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강전에서 호주를 만난 걸 축하합니다."
지난달 31일(한국시간)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2023 아시안컵 16강전이 열린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 한국은 사우디와 전·후반 90분 1-1로 비긴 뒤 연장전을 거쳐 승부차기까지 갔다.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가슴 졸이던 그 순간, 사우디의 4번 키커마저 조현우의 선방에 막히면서 비로소 한국은 웃을 수 있었다.
기자석 옆자리에 앉았던 한 이란 기자가 웃으며 한국의 8강 진출을 축하했다. 그런데 그 뒷말에 뼈가 있었다. "이란보다는 낫지 않나"라는 것.
이곳 카타르에선 이상한 기운이 돌고 있다. 특히 중동 언론들은 아예 "한국이 의도적으로 일본을 피하기 위해 말레이시아와 비겼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경기 하루 전 열리는 공식 기자회견에서는 중동 언론들이 무례할 정도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몰아붙였다. 사우디 기자는 "일본을 피하는 데 성공했다. 말레이시아가 3번째 득점했을 때 웃었는데, 사우디는 아시안컵에서 우승을 3회 한 강팀이다. 왜 미소를 지었나?"라고 물었다.
사실 국내에서도 클린스만 감독의 미소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경기에 져도 웃고, 골을 먹어도 웃는 그저 호인처럼 보이는 클린스만 감독을 두고 "남의 일인가" "한국 축구를 무시하나" 등 의견이 분분하다. 그런데 그는 말레이시아전에서도 '웃상'을 지우지 못했다. 그 모습이 중계화면에 잡혔는데 중동 언론들도 의아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의심이 '일본을 피하기 위해서 일부러 비겼다'는 것. 아시아에서 최약체로 꼽히는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초호화 선수들을 거느린 한국이 질 수가 없다는 논리였다.
이러한 의심은 이제 음모론으로 확산된 분위기다. 클린스만 감독은 "일본을 피할 생각이 없었고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다. 조 1위로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는 게 우리의 목표였다"면서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예측했던 부분에서 실점해 웃음이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클린스만 감독의 미소는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듯하다. 중동 기자들은 클린스만의 말이 사실인지 한국 기자들에게 묻기도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한다.
심지어 바레인과 16강전을 앞뒀던 모리야스 하지메 일본 감독도 당했다. "16강에서 한국을 피하게 됐는데 어떤가"라는 질문이 나왔을 정도로 중동 언론은 '한일전 불발 미스터리'에 혈안이 돼 있다. 우승 후보로 꼽히는 한국과 일본이 16강에서 만났다면 일찍 경쟁팀 하나는 삭제됐을 거란 계산이다. 카타르에서 열리는 대회인 만큼 중동의 축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은 이해한다. 동아시아 국가가 나란히 결승에 오르는 그림이 달갑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한쪽의 탈락을 원하는 건 손님에 대한 예의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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