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너’의 운동하는 풍경
편집자주
강소희 작가, 서효인 시인이 스포츠로 풀어내는 세상 이야기. 스포츠에 열광하는 두 필자의 시점에서 이 시대의 스포츠를 응원하고 지적합니다.
너는 다이어트와 건강을 위해서 퍼스널 트레이닝(PT)과 필라테스를 한다. 재미와 삶의 즐거움을 위해서 수영과 테니스를 한다. 너는 규칙적인 생활로 체력이 좋아져서 일상에 활력이 생기는 게 좋다. 너는 미국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센트럴 파크를 달리는 샬럿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데 출퇴근 시간을 피해 운동을 하자면 새벽 6시 혹은 저녁을 굶고 8시에 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건 좀 어려워서 고민이다.
네가 풋살을 시작한 지가 1년 반 정도 지났다. 처음에 너는 현실에서 도망치려고 공을 찼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돌이켜보니 너는 살아내려고 공을 찬 것이었다. 너는 풋살과 함께 인생 최대 암흑기를 통과하며 잃어버렸던 활기와 자신감, 삶에 대한 애정을 되찾았다. 풋살을 잘하기 위해 황금 코어를 만들겠다는 너는 땀 흘리는 맛을 알아버려서 러닝도 시작했다. 너는 운동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너는 일주일에 한 번 요가를 하고, 두 번 테니스를 친다. 너는 운동을 한 주와 빼먹은 주의 컨디션을 작지만 분명히 다르게 느낀다. 자신과 잘 어울리는 운동을 오래 한 사람, 그렇게 그 운동과 어울리게 된 사람, 스포츠 트렌드나 남에게 보이는 면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자기다운 방식으로 그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을 너는 매력적으로 생각한다.
임신기간 동안 운동을 쉬어서 출산하자마자 뭐라도 해야지 벼르고 있었던 너는 수영을 시작했다. 가만히 앉아 하루를 보내면 좀 쑤시는 느낌이 드는 게 싫은 너는 운동 후에 ‘아, 그래도 오늘 뭐라도 했다’ 같은 생산적인 기분이 되는 걸 좋아한다. 너의 롤모델은 주전이 아니더라도 묵묵하게 훈련하는 안경선배(만화 ‘슬램덩크’에 나오는 성실의 아이콘)다. 너는 그처럼 언젠가는 한 건 하는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너는 아침마다 자체 조립한 맨몸 운동 루틴을 수행한다. 몸이 아프고 무거워서 시작했는데 너는 몸이 조금이라도 변하는 데 재미를 느끼고 자꾸 새로운 동작을 추가한다. 너에게는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 열고 물 마시고 스트레칭하던 할아버지가 있었다. 운동을 하면 생각이 없어지는 느낌을, 너는 좋아한다.
한 달에 두세 번 등산하는 너는 새해에도 딱 이 정도의 패턴을 유지하고 싶다. 너는 전국의 유명산을 하나씩 깨트리며 계절이 변하는 걸 놓치지 않고 느끼며 살고 싶다.
자세 때문에 미래가 걱정된 너는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운동을 꾸준히 하면 하루가 바뀌고 기분도 체력도 바뀐다. 하지만 네게 운동이란 강박적으로 하지 않으면 지속이 어렵고, 강박적으로 하면 본업을 어렵게 만드는 문제이기도 하다. 네가 원하는 건 잔뜩 부풀어 오른 근육이다.
20대 초반의 너는 다이어트 때문에 운동을 했다. 헬스, 요가, 필라테스 같은 혼자서 하는 운동에 지루함을 느끼던 너는 농구를 접하고는 게임에 몰입하는 재미에 눈을 떴다. 그 뒤로 너는 4쿼터 중 3쿼터를 뛸 수 있는 체력, 농구를 잘하기 위해 체력을 기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됐다.
너는 초등학교 때 학교 대표 수영 선수였다.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을 때 너는 헬스장만 갔다 오면 다 까먹고 나올 수 있다. 너에게는 필라테스와 웨이트 PT와 수상스키가 서로 긴밀하게 엮여 좋은 영향을 주는 삼위일체 같다. 운동은 네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너는 운동할 때 루틴에 집착하지 않고 그저 꾸준히 하려고 한다. 루틴에 집착하게 되면 딱 한 번 어그러졌을 때 포기하기 쉽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너에게 일은 운동을 시작할 핑계가 되기도 하고, 그만둘 핑계가 되기도 한다. 너는 10분 넘게 뛰어도 끄떡없는 심폐지구력과 멋진 등 근육을 원한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2개의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원고를 쓰고 행사를 진행하고…누가 하라고 총 겨누고 시키는 것도 아닌데 이걸 다 해야 좀 사는 것 같은 너는 요가를 한다. 대부분 바깥으로 주의가 향해 있어 긴장도가 높은 편인 너는 요가를 하며 주의를 네 몸과 마음으로 데려온다. 너는 제대로 못하더라도 꾸준히 하기를 목표로 한다.
사람들이 운동의 좋은 점과 힘든 점을 얘기할 때 너는 크로스핏을 시작하고 네가 오만해졌음을 고백한다. 너는 집중력이 강해져 한번 일을 시작하면 꼭 끝을 본다. 처음에는 체력을 기르고 싶었고 다음에는 몸을 만들어 보고 싶었던 너는 이제 운동을 일과로 둔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너는 너무 우울하다.
너는 삶을 바꿀 만큼의 운동은 해본 적이 없다. 건강검진에서 근력운동을 해야 한다고 해서 근력운동을 시작하려는 너.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덤벨 운동과 걷기를 하는 너. 좋아하는 친구들이 좋다고 하니 조깅을 한번 시작해 보고 싶은 너.
야근이 많아질수록 운동을 하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운동을 안 하면 너의 삶은 너무 힘들어진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재택을 하면서 몸이 두부가 된 경험을 한 너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너에게 운동은 고통스럽지만 장기적으로 덜 고통스럽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이다.
예전의 너는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마음이 깃든다느니, 우울하면 운동을 하라느니 하는 말들을 비웃었다. 정말 좋아하는 운동을 만나고 나서 너는 더 이상 그런 말을 비웃지 않게 됐다. 너에게는 경험적으로 진짜니까. 인간이 호르몬의 동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너는 좀 겸손해진 것도 같다.
너는 실내 사이클을 시작했다. 추운 날 집에서 하기 편하고 공복 유산소로 더 하기 쉬울 것 같아서. 그리고 일이 늦게 끝나도 영향을 받지 않을 것 같아서. 너는 땀을 흘리고 나면 삶이 조금 더 아름다워지는 것 같다고 느낀다. 네 몸을 네가 지배하고 있다는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낀다.
너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너를 바꿀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독서와 운동은 너를 조금씩 바꾼다. 그래서 너는 필라테스로 바른 자세를 지키고 러닝으로 계절을 감지한다. 그리고 너는 그냥 너무 재밌어서, 여자들이랑 몸 부딪치고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는 게 좋아서 풋살을 한다.
오랜만에 축구를 하러 간 너는 팔이 부러져 돌아왔다. 바다 위에 있으면 무엇 하나 예상대로 되는 게 없지만, 한 번씩 파도와 합이 잘 맞아 물 위를 미끄러지듯 가로지르면 대자연과 짝! 하고 하이파이브를 한 것 같다는 너는 서핑맨이다.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게 무엇이든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것 같다. 너는 좋아하는 것을 더 잘하고, 더 자주 하고 싶다.
나와 다양한 거리를 가진 열여덟 명에게 운동에 대해 물었다. ‘너’라는 이인칭을 쓴 이유는 이들의 이야기가 독자적인 동시에 누구라도 너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통과한 그들 자신의 이야기가 새롭고 낯설게 읽히기를 바랐다. 한편 너로 묶인 이야기들은 한 운동장에서 제각기 뛰어노는 다양한 어른들의 풍경 같기도 하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과 닮았다. 누군가는 트랙을 달리고, 누군가는 장대 넘기를 하고, 누군가는 3점 슛을 노리고, 누군가는 넘어지고, 누군가는 손을 내밀고, 누군가는 편을 먹고,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진다. 그렇다고 한들 우리는 결국 운동장을 떠나 어디론가 돌아가는 존재들일 뿐이다. 사람이 미워지고 사는 게 힘든 날엔 제각기 뛰어노는 운동장을 떠올려도 좋겠다. 땀나게 놀다가 때가 되면 먼지를 털고 하이파이브를 날린 뒤 훌훌 떠나는 쿨한 존재가 되는 상상을 하는 것도 좋겠다.
*질문에 응해주신 분들 : 김가영 장캡틴 김한성 심영희 호영 오수경 문상훈 정명인 최희연 류현지 금개 송세진 임현우 박초롱 노신영 그레이스 테일러 홍예원 박관우 (등장 순서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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