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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냐, 위신이냐… ‘운명적 선택’ 앞둔 이란의 보복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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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냐, 위신이냐… ‘운명적 선택’ 앞둔 이란의 보복 딜레마

입력
2024.09.30 04:30
수정
2024.09.30 07:24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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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 암살]
'개혁 성향' 이란 정부, 손해 뻔한 전쟁 자제
또 몸 사리면 '저항의 축' 동맹 신뢰 잃을 우려
하니예 암살 참았는데 "얻은 것 없다" 불만도
우선 "복수" 예고… 안보리 긴급 회의도 요청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사망한 레바논 친이란 무장 정파 헤즈볼라의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의 얼굴을 조준경으로 겨눈 그림이 29일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 거리에 벽화로 그려져 있다. 텔아비브=로이터 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사망한 레바논 친이란 무장 정파 헤즈볼라의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의 얼굴을 조준경으로 겨눈 그림이 29일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 거리에 벽화로 그려져 있다. 텔아비브=로이터 연합뉴스

이스라엘이 레바논 친(親)이란 무장 정파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를 암살하면서 중동 내 반(反)이스라엘 진영 '저항의 축' 맹주인 이란의 대응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란이 이스라엘 주변에서 벌어지는 전쟁 또는 무력 충돌의 '플레이어'로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란이 수십 년간 대리 세력을 내세우며 치렀던 '그림자 전쟁'의 시대가 끝나고, 중동의 세력 균형 판도가 단숨에 깨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동안 이란은 참전을 꺼려 왔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저항의 축' 중심 격이던 헤즈볼라의 수장마저 이스라엘 손에 암살된 이상, 구체적 행동을 취하지 않기란 힘들어졌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지도자(이스마일 하니예)가 이란 심장부인 테헤란에서 암살된 이후 2개월간 보복 대응을 참아 왔으나, '건진 게 없다'는 내부 불만도 커지고 있다.

실리냐 위신이냐… 이란의 딜레마

영국 가디언은 이 같은 이란 상황에 대해 28일(현지시간) "항상 피하려고 했던, 특히 개혁 성향의 새 지도부가 원치 않았던 운명적 선택에 직면해 있다"고 짚었다. 전날 나스랄라 암살과 함께 이제는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보복 공격'을 요구하는 압박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란 수도 테헤란 팔레스타인 광장에서 29일 레바논 친이란 무장 정파 헤즈볼라 지지 집회가 열린 가운데, 한 시위자가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한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의 사진을 들고 있다. 테헤란=AP 연합뉴스

이란 수도 테헤란 팔레스타인 광장에서 29일 레바논 친이란 무장 정파 헤즈볼라 지지 집회가 열린 가운데, 한 시위자가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한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의 사진을 들고 있다. 테헤란=AP 연합뉴스

이란으로선 쉽지 않은 선택이다. 중동 확전이 불가피하고, 자칫 미국과 직접 충돌하게 되면 막대한 손해가 발생할 게 뻔하다. 헤즈볼라 전문가인 아말 사드 카디프대 교수는 이란의 개입이 미국을 전쟁에 끌어들일 수 있다며 "이란은 '저항의 축' 세력 중 유일하게 실재하는 국가이고, 따라서 나섰을 때 잃을 것도 가장 많다"고 미 CNN방송에 말했다.

게다가 지난 7월 취임한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온건 개혁파'다. 서방과의 관계를 개선해 제재를 풀고 경제난을 극복하겠다는 게 그의 구상이었다. 서방과 아예 척을 지게 될 '이스라엘과의 직접 충돌'은 애초부터 배제해 둔 시나리오일 공산이 크다.

그러나 '저항의 축' 맏형 격인 이란이 헤즈볼라 수장 암살을 잠자코 외면할 수는 없게 됐다는 진단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퀸시연구소의 트리타 파르시 부소장은 "이란이 (주변의) 전쟁 상황에 관여하지 않아도 될 정당성은 사라졌다"며 "이 시점에서 이란이 반응하지 않는다면 다른 (저항의 축) 파트너의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고 짚었다.

더욱이 이란은 이미 대(對)이스라엘 보복을 한 차례 참았다. 지난 7월 31일 하마스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테헤란에서 암살된 후 2개월간 이란은 구체적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가자지구 휴전 협상이 곧 타결될 테니 복수하지 말라'는 서방 만류를 따랐지만, 얻은 것이 없다며 불평하고 있다고 가디언은 설명했다. 이스라엘의 비협조적 태도로 당시 휴전 협상은 끝내 무산됐다.

지난달 12일 이란 수도 테헤란 시내 한 광고판에 마수드 페제시키안(화면 오른쪽) 이란 대통령과 이스라엘에 암살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의 모습이 나오고 있다. 테헤란=AFP 연합뉴스

지난달 12일 이란 수도 테헤란 시내 한 광고판에 마수드 페제시키안(화면 오른쪽) 이란 대통령과 이스라엘에 암살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의 모습이 나오고 있다. 테헤란=AFP 연합뉴스


'격랑' 빠져드는 중동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를 상대로 맹공을 이어갈 태세다. 미국 당국자들은 이스라엘 움직임을 토대로 레바논에서 제한적 지상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이날 CNN에 말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텔아비브에 위치한 이스라엘군 본부에서 이란 정권을 지목하며 "누구든 우리를 때리면 우리는 그들을 때릴 것"이라고도 을렀다. '개입하지 말라'는 경고다.

헤즈볼라도 물러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영국 BBC방송은 "헤즈볼라는 이미 싸움을 계속하겠다고 맹세했고, 여전히 수천 명의 전사와 상당한 미사일 무기고가 있다"고 설명했다. CNN도 "나스랄라 암살은 중요한 사건"이라면서도 "(중동 갈등의) 역사는 헤즈볼라가 재조직되고 다른 지도자를 앉혀 이스라엘과의 긴 싸움을 이어갈 것임을 시사한다"고 내다봤다.

이란이 헤즈볼라를 겨냥해 레바논 공습을 이어가던 23일 수도 테헤란 팔레스타인 광장의 한 건물에 혼비백산한 이스라엘 시민들의 모습과 '우리는 당신이 상상하는 곳에서 복수를 할 것'이라는 문구가 담긴 광고판이 걸려 있다. 테헤란=EPA 연합뉴스

이란이 헤즈볼라를 겨냥해 레바논 공습을 이어가던 23일 수도 테헤란 팔레스타인 광장의 한 건물에 혼비백산한 이스라엘 시민들의 모습과 '우리는 당신이 상상하는 곳에서 복수를 할 것'이라는 문구가 담긴 광고판이 걸려 있다. 테헤란=EPA 연합뉴스

이란은 일단 보복을 예고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리 알리 하메네이는 이날 성명을 통해 "헤즈볼라가 사악한 (이스라엘) 정권에 맞서도록 도와 달라"며 무슬림 차원의 지원을 요청했다. 추가 성명에선 "나스랄라의 피는 복수 없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도 밝혔다. 이란의 한 관리는 '레바논 파병' 가능성도 언급했다.

다만 미국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에 대한 모든 대응을 주도할 쪽은 헤즈볼라이고, 이란은 지원 역할을 하겠다는 신호"라며 "하메네이는 현재 이스라엘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방법이 없을 수도 있다"고 풀이했다. 하메네이가 보안 등급이 높은 '안전 장소'로 대피해 후속 대책 논의에 나섰다는 외신 보도 역시 이란의 '수세적 상황'을 보여 주고 있다.

이란은 국제사회 대응도 촉구하고 나섰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이란이 이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긴급 회의 소집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전했다. 이란은 서한에서 이스라엘이 침략 행위를 중단하지 않으면 중동이 "본격적 전쟁(full-scale war)"에 돌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나연 기자
손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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