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안보 이유로 "불법난민 떠나라"
서류미비자 170만 명, 1일부터 강제추방
아프간 출신 대부분… "여성에 위험 심각"
이슬람 수니파 과격 무장 조직인 탈레반을 피해 목숨 걸고 파키스탄으로 탈출한 아프가니스탄 난민 170만 명이 임시 터전마저 잃을 위기에 처했다. 파키스탄 정부가 '자발적으로 떠나지 않으면 이달 중 강제 추방하겠다'는 강경한 방침을 밝힌 탓이다. 아프간 난민들로선 생명의 위협이 느껴지는 사지로 내몰린 셈이 됐다.
국제사회는 인도주의적 재앙을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무력 충돌이라는 '두 개의 전쟁'에 전 세계가 신경을 쏟는 사이, 그간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던 아프간 난민 문제가 또 하나의 비극으로 현실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파키스탄, 대대적 난민 단속 조치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아랍권 언론 알자지라는 그동안 파키스탄에 불법 체류를 해 온 난민과 이주민 10만 명이 아프간으로 돌아갔다고 보도했다. 살기 위해 도망쳤던 탈레반 치하 아프간으로 어쩔 수 없이 '유턴'을 한 것이다. 이 중 78%가 "파키스탄에서 체포될까 봐 두려워서 귀국했다"고 답했다고 유엔난민기구(UNHCR)는 밝혔다. 파키스탄 정부가 불법 이주민에게 제시한 출국 기한은 10월 31일까지였다.
이번처럼 파키스탄에서 대대적 난민 단속이 이뤄진 건 처음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파키스탄에는 400만 명이 넘는 난민과 이주민이 산다. 이들 가운데 추방 대상은 170만 명이다. 대다수가 1980년대 옛 소련의 아프간 침공 때부터 최근까지 파키스탄으로 넘어온 아프간인들이다. 특히 2021년 8월 미군의 아프간 철수와 함께 탈레반 정권이 들어선 뒤 이주한 아프간인도 60만~80만 명에 달한다.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인근 도시 라왈핀디에서 남편 없이 두 아이를 키우는 아딜라 악타르(47)도 그런 경우다. 악타르는 알자지라 인터뷰에서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교사로 일하다 탈레반이 들어온 후 안전이 걱정돼 18개월 전 파키스탄으로 넘어왔다"며 "(아프간으로 돌아가) 아이들 생명을 다시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탈레반 정권은 여성의 교육과 경제 활동을 금지하고 있어, '일하는 여성'은 생존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여학생을 노린 '독극물 테러'까지 벌어질 정도로 여성 인권은 유린되고 있는 게 아프간의 현실이다.
이 때문에 UNHCR와 국제이주기구(IOM)는 "강제로 떠나야 하는 여성과 소녀들에게 심각한 위험을 초래한다"며 파키스탄 정부 조치를 비판하고 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도 "법적 신분이 불안한 망명 신청자들을 추방하기 위해 위협과 학대, 구금을 일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아프간 난민 겨냥… "탈레반 폭정에 우려"
파키스탄의 '난민 추방' 방침은 최근 아프간과 국경을 접한 파키스탄 남서부 발루치스탄주(州)와 카이베르파크툰크와주의 이슬람 사원 2곳에서 자살폭탄 테러로 최소 57명이 숨진 가운데 나왔다. 사르프라즈 부그티 파키스탄 과도정부 내무장관은 "올해 1월부터 발생한 24건의 자폭 공격 중 14건이 아프간인에 의해 자행됐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아프간 난민의 파키스탄 정착을 막기 위한 조치임을 에둘러 시인한 것이다.
아프간 난민부는 귀국자들을 임시 캠프에 수용할 계획이다. 문제는 아프간 경제 상황이다. 탈레반이 정권을 잡은 후 지난 6월까지 아프간의 실업률은 2배 이상 뛰었다. 유엔은 아프간 인구 3분의 2가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상태라고 보고 있다.
아프간 난민에게 법적 지원을 제공하는 아사드 칸 변호사는 "난민 강제 추방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파키스탄 헌법과 국제법을 어기는 것"이라며 재고를 촉구했다. 그러면서 "특히 안보가 여전히 불안한 데다 경제적 기회, 의료·교육 등 필수 서비스 접근이 제한된 아프간으로 돌아가면 그들의 삶은 심각하게 파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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