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1960~70년대 반전 운동 속에 미국 청년들의 베트남전쟁 징집 이탈은 거셌다. 많은 청년들이 징집을 피해 캐나다 국경을 넘었는데 미국 정부는 그 숫자를 4만 명가량으로 추정했다. 베트남전 종전 이후 법적 문제로 현지에 남을 수밖에 없던 이들에게 1977년 지미 카터 대통령은 사면령을 내렸다. 당시 사회 분위기는 베트남에 간 청년이나 징집을 피해 해외로 떠난 이들 모두 용감한 행위로 평가했다. 병역 기피자 빌 클린턴이 1992년 대선에서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조지 H.W. 부시를 이긴 것이 이를 보여준다.
□ 러시아와의 전쟁 초기 해외로 나간 우크라이나인은 대부분 여성과 어린이였다. 현지에 남은 많은 남성들과 해외에 있던 사람들까지도 고국에 돌아와 총을 들었다. 침략당한 나라의 국민들이 이탈하던 것과는 다른 대응을 보며 세계는 우크라이나를 응원했다. 러시아에서 지금 벌어지는 징집 기피는 이와는 정반대다. 외신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부분 동원령을 내린 21일 이후 나흘 만에 26만 명 이상이 러시아를 떠났다고 보도했다.
□ 러시아와 접한 14개국 국경에선 탈출 행렬이 연일 장사진을 이뤄 위성 사진으로 포착될 정도다. 군인들은 이를 막기 위해 전쟁터 대신 국경으로 가고 있다. 러시아 각지에선 반발 시위가 잇따라 징집사무소 20여 곳이 불탔다. 그렇다고 징집 이탈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그간 러시아에서 반전 시위는 많지 않았고 여론은 푸틴을 옹호하며 전쟁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행동하지 않던 이들에게 푸틴의 동원령이 그나마 작은 불을 댕긴 셈이다. “우크라이나 형제와 싸우기도, 그렇다고 감옥에 가는 것도 싫다”는 한 이탈자의 말이 솔직해 보인다.
□ 국가가 벌이는 전쟁이나 광기를 피해 이탈하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나치 치하를 피해 많은 독일인들이 해외로 이탈했는데 노르웨이로 간 빌리 브란트는 나중에 독일 총리가 되어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했다. 어느 시대이든 군대·전쟁에 대한 호오, 두려움은 클 수밖에 없다. 강요되고 제도화된 애국심일지라도 이를 대체하고 설득할 수 없다면 국가의 실패이고 전쟁에 승리하기란 어렵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상반된 국민 이탈이 상징적인 것도 그런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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