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신청자 르완다 보내 심사받게 하는
'망명의 외주화' 법안, 23일 의회 통과
인권단체 "난민 위험 몰아넣어" 반발
송환 건별 항소하는 등 법정다툼 예고
망명 신청자를 르완다로 보내 난민 심사를 받게 한다는 영국의 구상이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영국 보수당의 리시 수낵 총리가 밀어온 '르완다 법안'이 23일(현지시간) 의회를 통과하면서다. 그러나 제3국으로 난민을 밀어내는 '외주화' 정책이 인권 침해라는 비판은 여전하다.
영국 의회서 '르완다 법안' 통과
AP통신·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영국 의회는 이날 오전 난민 신청자를 르완다로 우선 송환하는 법안을 상·하원 합의로 통과시켰다. 이번 주 국왕 동의를 거쳐 공포될 것으로 보인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르완다 법안'의 골자는 보트로 영국 해협을 건너오는 망명 신청자를 아프리카 르완다로 송환해 난민 심사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심사를 통과하면 이들은 난민 지위를 얻어 영국에 체류할 수 있고, 그러지 못하면 르완다 정착 또는 안전한 제3국 망명을 신청할 수 있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망명 심사 외주화'의 대가로 영국은 르완다에 5년간 3억7,000만 파운드(약 6,291억 원)를 지불하게 된다.
이 법안은 수낵 총리가 간판 정책으로 내세운 난민 억제책이다. AP에 따르면 범죄조직 브로커가 주선한 배를 타고 영국 해협을 건너 입국한 '보트 망명' 신청자는 2022년 4만5,774명으로 2018년(299명)보다 150배 이상 폭증했다. 다만 지난해에는 정부가 단속 고삐를 죄며 보트 망명자가 2만9,437명으로 줄었다.
국제인권단체, '인권 침해' 비판
'망명의 외주화'에 인권 침해 요소가 있다는 비판은 끊이지 않는다. 본국에서 박해를 피해온 이들을 거부하는 조치일뿐더러, 르완다에서 망명 신청자 인권이 보호될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국제 인권 단체인 고문으로부터의 자유, 국제앰네스티, 리버티는 이날 "이 부끄러운 법안은 헌법과 국제법을 위반하고, 고문 생존자 등 난민을 르완다에서의 불안한 미래와 위험으로 몰아넣는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르완다 법안에 영국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르완다가 '안전한 국가'라 단정할 수 없다며 위법 판결을 내렸고, 지난 1월 유럽인권재판소(ECHR)도 국제법 위반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수낵 총리는 법안을 고쳐가며 법 제정을 강행했다. 르완다가 안전한 국가라고 명시하거나 ECHR의 제한 조치를 무시할 수 있다는 등의 조항이 추가됐다.
로이터는 수낵 총리가 르완다 법안을 통해 반이민 성향 보수층을 결집시키려 한다고 분석했다. 올해 하반기 영국 총선 실시가 유력한 가운데, 여론조사기관 일렉터럴 칼큘러스의 지난 15일 발표에 따르면 수낵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 지지율(23.4%)은 제1야당인 노동당(43.5%)을 크게 밑돈다.
반이민 정서가 커진 유럽 다른 국가들도 영국의 '망명 외주화'를 참고하고 있다. 독일과 이탈리아, 덴마크 등도 난민을 타국으로 보내는 유사한 정책을 구상 중이다. 유럽연합(EU)도 지난 10일 난민을 타국으로 이송할 수 있게 한 신(新)이민·망명 협정을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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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단체 등 '줄소송' 예고
로이터는 법이 공포되더라도 "수낵 총리는 여전히 법적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선단체와 인권단체가 송환 대상자를 대변해 법정에서 싸울 것을 다짐하고 있어서다. 르완다 법안은 송환 대상자가 송환으로 불가역적이고 심각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면 이의제기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경수비대 노동조합도 첫 송환 통보가 오면 수일 내에 '르완다 법안' 무효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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