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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자는 '초중고 생활기록부' 다 내세요"... 학폭 논란이 바꾼 K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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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자는 '초중고 생활기록부' 다 내세요"... 학폭 논란이 바꾼 K콘텐츠

입력
2023.03.30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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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출연자 말 의존하다 학폭 역풍→방송사, 생활기록부 받고 출연시켜
②국내 방송 무기한 연기→일본, 대만 등 해외서만 공개
②학폭 논란에 소송→연예기획사, 리스크매니지먼트팀 꾸려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불타는 트롯맨' 결승에 올랐다고 학교폭력 등 여러 폭행 의혹을 받고 하차한 황영웅. 서울교통공사는 최근 황영웅 팬들이 추진한 역내 광고를 불허했다. 지하철 광고 심의를 총괄하는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 관계자는 29일 "학폭이나 마약 등 사회적 논란이 있는 연예인이라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MBN 영상 캡처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불타는 트롯맨' 결승에 올랐다고 학교폭력 등 여러 폭행 의혹을 받고 하차한 황영웅. 서울교통공사는 최근 황영웅 팬들이 추진한 역내 광고를 불허했다. 지하철 광고 심의를 총괄하는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 관계자는 29일 "학폭이나 마약 등 사회적 논란이 있는 연예인이라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MBN 영상 캡처

이제 비연예인들은 학창 시절 생활기록부를 방송사에 내야 TV에 출연할 수 있다. 학교폭력 의혹으로 구설에 오른 연예인이 출연한 드라마는 줄줄이 해외에서만 공개되기도 한다. 기획사는 리스크(위기) 매니지먼트팀까지 따로 만들어 소속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집중 관리한다. 잇따른 학폭 논란이 바꾼 K콘텐츠 시장 풍경이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하트시그널4' 제작진은 비연예인 출연자들의 생활기록부를 받고 촬영을 진행했다. 채널A 영상 캡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하트시그널4' 제작진은 비연예인 출연자들의 생활기록부를 받고 촬영을 진행했다. 채널A 영상 캡처


"학교 찾아가 확인도"... K콘텐츠 시장에 무슨 일이


5월 방송 예정인 인기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하트시그널4'의 비연예인 출연자들은 제작진에게 초· 중·고등학교 12년 치 생활기록부를 제출한 뒤 촬영을 시작했다. 앞선 시즌에서 시청자들이 일부 출연자를 학폭 가해자로 연달아 지목하면서 곤욕을 치른 제작진이 새 시즌에서 서류 검증 절차를 추가했다. 출연자의 말에만 의존해 윤리 문제를 파악했던 리얼리티 프로그램 제작 풍토를 고려하면 특단의 조처다. '하트시그널4' 제작을 총괄하는 이진민 채널A 제작본부장은 "(생활기록부 제출을) 동의한 분만 출연이 가능하다"며 "생활기록부를 보고 특이사항이 있는지 없는지를 체크하고 이 과정에서 (출연자의) 자기 검열도 이뤄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엔터테인먼트에서 윤리적 소비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자 미성년자를 K팝 스타로 육성하는 기획사 관계자는 아예 학교까지 찾아가기도 한다. 다수의 한류 아이돌그룹을 배출한 한 K팝 기획사 관계자는 "데뷔 조에 든 연습생의 경우 그 연습생 부모 동의를 받아 학교로 찾아간다"며 "담임 선생님을 만난 뒤 학교생활 등을 묻고 문제가 없을 때 계약 수순을 밟는다"고 말했다. 그룹 르세라핌의 김가람과 (여자)아이들 멤버였던 수진 등이 학폭 의혹으로 최근 줄줄이 팀을 탈퇴한 뒤 연예계에 불고 있는 나비효과다.


드라마 '디어엠'은 출연자인 박혜수(오른쪽 두 번째)가 학교폭력 의혹을 받아 국내 방송이 무기한 연기됐다. 그 과정에서 이 드라마는 지난해 일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먼저 공개됐다. U NEXT 사회관계망서비스 캡처

드라마 '디어엠'은 출연자인 박혜수(오른쪽 두 번째)가 학교폭력 의혹을 받아 국내 방송이 무기한 연기됐다. 그 과정에서 이 드라마는 지난해 일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먼저 공개됐다. U NEXT 사회관계망서비스 캡처


마약, 성범죄에... 학폭도 계약상 귀책사유로 추가


끊이지 않는 학폭 논란은 연예인과 드라마, 영화 제작사가 맺는 계약서까지 바꿔놨다. 출연자 귀책사유엔 학폭이 추가됐다. 반복되는 학폭 파문으로 작품 공개뿐 아니라 제작에 차질을 빚어 수백 명의 스태프들이 피해를 본 사례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20, 30대 배우가 소속된 한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는 "예전엔 음주운전이나 마약 그리고 성범죄가 계약 위반 사유였다"며 "최근 1년 새 받은 작품 출연 계약서 중엔 배우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항목에 학폭이 포함된 것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드라마 '달이 뜨는 강'(2021)을 만든 제작사 빅토리콘텐츠는 학폭 가해 일부를 인정하고 드라마에서 하차한 배우 지수의 전 소속사 키이스트를 상대로 3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학폭 문제로 회사 간 대형 소송까지 벌어지다 보니 일부 대형 연예기획사는 아예 리크스 매니지먼트팀까지 꾸렸다. 이 기획사 관계자는 "소속 연예인의 학교생활 관리나 옛 학창 시절 점검뿐 아니라 부모의 빚 등 연예 활동에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사안을 중점적으로 관리하는 게 이 팀의 역할"이라며 "연예인 부모님을 따로 불러 주의 사항 등을 따로 교육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유통되고 있는 드라마 '날아올라라 나비'. 출연 배우인 심은우가 학교폭력 의혹을 받은 뒤 이 드라마는 국내 방송이 무기한 연기됐다. 애초 이 드라마를 편성한 JTBC 관계자는 "올해 드라마 방송 라인업에 이 드라마는 없다"고 말했다. 마이비디오 홈페이지 캡처

대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유통되고 있는 드라마 '날아올라라 나비'. 출연 배우인 심은우가 학교폭력 의혹을 받은 뒤 이 드라마는 국내 방송이 무기한 연기됐다. 애초 이 드라마를 편성한 JTBC 관계자는 "올해 드라마 방송 라인업에 이 드라마는 없다"고 말했다. 마이비디오 홈페이지 캡처


학폭 논란에 무너지는 현장? "2차 가해 조심해야"

학폭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이 출연하는 드라마와 영화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K콘텐츠 시장엔 '해외 전용 작품'까지 등장했다. 학폭 의혹을 받는 박혜수와 심은우가 각각 출연한 드라마 '디어엠'과 '날아올라라 나비'는 한국에서 방송이 무기한 연기된 뒤 일본과 대만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지난해 공개된 것으로 파악됐다. 공개하지 못하면 제작비를 회수할 수 없기 때문에 해외만 유통하는 고육지책을 택한 것이다. 드라마 제작사의 한 관계자는 "한국에서 흥행해야 해외에서 제값을 받고 팔 수 있는데 해외에만 팔아선 제작비의 반도 거둬들이기 어렵다"고 속을 태웠다.

학폭 논란의 여파로 콘텐츠 제작 현장이 급격히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일각에서 "학폭 의혹과 작품은 별개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사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는 피해자에 2차 가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안을 엄중히 다뤄야 한다는 지적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유명 연예인을 향해 학폭 미투가 이뤄지는 건 잘나가는 누군가를 추락시키고 싶어서라기보다 피해자 입장에선 어려선 잘 몰랐던 혹은 그동안 억눌러왔던 고통을 '내가 피해자'라고 말하게 됨으로써 시작하는 치유의 과정"이라며 "K콘텐츠 산업 종사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학폭 피해자들과 대화해 피해자의 상처가 더 커지지 않는 방향에서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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