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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지 몰린 네타냐후, 국내외 비판에 '사법 정비' 여름으로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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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지 몰린 네타냐후, 국내외 비판에 '사법 정비' 여름으로 연기

입력
2023.03.28 01:27
수정
2023.03.28 11:01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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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정 참여 극우정당 "5월 초까지 미루겠다"
'사법개혁 중단 요구' 장관 해임에 민심 폭발
대학·노조·대통령도 반발하자 결국 '일보후퇴'

16일 이스라엘 텔아비브 벤구리온 국제공항에서 정부의 사법 개편에 반대하는 한 시위자가 독일 순방을 위해 출국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향해 '돌아오지 말라'는 푯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로드=로이터 연합뉴스

16일 이스라엘 텔아비브 벤구리온 국제공항에서 정부의 사법 개편에 반대하는 한 시위자가 독일 순방을 위해 출국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향해 '돌아오지 말라'는 푯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로드=로이터 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강행해 온 사법 개편 작업이 올여름으로 연기됐다. 나라 전체를 항의 시위가 뒤덮을 만큼, 안팎에서 반발 움직임이 예상보다 훨씬 거셌던 탓이다. 당초 27일 오전 10시 30분(현지시간)으로 예정됐던 긴급 회의 결과 발표가 미뤄진 지 8시간 만에 집권 연립정부에 참여 중인 극우정당의 이 같은 입장이 공개됐다.

네타냐후 총리가 한발 물러선 건 자신의 사법 재편에 반기를 든 국방장관을 전날 경질한 게 결과적으로 자충수가 됐기 때문이다. 국방장관 해임 소식에 그동안 사태를 관망해 왔던 대학·노동·의료계까지 들고 일어나며 전국에서 시위가 격화됐다. 네타냐후 총리로선 '사법 정비'라고 주장했던 사법부 개혁 입법 작업을 이어갈지, 아니면 시민사회의 '사법 무력화' 비판을 수용하고 잠정 중단할지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 그 결과, 당장은 사태를 진화시키는 게 시급하다고 판단해 '일단 연기' 결정을 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8시간 지연 끝에..."의회 다음 회기까지 개혁 연기" 발표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 보도에 따르면, 이날 이스라엘 극우정당인 '오츠마 예후디트(유대의 힘)'는 네타냐후 총리가 사법 개혁을 크네세트(의회)의 다음 회기인 5월 초까지 연기하기로 야당과 합의했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유대의 힘은 여당(리쿠드-국민자유운동)과 연정을 이루고 있는 정당이다.

이번 결정은 사법 개혁 반대 시위가 날로 격화하고, 연정이 무너질 위기에까지 처하는 등 궁지에 몰린 네타냐후 총리가 내놓은 임시방편이다. 이날 오전 주요 각료와 여권 인사들을 소집해 개최된 긴급 회의에서 '작업 중단' 필요성을 강조한 온건파와 '입법 절차 강행'을 요구한 강경파가 대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매체인 '더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은 당초 전국적 반발에 개혁 중단이 유력하게 검토됐으나, 우파 연정의 핵심 인사이자 오츠마 예후디트의 대표인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이 "입법을 중단할 시 연정을 탈퇴하겠다"며 강하게 반발해 '연기' 수준으로 마무리됐다고 보도했다. 벤-그비르 장관이 이탈할 경우, 네타냐후 총리의 우파 연정이 붕괴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저지하기 위해 타협한 셈이다.

지난달 22일 이스라엘 예루살렘 국회에서 사법 개혁안 입법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베냐민 네타냐후(왼쪽) 총리가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과 함께 앉아 있다. 예루살렘=로이터 연합뉴스

지난달 22일 이스라엘 예루살렘 국회에서 사법 개혁안 입법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베냐민 네타냐후(왼쪽) 총리가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과 함께 앉아 있다. 예루살렘=로이터 연합뉴스


반기 든 장관 경질, 결정적 계기 됐다...국내외 비판에 압박 커져

'독불장군'처럼 개혁을 밀어붙이던 네타냐후 총리를 저지한 건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의 해임이 결정적이었다. 갈란트 장관은 25일 생방송 TV연설에서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 정비' 작업에 따른 사회 분열이 국가안보에 즉각적이고 실재하는 위협이 됐다"며 "이스라엘의 아들과 딸을 위해 입법 절차를 이제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고, 이튿날 전격 해임됐다.

갈란트 장관의 경질 소식은 가뜩이나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12주차를 맞은 '사법 개혁 반대' 주말 집회가 열린 26일 시위 현장에는 수만 명의 시민이 모여 대형 모닥불을 피우는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했다. 시위 여파로 이스라엘 벤구리온 국제공항도 항공기 이착륙이 중단됐다. 시위대 수천 명은 네타냐후 총리 관저로 돌격하기도 했다. 놀란 경찰은 물대포로 이들을 간신히 막아냈다.

대학가도 휴교를 선언했고, 노동계와 의료계, 외교관들도 가세했다. 이스라엘 최대 노동단체인 히스트라두트(노동자 총연맹)는 성명을 내고 총파업 투쟁을 선언했다. 의사연합 역시 "사법 정비 입법을 중단하지 않으면 28일부터 의료 서비스를 중단하겠다"고 정권을 압박했다. 이어 연정 입장 표명이 늦어지던 27일 오후엔 해외 주재 이스라엘 공관 소속 외교관들까지 파업에 동참했다.

26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사법 개혁 반대 시위대가 고속도로에 모닥불을 피우고 모여 있다. 텔아비브=AP 뉴시스

26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사법 개혁 반대 시위대가 고속도로에 모닥불을 피우고 모여 있다. 텔아비브=AP 뉴시스

심지어 정권 내부에서도 네타냐후 총리의 일방적 국정 운영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야권과의 중재협상에 앞장섰던 이츠하크 헤르초그 대통령은 26일 "이스라엘 국민의 통합과 책임을 위해 입법 절차를 즉각 중단해 달라"고 촉구했다. 범여권 원로인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 등도 공동성명을 통해 "국가안보를 정치 게임 카드로 사용한 네타냐후는 오늘 '레드 라인'을 넘어섰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우방국인 미국마저 지난 19일에 이어 또다시 경고 신호를 보냈다. 애드리언 왓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변인은 26일 "우리는 이스라엘 사태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가능한 한 빨리 타협점을 찾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압박했다.

정재호 기자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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