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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제도의 '파탄주의'로의 전환

입력
2024.07.27 00:0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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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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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과거 100년 동안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경제적으로는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하였고, 정치적으로는 왕정 국가에서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하였다. 남녀평등 의식도 높아졌고, 가족관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법제도도 바뀌어 왔는데 재산상속에 있어 장자, 남자 위주 상속에서 남녀평등한 상속으로 변화했다. 남자만 종중 구성원으로 인정되었으나 대법원 판례에 의해 남녀 구별 없이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바뀌었다. 간통죄는 위헌결정으로 폐지되었고 혼인빙자간음죄도 형법에서 사라졌다. 최근에는 친족 간 발생하는 재판 범죄에 대하여 형을 면제하던 친족상도례 규정도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였다. 친족·가족·남녀 관계에 대한 우리 관념이 많이 변했기 때문이리라.

이혼 제도에서도 부부간 재산분할 비율이 갈수록 평등해지고, 유책주의에서 파탄주의적 경향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유책주의란 배우자 중 어느 일방이 동거·부양·정조 등 의무를 위반하는 행위를 한 때와 같이 이혼사유가 명백한 경우에만 재판상 이혼을 인정하는 제도이고, 파탄주의란 부부 일방의 책임 유무를 묻지 않고 혼인을 도저히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된 경우 이혼을 허용하는 제도이다. 우리나라는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며 법원은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2015년 대법원에서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할지에 대하여 갑론을박이 있었으나 결국 7 대 6으로 허용되지 말아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이혼 후 상대방에 대한 부양 책임 등 유책배우자의 상대방을 보호할 수 있는 입법적인 조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였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대폭 증가하였지만 여전히 양성평등이 실현되었다고 보기 힘든 상황에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로 인하여 그 상대방이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거나 생계유지가 곤란할 수도 있다는 것도 이유였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유책주의를 인정하고 있는 선진국은 거의 없다.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등 대부분의 국가가 다소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혼 사유로 혼인생활이 회복할 수 없는 정도로 파탄된 것만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이혼이 자신 또는 자녀에게 물질적·정신적으로 심히 가혹한 결과를 가져올 경우에는 이혼청구를 기각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 상대방 배우자의 부양의무를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심지어 우리와 상당히 유사한 법제도를 가지고 있는 일본조차도 1987년 판례 변경을 통하여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하되 적절히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부부공동생활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어 부부의 실질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경우에도 상대방이 이혼을 반대한다고 하여 허울뿐인 부부관계를 존속시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이혼이 자녀의 양육·복지를 심각하게 해치거나, 혼인기간 중 고의로 가족에 대한 부양의무를 저버리거나, 이혼을 대비하여 재산을 은닉하거나 하여 혼인·가족제도를 위태롭게 하는 경우에는 이혼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예외적인 경우 이외에는 이혼을 허용하되 그로 인한 문제점을 보완하도록 하는 것이 오늘날 변화된 가족·부부·남녀 간의 가치관에 더 맞는 것이 아닐까. 최근 언론에 보도되는 여러 이혼 사건을 보면서 깊이 고민해 보게 된다.


오용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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