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협 '노동권' 주장하며 ILO에 긴급개입 요청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은 국민 위한 정당 조치"
노동·법률 전문가들 "협약 적용 예외로 봐야"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이 ‘국제적 문제’로 번지고 있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집단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가 국제노동기구(ILO)에 '긴급개입'을 요청하면서다. 이들이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은 ILO가 금지한 강제노동 위반"이라고 주장하자, 정부는 즉각 "의료 분야는 강제노동 제외 대상”이라고 맞섰다. 14일 한국일보 취재에 응한 노동 분야 전문가들은 대체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강제노동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전날 ILO에 보낸 서한에서 “정부가 사직서를 낸 전공의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복귀를 명령한 것은 ILO의 ‘강제 또는 의무 노동 금지’ 조항에 위배된다”며 긴급개입을 요청했다. 이들은 “정부가 의대생 2,000명 증원 등을 일방적으로 발표해 대다수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는 상황”이라며 “정부는 업무개시명령 등의 공권력을 통해 전공의를 겁박하며 노동을 강요하는 행위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ILO는 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설립된 유엔 전문기구다. 한국 정부가 2021년 비준한 ILO 협약에는 ‘모든 형태의 강제노동을 금지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다만 ILO는 ‘국민 전체 또는 일부의 생존이나 안녕을 위태롭게 하는 상황이나 우려가 있는 경우’를 강제노동의 예외 요건으로 두고 있다.
정부는 “전공의 집단행동이 국민 생존과 안녕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라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은 국민의 건강과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정당한 조치”라며 “ILO 협약에서 규정한 강제노동의 적용 제외 요건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노동·법률 전문가도 대체로 '업무개시명령을 강제노동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ILO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련된 부분은 강제노동 적용의 예외로 두고 있다”며 “설사 전공의들이 ‘결사의 자유권’(단체에 가입하거나 탈퇴할 권리)을 침해받았다고 주장하더라도 역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련된 부분이라 예외가 인정된다”고 했다.
김성희 L-ESG평가연구원장(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은 “ILO의 보호를 받으려면 ‘노동자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며 “전공의는 병원에서 임금을 받기는 하지만 자신을 노동자로 규정하고 사용자에 대항해 노동자 권리를 주장하는 등의 권리와 의무를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김 원장은 “전공의를 노동자로 보기에 모순적인 상황에서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통해 이득을 취하려는 상황을 ILO가 정당하다고 볼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유보적인 의견도 나왔다.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강제노동의 여지가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지만 국민 건강권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정부의 판단이 틀렸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실질적으로 국민 건강에 얼마나 중대한 위협이 이뤄졌는지를 두고 ILO가 판단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ILO가 정부와 의료계의 원만한 해결을 촉구하는 수준에서 의견을 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