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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속 기적들]동생 안고 17시간 버틴 7세 소녀는 그저 "고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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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속 기적들]동생 안고 17시간 버틴 7세 소녀는 그저 "고맙다"고 말했다

입력
2023.02.0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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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줘서 고맙다" 구조 작업은 계속된다
잔해 밑에서 태어난 아기...지키던 산모는 숨져
어린 동생 안고 '17시간' 내리 버틴 7세 소녀
일가족 생환에 환호·안도의 눈물..극적 순간들


7일(현지시간) 시리아 알레포주 아프린 마을의 어린이 병원 인큐베이터에서 신생 여아가 치료받고 있다. 이 아기는 지진으로 무너진 아파트 건물 잔해 속에서 태어나 3시간 만에 구조됐다. 아프린=AP 뉴시스

7일(현지시간) 시리아 알레포주 아프린 마을의 어린이 병원 인큐베이터에서 신생 여아가 치료받고 있다. 이 아기는 지진으로 무너진 아파트 건물 잔해 속에서 태어나 3시간 만에 구조됐다. 아프린=AP 뉴시스

절망 속에도 ‘기적’은 있었다.

강진으로 붕괴된 시리아 건물 잔해 속에서 신생아가 태어난 지 3시간 만에 구조됐다. 1시간만 늦었어도 기적은 없었을 것이다. 아기의 어머니는 바로 옆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멍투성이의 아기는 구조된 순간까지 어머니와 탯줄로 연결돼 있었다.

어머니는 건물 잔해에 깔린 채 여자아이를 낳았다. 그가 마지막 힘을 다해 출산하지 않았다면 아이도 숨졌을지 모른다. 산모가 사망하면 태아의 생존 확률은 희박해진다.

7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아이는 지진이 발생한 지 10시간 만인 6일 오후 시리아 서북부 도시 진데리스의 건물 잔해 사이에서 구조됐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지만 작은 몸으로 살아 있었다. 구조 현장을 지켜보던 한 여성이 탯줄을 끊어줬다.

아이 몸엔 타박상과 베인 상처가 있었다. 체온이 35도까지 떨어져 손끝이 파랬다. 알레포주(州)의 어린이병원으로 옮겨진 아이는 인큐베이터에서 치료를 받고 상태가 극적으로 호전됐다. 아이를 치료한 의사 하니 마루프씨는 “울음을 터뜨릴 정도로 건강이 회복됐다”고 말했다.

아이의 가족은 모두 희생됐다. 친척인 칼릴 알 스와디씨는 “아이의 부모와 형제자매 네 명, 이모의 시신을 몇 시간 동안 수습했다”고 했다. 홀로 남은 아이는 친척들이 보살핀다고 전해진다.


“구해주시면 노예 될게요”... 동생 감싼 언니의 간절한 외침

무너진 건물 잔해에 갇힌 7세 소녀가 등으로 콘크리트를 떠받치며 품 안의 동생을 보호하고 있다. 주허 알모사 기자 트위터

무너진 건물 잔해에 갇힌 7세 소녀가 등으로 콘크리트를 떠받치며 품 안의 동생을 보호하고 있다. 주허 알모사 기자 트위터

시리아에선 어린아이들이 기적을 썼다. 7세 소녀는 동생을 보호하려 콘크리트 더미에 깔린 채 17시간을 버텼다. 기자 주허 알모사가 7일 트위터에 공개한 영상에서 소녀는 동생을 꼭 끌어안아 보호했다. 소녀가 감싸안은 덕분에 동생의 얼굴엔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용감하게 동생을 지킨 소녀는 구조대원이 도착하자 도와달라고 울먹였다. 갈라진 목소리로 “여기서 저와 제 동생을 꺼내 주면 당신의 노예가 되겠다”고 말했다. 알모사는 “아랍 문화권에서 지극한 감사를 뜻하는 표현”이라고 했다.

구조대원은 장비가 도착하길 기다리며 소녀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놀란 소녀를 진정시키기 위해서였다. 소녀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내내 동생을 감싼 손을 풀지 않았다.

소녀와 동생은 무사히 구조됐다. 시리아 북부 보호소로 옮겨졌지만, 부모의 생사는 알려지지 않았다.

삐죽 나온 작은 발... 구조대는 놓치지 않았다

6일 시리아 알레포주 무너진 건물 파편 속에 아이의 발이 빠져나와 있다. AFP 영상 캡처

6일 시리아 알레포주 무너진 건물 파편 속에 아이의 발이 빠져나와 있다. AFP 영상 캡처

구조대원의 날카로운 눈과 끈기가 생명을 살리기도 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6일 시리아 반군 측 민간구조대 '하얀헬멧'은 알레포주의 붕괴된 건물 잔해 속에서 흙먼지에 뒤덮인 소년의 발을 발견했다. 발이 워낙 작은 데다 철근 사이에 끼어 있어 지나칠 수 있었지만 구조대원은 놓치지 않았다.

구조대원들이 달라붙어 장비로 철근을 자르고 콘크리트를 부쉈다. 작은 구멍이 파이자 소년을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작은 몸은 긁힌 상처투성이였고 곳곳에 핏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구조대원의 품에 안기고 나서야 소년은 울음을 터뜨렸다.

같은 날 튀르키예 남부 산리우르파주에선 몸이 잔해에 깔려 다리 일부만 드러나 있던 여성이 22시간 만에 구출됐다. 아나돌루통신은 여성의 상체가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 보이지 않았고, 다리만 밖으로 늘어져 있었다고 전했다. 작업 속도가 나지 않아 생존이 불투명해지자 구조대는 산소와 수액을 투여했다. 거대 크레인을 투입한 끝에 여성은 목숨을 구했다.

‘가족 전원 구출’ 희소식에 터져 나온 환호

5인 가족 전원이 잔해에서 빠져나오자 구조대와 시민들이 기뻐하고 있는 모습. 트위터 캡처

5인 가족 전원이 잔해에서 빠져나오자 구조대와 시민들이 기뻐하고 있는 모습. 트위터 캡처

시리아 서부 이들라브주에서는 5인 가족이 40시간 만에 전원 구조됐다. 일가족이 전부 살아남은 경우가 워낙 드문 만큼 잠시나마 웃음꽃이 폈다.

구조 현장에선 ‘침묵’이 원칙이다. 잔해에 깔린 생존자의 작은 숨소리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아이 세 명이 연달아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나자 현장은 환호와 박수 소리로 가득찼다. 겁에 질린 얼굴로 구출된 네 살 소녀는 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콘크리트 파편에 짓눌린 채 아이들을 지킨 부모도 살아남았다. 미국 ABC방송은 “부모는 들것에 실려 구출됐다”고 전했다.

"아직 희망의 끈 놓기엔 이르다"

대형 참사의 골든타임으로 알려진 72시간이 임박하면서 ‘비관론’이 우세해졌지만, 재난전문가들은 아직 희망을 잃지 말라고 조언한다.

미국 비영리단체 ‘미야모토 글로벌재난구호단’의 킷 미야모토 대표는 미국 CNN방송 인터뷰에서 “지진 발생 몇 주까지 생존자가 발견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지진은 시민들이 구조 활동을 빨리 시작해 희망의 끈을 놓긴 이르다고도 했다. 기적은 더 많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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