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기술경쟁 각축전
첫 국산 인공위성 11년 뒤 지구귀환
우주쓰레기 수거 기술 실증 의미도
붙잡고 당기고... 다양한 처리 방법들
개발 초기... 실증 기회 지원할 필요
편집자주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가는 발사체, 위성들로 지구 궤도가 포화 상태다. 한국일보는 지속가능한 우주산업을 위해 떠오르고 있는 우주쓰레기 기술을 조명하는 기획기사를 총 2회에 걸쳐 보도한다.
"목표물에 접근 중. 도킹 준비 완료."
2034년, 두 개의 위성이 나란히 지구 위를 가로지른다. 앞서 가는 위성은 2004년 이후 지구와 교신이 끊긴 '우리별 1호'. 임무와 수명을 다했지만 처리 방법이 없어 30년 동안 지구 주위를 떠돌고 있다. 그 뒤를 조금 큰 위성이 바짝 추격한다.
두 위성이 점점 가까워지더니 비행 속도가 비슷해진다. 나란히 날아가며 자전축을 서로 맞추다 보면 상대 위성이 정지한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 온다. 그때가 기회다. 큰 위성이 미세하게 달라지는 작은 위성의 방향을 정밀하게 계산한다. 계산에 오류가 나면 작은 위성과 다시 가까워질 때까지 3개월 가까이 하릴없이 궤도를 돌아야 하기에 신중하다.
계산 종료. 큰 위성 한쪽 면에 접혀 있던 로봇팔 네 개가 앞선 위성을 향해 뻗어 나간다. 그리곤 마치 사람이 손으로 달걀을 쥐듯 조심스럽게 앞선 위성을 감싼다. 이어 지구로 신호를 보낸다. '도킹 완료.' 큰 위성의 정체는, 우주물체를 포획해 지구로 가져오는 '수거 위성'이다.
우리별 1호, 우주쓰레기 신세 면할까
11년 뒤를 상상한 이 시나리오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이 준비 중인 '우리별 1호 귀환 작전'의 핵심이 될 장면이다. 내년 본격 착수되는 이 작전이 성공한다면 우리별 1호는 '우주쓰레기' 신세를 면하게 된다. 1992년 발사된, 우리나라 첫 인공위성인 만큼 회수의 의미는 작지 않다. 더불어 우주쓰레기 수거 기술을 확보한다는 의미도 크다. 미래 우주산업이 지속 가능하려면 우주쓰레기 처리가 필수라는 점에서 이번 작전에 이목이 쏠린다.
카이스트 연구진이 구상하는 수거 위성은 수명 1년, 무게 300kg 이하의 소형이다. 6~10개월 정도는 수거 위성이 발사된 고도에서 목표물이 있는 고도까지 이동하는 데 소요된다. 우리별 1호를 비롯해 수명을 다한 위성들 대다수는 초속 7km 이상으로 지구를 돌고 있다. 날아가는 총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라 그냥 가면 접근조차 어렵다. 그래서 수거 위성은 근접센서와 추진계를 장착한다. 목표물 위성에 가까워질 때 근접센서로 회전 방향과 속도를 파악한 다음, 추진계로 방향을 미세하게 조정하면서 최적의 자세를 잡고 도킹을 시도하는 것이다.
도킹에 성공하면 목표물을 붙잡아 함께 지구로 떨어진다. 대기권을 지나는 동안 마찰 때문에 발생하는 열로 두 위성은 소멸하게 된다. 작전을 지휘하는 강경인 카이스트 인공위성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큰 물체도 끌어안고 내려올 수 있게 수거 위성 자체가 하나의 로봇처럼 움직이는 기술을 개발 중"이라며 "그물을 비롯해 추가적인 포획 장치를 위성에 싣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까지가 1단계 작전이다. 2027년쯤에는 우주에서 포획한 위성이 대기권에서 타지 않도록 특수 캡슐에 담아 떨어뜨리는 기술을 시험하는 2단계 작전에 돌입한다. 5,500도에 달하는 마찰열을 견딜 수 있도록 캡슐 표면에 열차폐막을 부착하는 게 핵심이다. 강 연구원은 "현재 열차폐막에 대한 기초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연구진은 2단계까지는 목표물을 우리별 1호로 특정하지 않고 위성 포획 기술 자체를 시험하는 데 초점을 맞추다가, 마지막 3단계 작전 때 비로소 우리별 1호에 접근한다는 계획이다. 우리별 1호의 무사귀환이 성공한다면 우주공간의 특정 물체를 수거해오는 국산 기술이 처음 실증되는 것이다.
무덤까진 너무 먼 저궤도 위성들
우주개발이 가속화하면서 급증하고 있는 우주쓰레기는 미래 우주산업의 지속성을 떨어뜨리는 주범으로 꼽힌다. 발사체나 위성 등이 가동 중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우주쓰레기와 충돌이라도 한다면 치명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 세계 여러 나라가 자국 우주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우주쓰레기 처리 기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사실 고도 3만6,000㎞의 정지궤도 위성은 지금도 처리 방법이 있다. 임무를 다하면 마지막 힘을 쥐어짜 수백㎞ 위로 올라가게 하는 것이다. 인간 활동에 사용되지 않으면서, 우주물체가 안정적으로 움직여 충돌 가능성이 낮은 그 공간은 수명이 끝난 정지궤도 위성들이 모여 있어 '무덤 궤도'라고 불린다.
그런데 현재 지구를 도는 위성 9,000여 기 중 약 80%는 정지궤도보다 낮은 저궤도에 있다. 저궤도 위성을 무덤 궤도까지 올리려면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든다. 그냥 둬도 스스로 떨어지긴 하지만 수십~수백 년이 걸리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처리하는 기술이 시급히 필요하다. 최은정 한국천문연구원 우주위험연구실장은 "우리나라 아리랑 위성이 있는 500~600km 고도는 특히 밀집도가 높아 위험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봉투·돛 펴 고도 낮추며 궤도이탈 유도
카이스트의 작전이 이미 발생한 우주쓰레기를 별도의 수거 위성을 보내 가져오는 방식이라면, 아예 쓰레기가 생기지 않게 하는 방식도 있다. 국내 민간기업들이 이런 기술을 연구 중이다. 카이로스페이스는 자체 개발한 지구 관측용 큐브위성을 지난 5월 국산 발사체 누리호에 실어 우주로 보냈는데, 이 위성은 임무 종료 후 스스로 궤도에서 벗어나도록 설계됐다.
궤도 이탈을 유도하는 장치는 '수소 봉투'다. 위성 끝에 작은 박스처럼 생긴 모듈을 달고, 이 모듈에 봉투와 수소발생장치를 내장했다. 위성의 전기신호가 끊기면 수소발생장치가 이를 감지하고 알루미늄과 수산화나트륨을 반응시켜 수소를 만들어내는 원리다. 그렇게 생성된 수소가 주입되면 봉투가 길이 1m, 너비 한 뼘 정도의 기다란 막대 모양으로 펼쳐진다. 풍선에 바람을 넣으면 펴지는 것처럼 말이다. 봉투는 폴리에스테르를 여러 장 겹친 마일라 소재로 만들어 무게를 줄이고 내구성은 높였다고 카이로스페이스는 설명했다.
수소 봉투가 펴진 채로 위성이 움직이면 우주공간을 떠도는 수많은 입자와 더 많이 부딪히게 돼 저항이 커지면서 속도가 줄어든다. 느려진 위성은 고도가 차츰 낮아져 25년 내에 대기권에 재진입하면서 소멸하게 된다. 카이로스페이스는 수소 봉투를 단 큐브위성의 위치를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가 제공하는 추적 데이터를 분석하며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다.
'봉투' 기술은 저항을 높여 고도를 낮춘다는 점에서 미국과 중국이 각각 2010년과 2022년 우주에서 실증한 '돛'과 유사하다. 위성 임무가 끝나면 내장된 돛이 펼쳐져 궤도 이탈을 유도하는 것이다. 봉투나 돛은 궤도 이탈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다는 단점이 있다.
"기술 있지만 검증해 볼 기회가 없다"
이런 단점을 없애기 위해 우주로테크는 아예 궤도 이탈용 추진기를 개발 중이다. 납작한 금속판 형태로 만들어 위성 옆면에 부착하고, 우주에서 수명이 다하면 위성이 움직이는 반대 방향으로 가스를 분사하는 것이다. 그러면 바로 속도가 줄고 고도가 낮아져 떨어지게 된다. 이성문 우주로테크 대표는 "단시간에 위성의 궤도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기술"이라고 소개했다.
우주쓰레기 증가 속도에 비하면 처리 기술은 진전이 더디다. 이에 미국은 수거 위성에 양전하를, 쓰레기 위성에 음전하를 띠게 하는 기술까지 고안했다. 전자기력을 보이지 않는 '밧줄' 삼아 쓰레기를 잡아당겨 먼 우주로 치우겠다는 의도다. 유럽과 일본도 질세라 전자기 밧줄 개발에 나섰다.
미국과 중국, 유럽 일부 등 우주쓰레기 처리 기술을 실제 우주에서 구현해 본 나라는 많지 않다. 후발주자인 한국에도 시장을 주도할 기회가 아직 열려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국내에선 기술이 있어도 우주에서 실증해 볼 기회가 턱없이 부족하다. 신경우 카이로스페이스 대표는 "계약하고 싶어 하는 고객사가 없다"며 답답해했다. 이성문 대표는 "고객사들도 위성을 폐기하는 게 옳다는 걸 알지만, 비용이 늘어나는 걸 원치 않는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우주쓰레기 처리 기술이 세계적으로도 초기인 만큼 정부가 다양한 기술 개발 기회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패의 두려움 없이 개발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국내 발사체를 이용한 실증 기회도 많이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형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스페이스X가 크는 데도 미국 정부의 역할이 중요했다"며 "공공 수요를 개발하고 기업이 기술력을 키울 수 있도록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예찬 인턴 기자 moonpraise@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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