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4분기 전기요금을 사실상 동결했다. 일반 가구와 자영업자, 중소기업(산업용 갑)이 사용하는 전기료는 그대로 두고, 대용량 전력 사용자인 산업용(을)만 킬로와트시(㎾h)당 10.6원 인상했다. 2,500만 호에 가까운 전체 고객 중 0.2%도 안 되는 4만2,000호의 요금만 올린 것이다. 원가 상승 요인을 반영하되 물가에 미치는 영향과 서민 경제 부담 등을 고려했다는 게 한전 설명이다.
그러나 이런 쥐꼬리 인상 꼼수로 200조 원도 넘은 한전 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건 자명하다. 올려야 할 요금을 제때 올리지 못한 탓에 한전은 2021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누적 적자가 47조 원이나 된다. 차입금만 눈덩이처럼 불어 하루 이자 비용도 120억 원에 가깝다. 전기료 동결은 처음엔 좋게 보여도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조삼모사다. 이 과정에서 전력 인프라의 경쟁력은 추락하고 미래 세대의 부담은 더 커진다. 전력 과소비도 초래한다.
원가의 70%에 불과한 전기요금을 정상화하기 위해선 30원 이상 올려야만 한다는 지적에도 정부가 또다시 요금을 동결한 건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정치 셈법으로 볼 수밖에 없다. 0.2%를 희생시켜 99.8%의 표심을 얻겠다는 이야기다. 정치인 출신 한전 사장이 선임될 때부터 예견됐던 우려는 현실이 됐다.
문재인 정부의 전기요금 동결을 포퓰리즘이라며 누구보다 신랄하게 비판하며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똑같은 행태를 반복하는 건 어리둥절하다. 기회가 될 때마다 '시장'과 '자유'를 외친 윤 대통령 행보와도 안 맞는다. 최근 시정연설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선거를 위한 정치가 아닌 정말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한 다짐도 무색해졌다. 그래도 적잖은 이들이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건 때론 욕을 먹더라도 국가적으로 해야 할 일은 하고 있다는 평가 때문이다. 최근엔 이마저도 흔들리고 있다. 메가서울과 공매도 금지에 이어 전기요금 동결까지, 이런 게 바로 윤 대통령도 지적한 ‘정치과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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