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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집주인이라 믿었는데..." LH 매입임대 하자보수 하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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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집주인이라 믿었는데..." LH 매입임대 하자보수 하세월

입력
2023.03.30 04: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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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이내 처리' 규정 있지만
실제 처리 두 달 걸린 사례도
2020년 권익위도 관리 지적

LH 매입임대 주택에 살고 있는 박모씨가 LH와 주고받은 문자 내용. 박씨 제공

LH 매입임대 주택에 살고 있는 박모씨가 LH와 주고받은 문자 내용. 박씨 제공


"전세사기 당할까 봐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집주인인 매입임대로 들어왔는데 너무 후회돼요. 국가가 집주인이라 믿었는데, 오히려 국가가 집주인이라 관리가 안 되는 것 같아요."

매입임대에 살고 있는 직장인 박모(26)씨

박씨는 전세사기 문제가 한창 떠오르던 지난해 10월 LH의 전세형 매입임대(서울 마포구)를 신청했다. 16가구 공급에 1,161건의 신청이 몰릴 만큼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당첨됐다. LH가 집주인이라 보증금을 떼일 걱정은 없다며 기뻐했던 것도 잠시, 입주 날부터 박씨는 화장실 악취 등 각종 하자에 시달렸다. 특히 보일러를 틀어도 안방은 온기가 돌지 않았다. 이틀 뒤 LH에 하자보수를 요청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더니 두 달이 지난 이달 중순이 돼서야 업체를 보냈다.

"난방비는 집 전체(56㎡)에 해당하는 금액을 내고도 작은방이 좁아 겨우내 안방에서 추위에 떨며 잤어요. 변기는 기다리다 지쳐 사비를 들여 고쳤고요." 박씨가 한숨을 쉬었다.

'15일 안에 보수' 규정, 현장에선...

방치된 중문 모습. 정모씨 제공

방치된 중문 모습. 정모씨 제공

LH가 운영하는 매입임대주택 세입자들이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하자가 발생해 보수를 요청해도 제대로 된 조치가 제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LH는 원칙상 하자보수를 요청한 날부터 15일 이내에 보수하거나 보수계획을 통보해야 한다. 공동주택관리법상 하자보증 기간 이내 발생한 하자는 건설사, 건물주 등 매도자가 처리한다. 유지보수는 권역별 유지보수업체를 선정해 불편사항을 처리한다. 사안이 경미할 경우 관리사무소에서 처리한다. 15일이 지나면 LH가 보수업체에 공사 시행을 촉구하고, 30일 이상 초과 시 재차 독촉 후 품질미흡통지서를 발부한다. 불성실한 업체에 대해서는 업무수행 평가에 불이익을 줘 재계약을 제한한다는 게 LH의 설명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런 규칙이 적용되지 않은 채 하자가 방치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청년매입임대로 들어온 A씨는 며칠 뒤 새벽 주방 가스레인지 환풍구에서 물이 왈칵 떨어지는 소리에 잠을 깼다. 다음 날 관리사무소에서 사진을 찍어 갔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올해 3월에야 받은 관리사무소의 통보는 이렇다. "계약된 업체가 수리하기엔 너무 오래 걸릴 듯해 다른 업체가 수리해 줄 수밖에 없다. 단, 접수가 작년 거라 취소 후 다시 접수해야 한다." A씨는 당황스러웠지만, 하자 접수를 다시 할 수밖에 없었다.

경기 용인시의 다가구 매입임대에 살고 있는 정모(36)씨는 지난 겨울 현관 앞 중문이 그대로 방치된 채 지냈다. 지난해 12월 중순 입주 때부터 빠져 있던 중문을 빨리 설치해 달라고 관리사무소와 LH에 전화를 수십 통 했지만, '부품을 못 구했다', '업체를 확인 중이다'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올 3월 말 정씨는 결국 "중문을 철거해 달라"고 요청했고 그제서야 업체가 나와 문 크기를 측정하고 돌아갔다. 정씨는 "이 정도로 하자보수가 늦어질 줄은 예상치 못했다"며 "나라에서 관리하니 더 잘해주겠지 믿었는데 오산이었다"고 말했다.

심지어 다가구 주택은 규정 사각지대에 있다. 하자보수 공사는 공동주택관리법에 근거해 이뤄지지만, 빌라 같은 다가구 주택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공동주택 규정을 준용해 15일 내로 처리하도록 노력한다는 게 LH의 설명이다.

박씨가 LH와 주고받은 문자 내용 및 LH의 하자, 유지 보수 규칙. 그래픽=박구원 기자

박씨가 LH와 주고받은 문자 내용 및 LH의 하자, 유지 보수 규칙. 그래픽=박구원 기자


권익위도 2020년 "세부기준 마련하라" 권고

이런 지적은 처음이 아니다. 2020년 국민권익위원회는 "LH 매입임대 천장 누수 등 하자보수가 13개월가량 밀리는 등 주택 하자보수에 대한 책임 범위와 처리 기간이 명확하지 않아 보수가 지연되는 사례가 있었다"며 세부 관리기준을 마련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관리가 소홀한 원인에 대해 LH 관계자는 "관리 호수가 증가하고 있는 데다 주택이 노후화하면서 입주 고객 만족도를 높이기에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답했다. 실제 LH가 관리하는 매입임대 관리 호수는 2018년 9만4,305가구에서 지난해 16만2,469가구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LH 관계자는 "지난해 평균 하자보수 기간은 12.3일로 2021년 매입임대주택 관리사무소를 29개에서 54개로 늘리고 관리 인원도 572명에서 725명으로 늘렸다"면서 "입주 고객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서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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