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이 뒤집힐 정도로 비바람이 거센 날 대한노인회 은평지회를 찾아갔다. 김호일 대한노인회 회장이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에게 '사진 따귀'를 때린 사건을 어떻게든 가공·처리해서 나로부터 떼어내야 했다. 계속 분노와 모멸감, 불쾌감에 휘둘릴 수는 없었다. 도대체 왜 대한노인회가 한국 사회의 '모든' 노년을 대표하는지? 나는 그에게 나를 대리해서 김은경 위원장에게 폭력을 행사하라고 부탁한 적이 없다. 내가 저런 노인이라고? 내가 저걸 원했다고? 그럴 리가!
그래서 나는 현장에 가보기로 했다. 중앙이 아닌 지역, 표가 아니라 살아온 인생이 중요한 곳 말이다. 은평지회는 23년 전 서대문지회에서 독립해 나왔고, 실무를 책임지는 김경희 사무국장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내 앞에 은평지회의 역사가 앉아있다!
"은평지회는 어떤 일을 하나요?" "경로당을 지킵니다." "경로당을 지킨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경로당에 오시는 어르신들에게 제대로 된 점심을 드리는 겁니다." "은평구엔 경로당이 모두 몇 개인가요?" "161개입니다."
23년간 이 은평지회에서 161개 경로당 어르신들의 '밥' 챙기는 일에 전념했던 그는 자존심과 자긍심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눈을 감으면 각 경로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며 입구며 실내며, 거기 앉아 계시는 어르신들이며 다 또렷이 떠오릅니다."
그에게 은평구는 161개의 경로당이 있는 지역이고, 그의 머릿속에는 이 161개 경로당의 상세 지도가 있다. 은평구는 선주민 비율이 매우 높은 지역이고, 이 선주민 중에는 소위 산동네에 사는 빈곤한 이들도 꽤 많(았)다. 그래서 지금도 은평구 경로당의 핵심 이슈는 '밥'이다. 초고령화 시대 경로당의 낙후성을 벗어나고자 다양한 세대의 교류를 지향하는 개방형 경로당과 특성화 프로그램 등 혁신안이 제시되곤 한다. 현 은평지회장이 재선에 성공했을 때의 공약도 그랬다. 그러나 현장을 지키는 김경희 사무국장은 점심 식사가 어르신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밥이 먼저고 프로그램은 다음이다. "어르신 중에는 혼자 살지 않아도, 그리고 꼭 빈곤하지 않아도 자식들 눈치 보여서 아침을 거르고 오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점심 식사는 11시~11시 반 사이에 시작하죠."
대한노인회는 1969년 전국노인정 회장이 중심이 되어 만든 단체다. 노인정, 즉 경로당이 대한노인회의 근간이고, 이 사실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표를 앞세워 세를 잡으려는 중앙회의 누가 과연 이 사실을 몸의 감각으로 새기고 있을까. 더 이상 시장의 주력 멤버가 아닌 노년들에게, 국가나 시민사회 대상으로 협상력을 발휘하는 노인회는 의미심장하다. 읍·면·동 분회와 해외지부까지 합쳐 6만8,000여 경로당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전국조직을 자랑하지 않는가. 그러나 세대 간 대화가 아니라 '라떼는' 방송을 일삼고, '더 나은 논쟁'이 아니라 폭력을 선호한다면 그저 부정적으로 의미심장한 조직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이 거대한 조직이 얼마나 피라미드식으로 성별화되어 있는지 잊지 말자. 중앙회나 연합회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지회의 회장은 남자이고(중구지회만 예외), 실무를 책임지는 건 여자다. 전체 회원 중에는 여성이 더 많다. 경로당에 등록해 다니는 사람이 노인회의 회원이기 때문이다. 돌봄을 주고받으며 노인회의 생명을 지키는 건 여성이고, 그 몸체 위에서 권력 게임을 하는 건 남성인 셈이다. 이런 성별화된 조직형태로는 초고령사회 노년 인권 지키기 어렵다는 거, 왜 깨닫지 못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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