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집단 실종을 막으려면 밀원수(꿀벌이 꿀을 채취할 수 있는 나무)를 15만 헥타르(ha)가량 심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는 축구장 42만8,000개 규모다.
18일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안동대 식물의학과 연구진과 함께 작성한 '벌의 위기와 보호 정책 제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는 최근 국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꿀벌 실종, 즉 '꿀벌 군집 붕괴현상(CCD)'의 원인과 해법을 진단하기 위해 수행됐다. CCD는 2006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처음 발견된 현상으로, 벌이 집단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현상을 뜻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변화, 밀원수 감소, 살충제, 기생충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국내에서는 2021년 겨울 78억 마리 꿀벌이 사라진 데 이어, 지난해 9~11월엔 100억 마리, 올해 초엔 약 140억 마리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보고서는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 변화와 밀원수 감소에 따른 꿀벌 면역력 약화에 주목했다. 이상 고온과 한파가 번갈아 나타나면서 벌의 겨울잠 패턴이 깨지고 봄꽃 개화시기가 빨라진 점이 지적됐다. 이 경우 벌이 핵심 영양분인 꿀과 꽃가루를 채취하지 못해 면역력이 약해질 수 있다. 설탕물과 달리, 꿀이나 꽃가루에는 아르기닌·아이소류신·류신 등 벌에 필요한 아미노산이 풍부하다.
최근 봄꽃의 개화 시기는 지난 60년(1950~2010년)보다 3~9일 빨라졌다. 반면 꿀벌이 월동을 준비하는 9월부터 2월까지의 일 평균 기온은 변동폭이 커졌다. 2021년 10월은 초순까지 기온이 비정상적으로 높았다가 중순에 갑자기 10도 이상 급락했다. 같은 해 12월에도 24일까지는 평년보다 높은 이상 고온이 이어지다가 25일 갑자기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급격히 떨어졌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초 온난했던 평균 기온과 갑자기 찾아온 한파도 꿀벌 생존에 영향을 미쳤다.
그린피스는 "최근 월동이 끝난 벌통 안에서 여왕벌이 겨울에 알을 낳은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보통 여왕벌은 봄에 산란을 시작하는데, 겨울철 온도가 높아져 봄으로 착각해 알을 낳았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CCD에 대한 직접적인 해법으로 밀원수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근본적 문제이지만 당장의 해결책으로 우선 꿀벌의 먹거리를 늘리자는 취지다. 게다가 한국의 꿀벌 봉군 밀도는 전 세계 1위 수준으로, 국토 1㎢당 26.7개가 있다. 이는 미국보다 80배가량 높은 것인데, 그만큼 꿀벌들이 치열하게 먹이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CCD를 해결하기 위해 밀원을 30만 ha 확보해야 한다고 추정했다. 밀원수 1ha에서는 연 300㎏의 꿀이 생산되는데, 국내 꿀벌 봉군수 250만여 개가 소비하는 꿀의 절반(7만5,000톤)을 밀원에서 채취한다는 전제다. 그린피스 관계자는 "기후변화와 날씨 변동성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밀원수의 종류도 다양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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