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한국 야구에 학교 폭력 근절 나서는 선배를 기다리며
편집자주
강소희 작가, 서효인 시인이 스포츠로 풀어내는 세상 이야기. 스포츠에 열광하는 두 필자의 시점에서 이 시대의 스포츠를 응원하고 지적합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가 연일 화제다. 월드컵도 끝나고 야구도 없는 겨울날 나 또한 '더 글로리'를 진지한 태도로 정주행했다. 주인공 문동은(송혜교)은 박연진(임지연)을 비롯한 가해자 무리에게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학교 폭력을 당한다.예를 들어 머리카락을 손질하는 전기 제품인 일명 '고데기'로 맨살에 화상을 입히는 장면이다. 2006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보도된 뉴스를 살펴보면 드라마에서의 재현은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더 글로리'가 이처럼 흥행한 이유도 학교 폭력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니 더 깊은 연원을 두고서 우리 삶에 피폐한 영향력을 끼친 여파였을 것이다. 허구가 아닌 사실로서 육박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가해자였고 누군가는 피해자였으며 대다수는 방관자였던.
학교 폭력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받아들여진 건 오래된 일은 아니다. 많은 사건이 그저 장난이나 싸움 정도로 치부됐다. 권위주의 시대에는 선생에 의한 폭력이 자행됐고, 근래에는 교내에서 힘의 우위에 의한 폭행이 횡행했으며 최근에는 사이버 폭력까지 심각함을 더하고 있다. 제지되지 않고, 처벌되지 않는 폭력은 가해자에게는 무감함을 피해자에게는 무참함을 안긴다. 연진 일당이 체육관을 다시 찾아온 동은을 금방 알아보지 못하듯이 그들은 금방 잊는다. 그들에게 피해자는 맞을 만해서 맞았을 뿐이다. 그리하여 피해자는 자신에게서 그 잘못을 찾으려 한다. 제 탓을 한다. 누구도 그들을 막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 중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벌받지 않았기에 반성하지 않았고 반성하지 않았기에 용서할 수도 없다. 극 중 동은 역시 연진을 쉽게 용서할 생각이 없다.
미국 현지 한인 라디오에서 한 추신수의 발언이 난데없이 스토브리그를 덮쳤다. 그는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용서가 쉽지 않다.” 학폭 가해 사실이 드러나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와 구단 자체 징계를 받은 키움 투수 안우진이 2023년 WBC 대표팀에서 탈락한 것에 대한 아쉬운 마음의 표현이었다. 그 아쉬움의 이유는 국제대회에서의 더딘 세대교체였다. 덧붙여 안우진의 사례가 야구판 전체에 크나큰 불공정 사례나 된다는 듯이 사태에 개입을 꺼리는 선배들을 일찍 태어났다고 하여 다 선배인 것은 아니라며 다그쳤다. 메이저리그를 섭렵하고 돌아온 스타의 무게감과 어울리지 않는 이러한 발언들은 언론을 통해 삽시간에 전파됐고 팬 커뮤니티와 각종 기사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다음 시즌의 전망과 희망으로 채워야 할 공간에 그의 발언이 대신 자리한 셈이다.
안우진은 프로야구 선수로서 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선수 생활을 멀쩡하게 이어가고 있다. 협회의 징계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 한정되므로 (엄연한 의무 사항인) 병역의 아쉬움(?)을 털어내기만 한다면 야구 선수로서 실질적 용서는 이미 받은 것과 마찬가지다. 둘째, 안우진을 제외하더라도 적어도 투수진은 꽤 많은 유망주가 선발됐다. 소형준(KT), 이의리(KIA), 김윤식(LG), 곽빈(두산) 등 20대 초중반 투수의 활약이 기대되는 이번 대회다. 후배로서 안우진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이해할 만하지만 야구계에 후배가 안우진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대표에 선발돼 평소보다 먼저 몸을 만들고 있는 다른 후배의 입장을 헤아린다면 야구를 일찍 시작했다고 아무런 말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폭의 피해자는 (프로야구 선수가 되지 못했을망정) 야구 후배가 아니란 말인가. 향후 메이저리그에 갈 정도의 실력을 보유해야만 야구 후배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정작 선배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학교 폭력에 시달려 중도에 운동을 포기해야 했던 무명들이었을 텐데도.
메이저리그에 추신수보다 더한 족적을 남긴 박찬호는 이번 사태를 두고 안우진더러 이렇게 말했다. “시대가 안우진을 원하지 않는다.” 그의 말대로 시대가 바뀌었고 또한 바뀌는 중이다. 우리 사회의 많은 분야가 그렇듯 양적 발전에 비해 뒤늦게 찾아온 변화이기는 하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운동부에서 어느 정도의 폭행과 얼차려는 용인되는 분위기였으나 지금은 10년도 더 된 과거의 폭력이 소환돼 흠결이 될 수도 있는 시대다. 유명 운동선수가 인터뷰나 토크쇼에서 학창 시절에 맞거나 때렸던 일화를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던 시대는 다행히도 지나갔다. 그러나 폭력의 문화는 뿌리가 깊어서 최근까지도 그 일은 분명히 일어난다. 고교 졸업 후 프로지명을 받았다가 학교 폭력 논란으로 지명 철회된 투수 김유성은 다시 드래프트에 도전, 두산에 지명됐다. 팬들 사이에 부정적 여론이 높으나 그가 프로야구 선수가 된 것은 변할 수 없는 일이고 이후 성과에 따라 고액 연봉을 받는 스타가 될 수도 있다. 용서받지 않았어도 실력이 좋으면 용서를 받은 것과 진배없는 상황이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그에 따른 처벌을 받는다. 사회엔 합의금이나 벌금을 낸다. 죄의 경중에 따라 실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다. 야구에서는 엄중 경고를 받거나 역시 벌금을 내거나 출장 정지를 당할 수 있다. 벌을 받았던 사람이라고 하여 그 후의 모든 활동이 금지되거나 사회로의 복귀가 부정당해서는 안 되고 프로야구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학교 폭력이 저마다의 상처가 돼 공동체의 트라우마로 남은 지금 팬들의 여론마저 무시하려는 태도는 이해할 수 없다. 더욱이 국가대표팀은 팬심이 구단주 역할을 한다. 팬의 응원이 없다면 그럴듯한 국가대표는 허울뿐일 테다. 용서를 받으려는 자의 진정성은 반성의 지속성에서 증빙된다. (야구로 보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피해 당사자의 용서는 물론이고 팬들의 용서가 있을 때까지 해당 이슈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가해 규모를 축소하거나 명예훼손으로 상대를 고소하는 일로 해결되지 않는, 길고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야구 선배들과 한국야구위원회(KBO)가 후배인 그들을 돕고 싶다면 리그 차원의 학교 폭력 추방 캠페인을 펼치길 제안한다. 야구는 매일 노출되며 비교적 여러 세대가 소비하는 콘텐츠다. 경기장 광고판과 전광판의 극히 일부에 학교 폭력에 반대한다는 문구를 넣으면 충분히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시즌 개막에 맞춰 각 구단 대표 스타에게 학교 폭력 근절 메시지를 받아 야구 콘텐츠가 재생되는 곳곳에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정후(키움)나 강백호(KT) 같은 젊은 스타가 어떠한 경우라도 폭력은 절대 안 된다는 이야기를 진중하게 반복한다면 야구뿐만 아니라 학원 스포츠를 하는 많은 학생 선수에게 무게감이 다른 조언이 될 것이다. 이러한 캠페인이 실력은 있으나 과거에 실수를 저지른 안타까운 후배에게 주는 진정한 도움이다. KBO와 야구계 모두가 이제 폭력을 반대한다는 분명한 사인은 수많은 피해자에게 줄 수 있는 진짜 위로가 될 수 있다.
'더 글로리' 두 번째 파트를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은 이른바 사이다 결말을 기대하는 것 같다. 공개된 예고편과 작가의 말을 미루어 짐작건대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이 생긴다. 하나 사이다는 드라마에서나 가능하다. 현실에서 복수는 용서보다 어렵다. 사적 복수는 본래의 가해보다 더 엄정하게 처벌된다. 하여 우리는 복수가 아닌 용서를 도와야 한다. 용서받는 걸 돕는 게 아니라 용서하는 걸 도와야 한다. 용서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를 내는 데 도움이 필요하다.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확신과 가해자의 잘못이라는 확언을 주어야 한다. 야구 일찍 시작했다고 선배가 아니다. 도와야 할 후배를 도와주어야 선배인 것이다. 자, 이제 선배 노릇을 누가 할 것인가. '더 글로리'가 끝나면 야구 시즌이 시작된다. 좋은 선배가 많이 보이기를 드라마보다 더욱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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