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포츠의 추락, J스포츠의 비상]
<2> 외길 인생과 이도류 인생
오전엔 직장 생활 오후엔 야구 선수로
학창 시절 부카츠 활동으로 야구 지속
사회인 야구팀 344개 달해 '대표팀 주축'
프로 대신 안정적인 회사원 삶 선택도
편집자주
한국 스포츠, 어떻게 기억하나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크게 도약한 우리 스포츠는 국민들에게 힘과 위로를 줬습니다. 하지만 저력의 K스포츠가 위기에 섰습니다. 프로 리그가 있는 종목조차 선수가 없어 존망을 걱정합니다. 반면, 라이벌 일본은 호성적을 거두며 멀찍이 달아났습니다. 희비가 엇갈린 양국 스포츠 현실을 취재해 재도약의 해법을 찾아봤습니다.
프로야구 선수들로 구성된 우리 대표팀과 달리 지난달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붙었던 일본팀 선수들은 대부분 회사원이다. 기업의 사회인 야구팀 소속으로 보통 직장인처럼 월급을 받으며 생활한다. 하루 중 반나절 정도는 행정·사무나 영업 등의 업무를 하고, 오후에만 훈련하는 선수도 있다. 운동 성적이 좋으면 연말에 보너스 정도를 더 받는다. 직장인과 야구 선수를 병행하는 '이도류'(二刀流) 생활을 하는 셈이다. 두터운 선수층을 자랑하는 일본 야구의 저력이 여기에서 나온다.
사회인 야구 선수 중에는 대학 때까지 운동을 했지만 프로 지명을 못 받은 이들이 많다. 한국이었다면 선수 생활을 접어야 할 상황이지만, 일본은 사회인 팀이라는 선택지가 있다. 일본야구연맹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사회인 야구 가맹팀은 344개에 달하며, 이 중에는 과거 한국 실업야구팀과 유사한 회사팀도 95개나 된다.
프로 수준에 근접했던 선수들이기에 실력도 좋다. 건축회사 카나플렉스 소속으로 2016~2019년 일본 사회인 야구에서 뛰었던 재일동포 3세 안권수가 대표적이다. 롯데 자이언츠 소속인 안권수는 “사회인 야구 선수들 실력은 일본프로야구(NPB) 1.5군급 수준”이라고 전했다. 장타자는 없지만 좋은 투수는 넘친다는 설명이다.
사회인 야구 선수들은 보통 둘 중 한 길을 선택한다. ①정규직으로 입사해 하루 중 절반은 회사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 야구팀 활동을 하거나 ②계약직으로 들어가 야구에만 몰두하다가 나이가 들면 정규직 직원으로 신분 전환하는 것이다. 일본 스포츠 선수들은 학생 때 운동과 학업을 병행했기에, 회사 생활에 적응하는 데 문제가 없다. 예컨대 안권수는 명문 와세다 실업학교와 와세다 대학을 나왔다. 그는 "중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한 덕에 카나플렉스에서 단순 노무 대신 컴퓨터 앞에서 사무 업무를 했다"고 말했다. 일본 고교 야구 '꿈의 무대'인 고시엔 대회(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의 2007년 우승팀(사가키타 고교) 에이스였던 구보 다카히로(34·사가현 가시마고 보건체육교사 겸 야구부 감독)는 지난달 13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대학 졸업 뒤 선술집(이자카야) 업체의 사회인 야구팀에서 선수로 뛰었다"면서 "밤에는 술집에서 서빙을 하고 낮에는 훈련했다"고 떠올렸다.
사회인 팀에서 프로 지명을 다시 노리는 선수도 있다. 지난 5일 막을 내린 NPB 일본시리즈 최우수선수(MVP) 지카모토 고지(29·한신 타이거즈 외야수)는 대학 졸업 후인 2017년부터 2년간 오카사 가스라는 사회인 야구팀에서 뛰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타선을 5.2이닝 동안 1실점으로 묶은 우완 투수 가요 슈이치로(28)도 도요타자동차 생산관리부 직원이다.
프로에 갈 실력이 되는데 안정적 삶을 위해 사회인 팀에 들어오는 사례도 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일본 야구 대표였던 가네코 도시후시(31·도시바)는 "올해 NPB 신인 드래프트에서 뽑힐 만한 선수가 대표팀에 있었는데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어 직장팀을 택했다"고 전했다.
야구뿐 아니라 배구, 농구, 육상 등 대부분 종목에도 사회인 팀이 있다. 올림픽 육상 남자 계주 400m 은메달리스트인 이즈카 쇼타(32)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내가 속한 (스포츠웨어 기업인) 미즈노 팀은 선수가 들어오면 3~5년간 기록을 지켜본다"면서 "성적이 좋아질 것 같지 않으면 미즈노 직원으로 회사 생활을 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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