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벽두부터 이어진 북한의 통일노선 전환과 대남전략 변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두 갈래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점은 눈여겨볼 만한 일이다. 첫 번째는 남한과의 경쟁에서 참패하여 흡수 통일의 공포에 휩싸인 김정은 정권이 김일성‧김정일 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통일노선을 포기하고 체제 생존 전략으로 돌아섰다는 시각, 이른바 수세론이다. 두 번째는 대한민국을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한 북한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이라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남한을 압박해 유사시 무력통일까지 불사하겠다고 선언했다는 공세적 해석에 입각해서 북한의 통일노선 전환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수세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북한이 과거 김일성 시대부터 줄기차게 주장해온 연방제 통일론을 폐기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자신들이 주도하는 통일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점을 부각한다. 반면 공세론을 내세우는 측에서는 최근 북한이 내놓고 있는 호전적 대남 언사들에 주목한다. 김정은은 얼마 전 건군절(2월 8일) 연설에서도 “유사시 남한 영토의 점령과 평정을 국시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주장해온 초기 연방제 통일 방식에만 주목한다면 공식 통일노선의 포기라는 해석 자체가 틀린 말은 아니다. 김일성이 처음으로 연방제 통일 방식을 제안한 것은 1960년 해방 15주년 기념연설에서였다.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퇴진하고 백가쟁명식 통일 논의가 분출하던 시기였다. 남한보다 경제적 우위에 있었던 북한으로서는 연방제를 내세운 점진적 통일 방식만으로도 남조선 혁명을 통한 통일 완성이 가능하리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연방제가 반세기 이상의 분단사를 거치면서 국제 정세의 변화를 고려해 변모를 시도해 왔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980년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 방안, ‘1민족 1국가’를 유지하면서도 ‘2제도 2정부’를 강조했던 1991년의 연방제 등이 그것이다. 특히 소련의 멸망과 사회주의권 붕괴, 독일 통일 등을 목격한 북한이 1990년대 초 연방제 내에서 지역 자치정부의 자율성을 강조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우리 정부의 통일 방안을 흡수통일이라고 공격할 때마다 사용하는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구에게 먹히지 않는’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도 1991년 김일성 신년사에서였다.
이렇게 보면 북한의 공세적 통일 방안이 수세적 방안으로 바뀐 것은 이미 30여 년 전 냉전 종식과 함께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당시 이러한 입장 변화를 ‘느슨한 연방제’라는 이름으로 국제사회에 세일즈했지만 사회주의권 몰락이라는 현실에 맞닥뜨려 공세적 통일 방안의 지속보다는 체제 유지에 바탕을 둔 현실적 선택을 한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수세적 통일노선으로 전환한 북한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핵개발을 시작했다.
2024년 북한은 당시와는 반대로 신냉전의 도래를 연일 강조하며 ‘반제 연대’를 통해 미국 중심 세계질서에 맞서는 이념적 돌격대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등장한 통일노선 전환을 단순한 수세론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최고지도자가 여러 차례 바뀌는 동안에도 남북한 당국이 유지해왔던 ‘민족동질성에 기반한 평화적 통일’이라는 마지노선을 북한이 허물어버렸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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