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로그인이 안돼요" "임신 중 잘렸어요"... 실리콘밸리를 덮친 비정한 해고

알림

"로그인이 안돼요" "임신 중 잘렸어요"... 실리콘밸리를 덮친 비정한 해고

입력
2022.11.17 04:30
수정
2022.11.17 09:17
11면
0 0

해고 자유로운 미국서도 이례적인 칼바람
코로나 때 고용 늘렸다가 갑자기 침체 온 탓

최근 직원 1만1,000명에게 해고를 통보한 페이스북 모기업 메타의 로고. 연합뉴스 자료사진

최근 직원 1만1,000명에게 해고를 통보한 페이스북 모기업 메타의 로고. 연합뉴스 자료사진


해고 사례 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히만슈 베르마는 9일(현지시간) 메타(페이스북 모기업)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메타에 입사하기 위해 인도에서 캐나다로 이주한 지 이틀만이었다. "이제 뭘 해야 할까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캐나다나 인도에서 엔지니어를 찾는 곳이 있다면 제게 알려주세요." 그가 링크드인에 남긴 글은 6일 만에 2만3,000여 명의 공감을 얻었다.

해고 사례 ②: 임신 6개월째인 섀넌 루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인수한 트위터로부터 최근 해고를 통보 받은 3,700여 명 중 하나다. 날벼락 해고를 피하지 못한 임신부는 루만이 아니었다. 임신 8개월째인 다른 트위터 직원은 업무용 노트북을 켜려다 로그인이 안 되는 걸 보고 해고됐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가장 최근 고과에서 상위 30%에 들었다는 루는 자신을 향한 해고가 '명백한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법정에서 봅시다." 그가 머스크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다.

한국의 정리해고 요건

<근로기준법 제 24조>

①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②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
③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 기준으로 대상자 선정
④ 노조 등 근로자 대표에게 해고일 50일 전까지 통보 후 성실한 협의

멀쩡히 다니던 회사에서 하루 아침에 "나가라"는 통보를 받거나, 아침까지만 해도 접속이 되던 사내 전산망에서 퇴출(해고)되는 일. 정리해고 요건이 까다로운 한국에선 보기 어려운 일이 최근 실리콘밸리 대형 기술 기업(빅테크)의 일상이 되고 있다. 이달 메타, 트위터 두 곳에서만 해고된 인원이 2만 명(계약직 포함)에 가깝다.

원래부터 노동시장 유연성이 높아 해고가 자유로웠던 미국이지만, 요즘 빅테크 업계에서처럼 대규모 해고가 이어지는 사례는 전례를 찾기 어렵다고 현지인들은 입을 모은다. 왜, 지금, 유독 실리콘밸리에, 해고 칼바람이 몰아치는 걸까?

①왜 이렇게 많이 자르나

빅테크의 해고 바람은 여러 악재가 한꺼번에 겹친 탓이다. 올해 들어 △인플레이션 △경기 둔화 △테크기업의 급성장을 이끌었던 팬데믹의 종식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애플을 제외한 대부분 기업들의 실적이 고꾸라졌고, 주가도 급락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기간에 많은 직원들을 뽑았던 빅테크에서 해고의 규모는 특히 컸다. 지금까지 가장 큰 규모의 정리해고(1만 1,000명)를 단행한 메타의 경우 올해 9월까지 새로 채용한 인원만 1만5,300여 명이다.

대규모 해고가 이뤄지는 바탕엔 '그래도 되는'(웹툰 '송곳'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국 특유의 자유로운 해고 문화가 깔려 있다. △임신·인종·종교 등에 따른 차별적 해고나 △부당한 지시를 따르지 않은 데 대한 보복성 해고 등 일부 예외를 빼면, 정당한 이유가 없어도, 해고 원인이 다소 비도덕적이어도, 경영진의 감정이 섞여있어도 해고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미국 주요 테크기업의 11월 정리해고 규모. 김문중 기자

미국 주요 테크기업의 11월 정리해고 규모. 김문중 기자


②누가, 얼마나 잘렸나

해고 규모와 대상은 기업마다 다르지만, 일관되게 나타나는 흐름은 인사 조직의 축소다. 메타는 인사팀 인원의 약 50%를 상대로 해고를 통보했고, 1만 명 안팎 해고가 예고된 아마존도 인사와 채용 관련 직원들을 정리 대상에 대거 포함할 것으로 알려졌다. 트위터는 머스크의 인수 여부가 불확실했던 7월에 이미 채용·인사팀 30%를 해고했다. 인사 조직이 '해고 1순위'인 것은 기업들이 해고와 함께 고용을 동결하기 때문이다. "당분간 신규 채용은 없을 것"이란 메시지를 시장에 던지는 차원이기도 하다.

회사에 막대한 적자를 입힌 조직은 팀 자체가 통폐합되거나, 소속 직원이 대거 감원되기도 했다. 아마존, 메타는 미래 먹거리 격인 음성비서 알렉사(Alexa)와 메타버스 개발 조직을 해고 대상에 포함시켰다. 적자 사업에 돈을 쏟아붓는 데 회의적인 주주들을 달래기 위해서다.

소통 플랫폼 트위터를 인수한 머스크는 트위터의 커뮤니케이션(소통) 관련 조직을 와해시켰다. 평소 머스크 자신이 홍보 기능에 회의적이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는데, 최근 트위터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조직 부재의 영향도 크다는 분석이 많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트위터 로고. 머스크는 트위터 인수를 마친 지난달 28일(현지시간) 기존 트위터 임원이었던 파라그 아그라왈 CEO 등 3명에게 해고를 통보했고, 이달 직원 3,700명도 해고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트위터 로고. 머스크는 트위터 인수를 마친 지난달 28일(현지시간) 기존 트위터 임원이었던 파라그 아그라왈 CEO 등 3명에게 해고를 통보했고, 이달 직원 3,700명도 해고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③해고 후엔 어떻게 되나

해고자는 위로금 명목으로 두 달치 월급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실리콘밸리에선 최근 대규모 정리해고를 한 메타가 나름대로 '파격대우'를 제시했다는 시각이 많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서한을 통해 △16주 상당의 급여 △근속 연수에 따른 추가 급여 △6개월 간의 의료비 지원 △3개월 간의 이직 지원을 약속했다. 여기에 필요할 경우 본인과 가족들의 이민도 지원하기로 했다. 트위터는 세달치 급여를 주겠다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남은 직원들 사이 업무 과중 등 이유로 불만이 커지자 이들에겐 연말에 주식을 지급하기로 했다.

정리해고는 기업이 비용 절감을 위해 취하는 고육책이다. 그래서 보통은 해고 발표 후엔 주가가 오른다. 그러나 아마존은 14일 해고 돌입 소식이 알려진 후 되레 주가가 떨어졌는데, 주주들이 기대한 것보다 해고 규모가 작다는 게 이유였다.

④해고 강풍, 어디까지 가나

실리콘밸리에선 빅테크 출신은 해고를 당해도 이직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팀 해체로 해고된 경험이 있는 한 엔지니어는 "회사를 나간다는 소식이 알려진 때부터 다른 기업 채용 담당자와 스타트업 등에서 연락이 온다"며 "해고 됐지만 오히려 몸값을 높여 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엔 상황이 좀 다를 거라는 전망도 많다. 대규모 해고의 여파가 1년 이상 갈 것이라는 예측이다. 신규 고용을 동결한 회사가 많고, 추가로 해고를 검토하는 곳들도 있기 때문이다. 한 빅테크 소속 디자이너는 "회사들이 모여있어 옮겨갈 곳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게 실리콘밸리의 장점"이라며 "그러나 최근엔 너무 많은 인원이 한번에 시장에 나오고 있고, 빅테크 상당수가 채용을 동결한 상황이라 새 직장을 찾는 게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다만 테크업계 고용 한파가 미국 전체 고용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실리콘밸리와 달리, 미국 노동시장은 튼튼한 상태를 이어가고 있는 게 그 방증이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미국 고용 시장에서 테크업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에 불과하고, 여전히 여행이나 서비스 업계는 일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팬데믹 기간 몸집이 비대해진 한국 테크기업들도 실리콘밸리만큼 타격은 없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해고가 어려운 탓이다. 한국, 미국 등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한국은 해고가 사실상 불가능해 최근 미국 사무실만 조용히 구조조정을 했다"고 했다.

실리콘밸리= 이서희 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