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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엔 탄피, '삐삐선'에 묶인 손... 6·25 전쟁 민간인 학살 현장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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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엔 탄피, '삐삐선'에 묶인 손... 6·25 전쟁 민간인 학살 현장 확인

입력
2023.03.2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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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유해 발굴
대부분 성인 남성 뼈만 확인... 추가 발굴 필요

충남 아산 성재산 옛 방공호에서 발굴된 6·25 전쟁 당시 부역혐의 희생자의 유골. 아산=이준호 기자

충남 아산 성재산 옛 방공호에서 발굴된 6·25 전쟁 당시 부역혐의 희생자의 유골. 아산=이준호 기자

“DNA 검사로 엄마 뼈가 확인만 되면 끌어안고 '엄마'라고 불러보고 싶습니다.”

28일 오전 6·25전쟁 당시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이 벌어졌던 충남 아산시 배방읍 성재산 방공호 주변.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이날 공개한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유해발굴 현장에 함께한 희생자 유족인 맹억호(73)씨는 유골이 모습을 드러내자 착잡한 심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성재산에서는 6·25전쟁 초기인 1950년 10월부터 이듬해 1월 사이 북한군에 부역한 혐의로 희생된 아산 주민들이 집단으로 매장된 곳이다. 진실화해위는 6·25전쟁 당시 부역혐의 희생사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첫 유해 발굴이 이뤄진 성재산에서 지난 7일 개토제를 지내고 이날 1차 발굴 작업을 진행했다.

부역혐의 희생자들의 유골이 무더기로 쌓여 있는 모습. 아산=이준호 기자

부역혐의 희생자들의 유골이 무더기로 쌓여 있는 모습. 아산=이준호 기자

1차 발굴에서 최소 40여 명으로 추정되는 유해(유골)와 유품이 발굴됐다. 폭 3m, 길이 14m의 방공호에 포개진 채 발굴된 유골들은 무릎이 구부러진 앉은 자세였다. 고통 때문인 듯 입은 벌어진 모습의 유골이 많았고, 녹슨 탄피가 관통한 머리뼈와 군용 전화선인 ‘삐삐선’으로 추정되는 전선이 감긴 손목뼈도 확인됐다. 고무신과 구두 밑창, 사기그릇 파편, 단추, 담배 파이프 등 유품도 수백 점에 달했다. 유골은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남성으로 인근 지역에서 끌려온 민간인으로 추정된다. 1950년 10월 온양경찰서 소속 경찰과 치안대는 이듬해 1·4후퇴 전까지 북한군 부역혐의 관련자들을 트럭에 싣고 와 처형했다. 학살 당시 온양경찰서 수사계에서 근무했던 임모 씨는 1기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매일 밤 트럭으로 40∼50명의 부역자를 처형장소인 성재산 방공호로 실어 가 처형했다”고 진술했다. 발굴을 맡은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는 "희생자들 단추에 대학 글자가 있는 등 유골 주인은 고학력으로 추정된다"며 "유골은 40여 명인데 탄피는 상당히 많다"고 말했다.

충남 아산 성재산에서 유골 발굴단원들이 뼛조각을 분류하고 있다. 아산=이준호 기자

충남 아산 성재산에서 유골 발굴단원들이 뼛조각을 분류하고 있다. 아산=이준호 기자

당시 어머니를 잃었다는 맹씨는 “유골 무더기 가운데 어머니 뼛조각이 섞여 있을 것 같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학살 당시 가족 11명 가운데 만 두 살이 안 된 자신과 당시 열네 살이던 삼촌만 살아남았다”며 “발굴을 마무리한 뒤 정부가 공권력에 의한 국민 학살을 사과하고 이곳을 추모와 교육 현장으로 활용해 희생자와 유족의 한을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는 다음 달 중순까지 성재산에서 유골 수습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어 인근 염치읍 백암리 2곳에서도 유해 발굴을 실시한다. 이훈기 진실화해위 대외협력담당관은 “방공호 길이가 1㎞ 정도였다는데 개발 등으로 많이 훼손돼 이번 발굴은 남은 방공호의 4분의 1 정도에서 이뤄진 것”이라며 “성인 남성 유골만 확인돼 추가 발굴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아산= 글ㆍ사진 이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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