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포츠의 추락, J스포츠의 비상]
<4> 일본 스포츠 '퀀텀점프' 비결
국제대회서 일본에 밀려… 격차 계속 커져
세계 흐름 못 읽고 답답한 경기 운영 남발
근본 문제는 저변 "손흥민 나온 게 기적"
"한국은 울타리 안에서만 축제하고 있어"
편집자주
한국 스포츠, 어떻게 기억하나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크게 도약한 우리 스포츠는 국민들에게 힘과 위로를 줬습니다. 하지만 저력의 K스포츠가 위기에 섰습니다. 프로 리그가 있는 종목조차 선수가 없어 존망을 걱정합니다. 반면, 라이벌 일본은 호성적을 거두며 멀찍이 달아났습니다. 희비가 엇갈린 양국 스포츠 현실을 취재해 재도약의 해법을 찾아봤습니다.
한일전은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된다’고 하지만, 최근 한국 스포츠는 일본에 현격히 밀리고 있다. 하계올림픽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부터 추월당했고, 하계아시안게임도 줄곧 지켰던 2위 자리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부터 내줬다.
4대 프로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축구는 A대표팀이 2021년과 2022년 두 차례 대결에서 모두 0-3으로 졌다. 17세 이하, 23세 이하 연령별 대표팀도 열세다. 지난달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성사된 한일전 결승에서 2-1 승리로 금메달을 획득했지만 한국은 24세 이하 선수와 이강인(파리생제르맹) 등 와일드카드(연령 제한 초과)를 활용해 최정예로 꾸린 반면 일본은 2024 파리올림픽을 대비해 22세 이하로만 구성했다. 단기 성과에 목을 매는 한국과 장기 계획을 갖고 움직이는 일본의 차이였다.
축구는 그나마 월드컵에서 꾸준히 성과를 내며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야구와 농구, 배구는 체면이 말이 아니다. 야구는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일본에 4-13으로 완패하면서 2회 연속 1라운드 조기 탈락의 수모를 당했다. 남자농구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조별리그에서 2진급 선수들로 구성된 일본에 패했고, 배구는 남녀 모두 노메달로 마감했다.
주요 종목의 부진 이유를 두고는 세계적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답답한 경기 운영과 장기 로드맵 없는 대표팀의 땜질 운영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선진 흐름을 빠르게 파악하고, 정부와 체육계에서 수립한 디테일한 계획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한준희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일본 축구는 넓은 저변과 치밀한 장기 프로젝트(재팬스 웨이)에 따라 선수들의 유럽행에 매우 협조적”이라며 “축구협회 차원에서 유럽에 사무실을 차렸고, 유럽 리그에서 뛰는 선수만 150명에 달해 현지에서 평가전을 치르는 데도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2020 도쿄올림픽 여자농구 은메달 획득을 도운 도모시 히가시노 일본농구협회 경기위원장은 “우리는 일상을 바꾸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매일 열리는 국내 리그(남자 B리그·여자 W리그)를 글로벌 기준에 맞추지 않으면 다른 나라를 이길 수 없다고 보고, 미국프로농구(NBA) 코치 경험 등이 있는 외국인 코칭스태프를 많이 영입했다”고 밝혔다.
도모시 위원장은 특히 “타국 선수들과 경기하면 창의성이 커지기 때문에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적극 장려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NBA 피닉스 선즈에서 뛰는 와타나베 유타를 성공 사례로 꼽으면서 “국내에 남았다면 연봉이나 지원을 더 많이 받았겠지만 경쟁력을 키우고 개인적인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 농구와 배구는 선진 리그에서 뛰는 해외파가 극히 드물다. 프로배구단을 운영하는 최윤 OK금융그룹 회장은 “20세기에는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을 썼는데, 21세기는 ‘울타리 안의 양’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 같다”며 “우물 안에선 인터넷도 정보도 보이지 않지만 울타리 안에선 세계가 다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국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축제를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목표를 마련하는 게 필요하지만, 스포츠 저변 확대 없이는 극적인 변화가 없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프로축구단인 강원FC 사장을 지냈던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인구 감소로 운동할 아이들이 줄어들고 있다”며 “축구는 인기가 있다 보니 그나마 유지하고 있지만 다른 종목은 상황이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엘리트와 학원 스포츠가 분리돼 있지만, 일본은 예전에 그 벽이 허물어졌다. 조기 축구에 등록된 여성들까지 포함해도 한국은 선수가 3,500명에 불과하지만, 일본은 45만 명에 달한다. 이영표 위원은 "국가대표를 100명 중에서 뽑느냐, 1만 명 중에서 뽑느냐는 큰 차이"라며 "손흥민(토트넘) 황희찬(울버햄프턴)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같은 월드스타가 나온 건 기적”이라고 말했다.
여자농구 지도자들의 생각도 같다. 위성우 아산 우리은행 감독은 “우리나라 고교팀은 19개, 일본은 3,000개가 넘는다”며 “저변 확대 없이는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완수 청주 KB 감독 역시 “스포츠 인프라가 좋아진다면 선수들이 늘어날 것”이라면서 “재료가 풍부해야 좋은 선수도 나올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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