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청원 1주일 새 1만4000명 동의
자비 복용 시 월 600만원↑, "해외 제네릭이라도"
암환자 커뮤니티서 회자되며 비상한 관심
"타그리소를 먹고 암이 사라지는 치료 효과를 봤습니다. 계속 복용하고 싶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경제적 부담이 너무 큽니다."
지난 6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는 2017년 폐암 2기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인 환자 김모씨의 청원이 올라왔다. 그는 수술을 받았지만 2021년 10월 암이 재발해 뇌까지 전이되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타그리소'를 복용했다고 밝혔다. 타그리소는 글로벌 제약기업 아스트라제네카의 3세대 표적항암제다.
김씨는 "약 3개월 뒤 모든 종양이 없어졌다는 기적 같은 소식을 들었고 지금은 3개월에 한 번씩 검사를 받고 타그리소를 먹으며 마치 처음부터 암 진단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처럼 건강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적었다.
문제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한 달에 600만 원이 넘는 약값이었다. 그는 "1년 넘게 먹어 이미 7,000만 원 넘게 썼는데, 앞으로 어떻게 약값을 마련해야 할지,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너무 큰 고통을 주는 것 같아 괴롭다"고 토로했다. 또 "환우회 사이트에는 방글라데시의 타그리소 제네릭 구하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단 몇 알이라도 구하려고 간청하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면서 타그리소의 1차 치료제 건보 적용을 국회에 청원했다.
김씨의 청원에는 게재 1주일째인 13일 오후 1만4,000여 명이 동의했다. 암환자 커뮤니티 등에서도 빠르게 확산하며 2019년부터 네 번이나 심의에서 탈락한 타그리소 1차 치료 건보 적용 여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1차 치료 미적용, 2차 치료만 건보 적용
한국아스트라제네카에 따르면 타그리소는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 목적으로 개발한 항암제다. EGFR 변이는 한국인 폐암 환자에게도 가장 흔한 유전자 변이다. 2019년 국가암등록통계 기준 비소세포폐암 중 30~40%를 차지한다.
타그리소는 2018년 4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6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 이어 같은 해 12월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비소세포폐암 치료제로 승인받았다. 다만 국내에서는 1차 화학요법 선행 뒤 효과가 없을 때 투여하는 2차 치료제에만 건보가 적용됐다. 이와 달리 전 세계 60여 국가는 1차 치료제로 보험 급여를 적용하고 있다. 우리가 약가를 참조하는 8개 선진국(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일본, 미국, 캐나다)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 EGFR 변이로 인해 2차 치료를 받는 폐암환자는 연간 1,200명 수준이고, 한국아스트라제네카는 이 중 절반 넘게 타그리소를 복용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건보 적용 시 암 등 중증환자의 본인부담금은 5%라 약값은 한 달에 30만 원 정도다. 자비를 들여 건보 적용이 안 되는 1차 치료제로 타그리소를 먹는 폐암 환자는 수백 명으로 추산된다.
작년 말 건보 적용 재신청, 4전 5기 가능할까
건보 적용을 위해서는 우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암질환심의위원회(암질심)를 통과해야 한다. 이어 약제급여평가위원회(약평위)를 거쳐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제약사의 약가 협상이 완료되면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를 통해 고시된다.
타그리소 1차 치료제는 2019년 10월, 2020년 4월, 2021년 4월과 11월 네 차례 암질심 안건으로 상정됐지만 매번 탈락했다. 한국아스트라제네카는 지난해 10월 심평원에 1차 치료 급여 검토를 재신청한 상태다.
암질심 회의록이 공개되지 않아 정확한 이유는 파악되지 않지만 전체 데이터 공개, 임상 자료 보완 요구 등이 있었고 고가의 약값도 걸림돌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한국아스트라제네카는 이번에는 다섯 번째 도전이라 약값을 낮출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자료를 보완하고 (약값 면에서도) 이전보다 더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심평원은 타그리소 암질심 재신청을 접수해 검토하고 있는 단계다. 심평원 관계자는 "언제 안건으로 상정될 수 있을지 아직 알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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